2018년 5월 24일 목요일

[범용기 제2권] (106) 민주당 집권시대 – ‘장면’이라는 인간

[범용기 제2권] (106) 민주당 집권시대 – ‘장면’이라는 인간


나는 ‘장면’을 개인적으로 만난 일도 없고 물론 방문한 일도 없다. 그러나 공석에서는 그를 보기도 했고 그의 연설을 듣기도 했다.

미국의 ‘타임’지던가 ‘뉴스윅’지던가 난 것을 보면, ‘장면’은 일국의 정치 최고책임자라기보다는 ‘어느 신학교 띤’(Dean) 같다고 했다.

학생들은 자기네 ‘덕분’에 국무총리까지 됐으니 우리 말을 들어야 한다고 오만했다.

하루는 총학장회의가 소집됐다. 시민회관 대강당이었던 것 같다. 나도 소위 ‘학장’이래서 맨 뒷자리에 앉았다. 공사립 대학교 총장, 학장, 교무처장, 학생처장이 한 방에 가득 찼다. 꽤 오래 기다린 끝에 ‘장면’이 배우처럼 은막 옆 연단 좁은 보도를 걸어 나타났다.

“학생들이 면회 허락도 없이 마구 들어와 비서실도 거치지 않고 내 사무실에 들어닥친다. 들어와서는 내 책상 모새기에 덜렁 올라앉아 다리를 건들대면서 ‘이래주소’, ‘저래주소’하고 머슴에게 명령하듯 반말을 한다. 그러니 내 위신이 무엇 되겠소! 이제부터 총ㆍ학장은 자기 학생을 감독해서 그런 일은 없도록 훈련시켜 주시오!”한다.

총ㆍ학장들은 “학생들은 학교 당국에서 이르는 말 같은 것은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으니 감독관청인 문교당국에서 관권으로 억제해 주기를 바라오” 한다.

이렇게 서로 발뺌을 하다가 서로 협력하여 ‘선도’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우리 국무총리는 아닌게 아니라, 무던히 얌전하시구나!”하고 나는 생각하며 일찌감치 나왔다.

그렇다고 ‘장면’이 모든 면에 ‘무능’하기만 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경제 5개년 계획을 세워 근대화 작업을 조속하게 진행시켰다. ‘장준하’는 ‘국토기획원 원장’이 됐다.

엄요섭은 주일대사가 됐다. 일본과의 교류도 합리적으로 실시하려 했다. 동남아 지방 상대로 무역도 활발하게 키우려 했다. 민주체제도 확립시키려 했다. 그 심정은 갸륵할 정도로 ‘진실’했달까? 사실, 그는 신학교 학장만큼이나 ‘종교적’이었다.

그런데 그는 ‘배짱’이 약했달까? 단행력이 너무 느렸달까, 지나치게 신중했달까, 어쨌든, 4ㆍ19 혁명기질에는 ‘안성마춤’이랄 수가 없었다. 자유당의 부정부패와 그 연루자에게 쾌도난마(快刀亂麻)의 시원스러움을 보여주지 못한 채 아홉달을 지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군부를 제대로 걸머쥐지 못했다. 장도영을 반쯤 쥐었다고 놓친 셈이랄까!

박정희는 자기들의 혁명정부가 한국 역사에서 ‘정통’을 계승한 것이요, ‘역적’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장면’에게서 정식으로 ‘정권이양’을 받으려 했다. 그런데 ‘장면’은 어느 수녀들 수도원엔가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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