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4일 목요일

[범용기 제2권] (105) 민주당 집권시대 – 민주당 집권

[범용기 제2권] (105) 민주당 집권시대 – 민주당 집권


1960년 이박사 하야한 즉시로 민주당 대회가 열렸다.

모든 절차를 거쳐 선거가 실시됐다. 국민은 무조건 민주당에 투표했다. 어느 ‘인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당’을 보고 투표하는 것이었다.

자유당은 이박사와 함께 안개처럼 사라지고 민주당 일색이었다. 다른 당을 다 합쳐도 절대 소수여서 야당 구실을 못하게 됐다.

헌법은 내각책임제로 고쳤다.

민주당은 본래 신파, 구파로 나눠져 있었다. 신파 수령은 ‘장면’이고 구파수반은 ‘윤보선’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억지로 단일화되어서 절대다수의표를 얻은 것 까지는 좋은데, 신파인 장면이 국무총리가 되고 구파인 윤보선이 대통령으로 됐다. 대통령 책임제가 아니기 때문에 윤보선은 실권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보선은 국가의 수반이란 그 위치와 전래의 ‘양반’ 심리 때문에 매사에 직접 간섭하고 싶어했다. 적어도 장면이 자기와 의논하고 자기 의견을 존중해 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장면’은 그 정도로 예절바르지 못했다. 윤보선은 노여웠다.

나는 의례 경무대로 그를 예방해야 마땅한 처지였다. 피난때 인연으로 보든지, 그의 영부인으로 First Lady가 된 공덕귀 여사와의 인간관계로 보든지 즉석에서 달려가 축하해야 마땅한 처지였다.

공덕귀 여사는 부산 동래 출신으로서 여고를 마치고 일본 고오베 여자신학교를 졸업한 후, 김천에서 송창근 목사와 함께 목회하다가 ‘한신’ 여자부 사감겸 강사로 우리와 동역했다. 우리가 미국 유학의 길을 주선하여 거의 다 되어갈 무렵에 윤보선과 결혼한 것이었다.

그러니만큼 누구보다도 먼저 경무대에 축하방문을 갔어야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경무대와 나 자신의 성미와는 서로 맞지 않았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용단을 내린 것이었다.

윤보선 씨는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반가와했다. 현관에 들어서자 작은 응접실이 있다. 단둘이 대좌했다. 그는 첫마디부터 ‘장면’에 대한 불평이다. 나는 한시간동안 듣기만 했다. 내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의 분노는 불평을 넘어서 증오의 선을 육박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장면’은 국사도 못하면서 대통령과 의논도 안한다는 호소였다.

너무 비대해진 민주당은 벌써 둘로 갈라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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