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4일 목요일

[범용기 제2권] (102)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와 그의 ‘하야’ - 그 후의 함태영

[범용기 제2권] (102)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와 그의 ‘하야’ - 그 후의 함태영


민주당 정권때에도 함태영은 서소문밖 부통령 관저에 그대로 있었다. 그 집은 ‘적산’인데 일제때 일본인 서울시장이 지은 저택이었다 한다.

“한신” 관계에서도 김재준이 학장으로 함태영이 이사장으로 낙착됐다. ‘한신’에서는 여전히 그를 존경으로 대했다.

그에게도 ‘스츄록’이 왔다.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회복이 소망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차츰 의식이 돌아왔다.

그러나 반신불수였고 언어도 부자유했다. 말더듬이 같은 불분명한 음향의 불연속선이었다. 그래도 듣노라면 그 뜻이 대략 짐작이 간다. 그러나 ‘정신’은 아주 정정했고 70년전 평리원 재직 중의 직원들 이름과 누가 어디서 어떤 사건으로 제소했던 것, 그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던 것 등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한문에 자유로웠다. 한문으로 쓰여진 이조실록 50여권을 다 읽었다. 공부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나는 내 서재에 있는 한문대계에서 몇 권을 갖다 드렸다.

그 책을 다 읽기 전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기억의 ‘스크린’에는 한말이 비공개 비사가 정리안된 고깐처럼 퇴적되어 있었다.

나는 그가 반신불수되기 오래 전부터 그 구전(口傳)을 기록에 남기려고 자주 말씀드렸다. “남길 값어치 없는 얘기를 뭐 그러겠소?”하고 그는 늘 겸손했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반드시 그럴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얼마 안되어 ‘언어’가 막혔다.

일은 생각날 적에 해 치워야 하는데, 벼르다가 기회를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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