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8일 화요일

[0435] 대한기독교장로회의 역사적 의의 - 1956년 5월 25일

대한기독교장로회의 역사적 의의


1950년 5월 25일

한국교회 오십년의 과거가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아직도 숙제꺼리라 하겠다. 물론 ‘기록’은 나열되어 있다. 그러나 기록을 주워 모으면 그것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역사라면 반드시 어떤 위대한 인물이 나서 그의 자주적이오 창조적인 어떤 현상을 그의 현실에서 구현시키려는 운동으로서 누구나 그 사건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을 만치 독자적이오 중대한 기록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 한국기독교회의 과거에 있어서 이상적으로나 사업적으로 한국인의 주체성이 뚜렷하고 또 그것이 움직여 창조해낸 ‘한국적’인 사업이 장강같이 대를 이어 흘러드는 무엇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까닭이다. 한국교회 오십년이 물론 미국 기타 여러 신교국 교회들의 ‘선교사’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데는 아무 의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 기독교사냐 하는 데는 너무 ‘얼’이 없다는 것을 긍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사상’에 있어서 비판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주입”과 “추종”이 있었을 뿐이었다.

교회의 수가 늘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선교사의 사업보고에 그 숫자를 늘린 정도이요 한국교회로서의 “역사적”이라고 할만한 ‘성적’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한국기독교로서의 자각은 삼일운동 이후에 겨우 태동하여 8ㆍ15해방을 계기로 성장을 시작하여 자각에 의하여 입장을 잃어버릴 맹목적 전통을 극복하면서 괴로운 성장과정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 근사한 관찰일 것이다. 그런데 이 주역이 문제의 ‘대한기독교회 장노회’에 맡겨졌다는 것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한다”는 하나님의 기이하신 십리에 의한 것이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이 하나님의 메워주신 “짐”에 몰려서 한 적은 무리가 이를 증언한 것이 그 생명과 함께 갈수록 팽창하여 낡은 부대가 폭발점에까지 이른 것을 주님께서 민망히 여겨, 둘이 다 보존되게 하는 선한 지혜의 하나로서 “새 부대”를 만들어 거기에 옮겨 넣었다. 그러나 “새 술을 새 부대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과거를 온전히 단절된 “새” 것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구약을 무시하고 신약을 만든 것이 아니라, 구약을 세우고 완성하는 의미에서 신약을 세우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새 것’으로 자처하는 저들로 우리를 향하여 “新神學”(신신학)이니 “新統”(신통)이니 하는 “新”(신)자 붙여주기를 즐겨하는 이 마당에 있어서, 우리의 새 것이 낡은 것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신중히 규정지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낡은 것에서 근본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을 분간하여 전통을 살리면서 전통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새 것을 육성하면서 그에 들뜨지 않는 엄연한 자연성과 예지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 *

그러면 우리가 한국기독교회(적어도 장노파) 안에 있어서 진정한 “역사” 조성의 제일보를 내 드디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인가?

첫째로, 신학의 문제에 있어서 우선 한국장로회 칠십년의 신학전통을 검토한다면, 그것은 소위 “정통주의신학” 미국에서의 “근본주의(극단형의)” 일색으로 되어 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도 ‘정통’이라면 그만이고 “신신학”이라면 질겁을 할 정도로 고루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면 소위 정통주의 신학이란 것은 어떠한 내력을 가지고 있는가?

신약성경에는 사상체계로서의 소위 “정통신학”이란 것은 없다.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신약기자들은 각이한 신학을 가지고 있었으나 신앙은 공통된 것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신학은 각인이 그 공통된 신앙을 제 재주껏 설명한 결과라고 하였다.

신약은 예수라는 인물의 생과 사와 부활이라는 사건에 하나님이 어떻게 그 자신을 계시하셨는가를 증언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그의 죽음은 속죄적 의의를 가진 것이고 그의 부활은 그의 신자성을 입증한 것임과 동시에 악령과 악인에 대한 그의 승리를 의미한 것이었다. 로마제국에서의 해방보다도 더욱 근본적인 해방, 죄와 사망에서의 해방을 의미한 것이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신의 성질과 경륜을 말씀하시고 구속의 사업을 실현하셨다. 이제는 인간이 스스로 신지식을 얻으려고 더듬을 필요가 없다. 다만 이 성육신하신 하나님 아들을 신앙하고 그와 친교를 맺음으로써 그의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함을 얻는 경험을 갖게 되는 것이라 하였다.

이것은 “교리”라는 것보다도 인격과 인격의 전적인 친교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종교는 율법적인 자력주의에서 인격적 “아가페”(聖愛)의 생명적 호응으로 옮기었다. 거기에는 사랑과 신뢰와 그 약속에서 오는 소망이 있을 뿐이고 성령 안에서 서로 위로하고 화평으로 즐거운 생활이 전개되는 것이었다. 이런 것이 초대교회의 모습이었다. 이런 실존을 객체화하여 하나의 “고백”으로 표시한 것이 “사도신조”이며 그것이 신학으로 발전하여 325년 “니케야” 회의 때에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논쟁 끝에 삼위일체신론이 공인되고 어거스틴에 이르러 인간의 죄성이 규정되고 루터에게 이르러 以信得義(이신득의) 신앙론이 뚜렸해지고 칼빈에게서 신의 주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예정론을 통하여 구원의 확증이 고조되었다. 이리하여 기독교 사상은 정통이라는 어떤 주류를 형성하며 골을 잡아 전승되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에는 신학이 논의되면서도 그것이 신앙을 해명하는 한 부분의 방편이오 결코 그것이 신앙을 규정짓는, 신앙 이상에서 신앙을 감독 심판하는 권세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 인격적인 응답이오 주지주의나 합리주의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교는 여전히 영의 종교 인격의 종교 자유라는 복음의 종교요 결코 지적 체계나 율법적 문자주의의 비인격적, 책의 종교는 아니었다.

그러나 개혁자시대 직후의 기독교회는 신학의 과도한 주권행사로 말미암아 정통의 미명하에서 “정통적 이단”(Herecy of Orthodoxy)을 조성하여 요새 우리가 말하는 “정통주의 신학”을 안출하였으며 그것이 그리스도교를 정체시키며 율법화, 비인격화하여 버렸다. 폴라누스(Pelanyus, 1609)와 보에티우스(Voetius, 1648)에 이르러 소위 축자영감설이란 것이 주장되어 구약 히브리문 모음까지도 기계적 영감에 의하여 기록된 것이어서 일점일획도 틀릴 수 없는 것이라 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교의 권위를 성서에 둠과 동시에 그 권위의 절대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성서의 절대성을 주장하게 된 것이며 성서의 객관적 절대성을 입증하는 한 근거로 성서의 문자 절대무오설을 조작하게 된 것이었다. 이리하여 신앙의 중심이 살아계신 인격이신 하나님과 그 독생자 그리스도에게서 떠나서 기록된 문서로서의 인격 아닌 성경으로 옮겨졌으며 그 때문에 영의 종교가 책의 종교로, 인격의 종교가 불상의 숭배로, 자유하는 복음의 종교가 노예화하는 율법의 종교로 전락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유럽에서는 이것이

일세기도 못 가서, 십팔세기의 철학의 발흥, 경견파의 반동, 과학의 발달, 자유주의 신학의 진전 등으로 여지없이 몰락되고 말았다. 그러나 십구세기에 이 잔병이 남은 세력을 규합하여 그 최후의 요새를 미국의 프린스턴 신학교에 쌓고 반격전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여유있는 건설적인 이론이라기보다도 자기 변호적인 감정적 발작에 유사한 현상이어서 도저히 대세를 만회할 가망이 없었다. 그러므로 십년 세월의 악전고투 끝에 1929년을 전기로 미국교회의 본류에서 온전히 밀려나 일부 반동교파로서 전락된채 초조한 히스테리에 몸을 변태화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십구세기 말엽의 프린스톤 출신들이 한국의 초대 선교사로 나오게 되었고 정통주의 교학의 몰락직전의 몸부림을 이 한국에 이식하고 ‘철의 장막’으로 둘러 막아 오십년을 보호 육성한 것이 곧 한국장로교회의 정통주의 왕국인 것이다. 그러나 대원군의 쇄국주의가 자유세계의 파도를 막아내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선교사(미, 남북장로교)들의 그것이 오래 갈 리가 없는 것이었으며 그 동안에 뒤떨어지고 몰락한 것은 불쌍한 한국교회 오십년래의 교회지도자들이 선교사 제위으로부터 배운 것은 정통신학의 주입과 그에 대한 맹종밖에 없었다. 자유도 비판도 없었다. 그러므로 인격적이라고 할 것이 못 되며 따라서 학문도 성립되지 않았고 진리도 천명되지 않았다. 습관화한 전통이 신앙의 탈을 쓰고 교권을 전횡하여 이성과 양심을 유린하는 암흑시대를 조성한 데 불과하였다. 이것이 과한 혹평이라고 느껴질지 모르나 해방 후 십년의 드러난 열매가 그런 것임을 어찌하랴 한국신학대학에서 성서 역사비판학을 강의했다고 전 총회가 뒤집혀지며 그 당사자를 파직하고 그 지지자를 처단하고 학교 졸업생에게 교역을 거부한다는 등 일종의 폭도정치로 이미 무너진 정통신학의 진영을 만회하려고 몸부림친 장관이라든지 발트, 부룬너의 신학을 소개했다고 이것을 “정통”이 아니라 “신정통”이니 이를 배격해야 하겠다고 날뛰는 가애할 치기리든지를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지도적 위치에 있는 선교사들의 인위적인 고집으로 말미암아 항구화한 격리와 통제에서 생긴 무지의 소치가 아니겠는가? 이런 것이 한국 교회의 성격이라면 이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과연 한국민족과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자의 차마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김옥균 일파가 개혁운동을 일으킨 것이라든지 이승만 박사나 이상재 선생이 청국세력을 배경으로 한 한말의 고루한 수구당에 항거한 것이 한국의 새 역사 조성에 하나의 나침판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 한국교회의 신앙 양심의 자유 학문적 향상 복음의 천명을 위하여 십칠세기의 제물인 수구당 교권에 감연히 항거한 대한기독교 장로회가 한국교회 사장에 아무 의의도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에딘버라 대학교의 의학교수 고 H. R 맥킨토쉬 박사는 “types of Modern Theology”(현대신학의 제형, 졸역, 문교부 간행) 12-16면에서 정통주의 신학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종교 개혁같은 그런 위대한 창조적인 운동이 있은 다음에는 반드시 산만하고 비창조적이면서 더 많이 변론적인 시대가 온다는 것이 하나의 법칙인 것 같다. 즉, 지나간 위대한 시대에 얻은 것을 목록을 만들고 정리하고 재평가하는 그것이다. …… 이 과정에 있어서 전통적인 정통주의가 도달한 결론은 명확한 역사적 현상으로서 그 특색은 교리적 형식에 절대의 가치를 부여하는 치명적인 경향이다. 그리고 신앙과 어떤 교리 신조의 승인과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일이다.”

따라서 예수님 자신 안에 있는 진리가 어떤 건전한 말이 형식을 통하여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일히 천착할 여념도 없이 그저 신앙고백서니 요리문답이니 하는데 쓰여진 문구를 반복하면 된다는 것으로 흘러간다. 이 정통주의 신학자들은 한 가지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몰라보고 있다. 즉, 가장 중요한 진리들이 우리에게 알려지거나 우리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된 때에 그 진리는 무어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반음영을 가진 암시와 표징(Symbol)으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그것이다. 이런 신학자들의 저서를 읽을 때 우리는 최근에 어떤이가 신학자들에게 준 충고라는 말, 신학자일수록 시를 읽으라는 데 전폭적인 찬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종교적인 사상의 상징적인 성질에 대하여 전연 둔감인 사람들은 영적인 데 대하여 자기가 무슨 전능자인 것 같이 생각하는 거만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을 따져보면, 가장 심원한 학식을 가진 크리스찬이라고 누구나 인정하는 그 어느 사람들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는 자기네가 훨씬 더 온전하다고 자신한다. 이런 태도 때문에 그들은 무슨 문제를 자유로운 비판에 맡기려 하지 않는다. 문제 삼을 수 없는 최종의 권위를 자기네가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자기소신을 문제에서 초월시킨다. 그리하여 자기 고집을 실행시키기 위하여 그릇된 논리를 사용하여 성경구절도 제 생각을 변호하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하여 억지로 곡해하는 일을 감행한다. 이 시대의 개혁교 신학(정통주의 신학)을 번쇄학파라고 부르는바 그것은 주지주의의 경향이어서 율법주의가 복음주의를 극복한 현상이다. 그 결과로 신학의 정체상태가 온다. 성경 주석이나 교회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정체상태가 계속된다. 그것은 사람이 쇠사슬에 매여 일한다는 것은 제 목적을 세우고 일하는 창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교리적 논쟁기분이 조장된다. 그 논쟁은 진리를 위한다는 것보다도 자기신학의 인기를 높이려는 것이 앞서기 때문에 진리를 밝히는 데 있어서는 치명적인 역효과를 가져온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논쟁을 위한 화약과 총탄이다. 그들의 선수는 자기에게 반대되는 사람을 구원한다는 것보다도 죽여버리려는 의도로 출전한다. 그리하여 십칠세기말 경에는 보수세력을 위한 무자비한 힘이 교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계적인 데서는 생명이 탄생하지도 못하며 보존되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사장을 막기 위한 가장 치밀한 감시와 억압도 결국은 자기패배를 촉진하고 만 것이었다…….

십칠세기에 이렇게 벌써 패망한 고물이 때 아닌 이십세기의 오늘에 우리 한국에서 횡행하고 있다는 것은 화출망영의 느낌을 준다.

그러면 우리의 신학은 무엇이냐? 도대체 신학이란 것은 비록 그것이 체계화했다 할지라도 그 체계가 항구히 불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날마다 달마다 새로운 진리탐구에 의하여 부단히 검토되며 시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세계는 둘로 나뉘어 있다 할지라도 지금의 교회는 세계교회로 하나가 되어 있다. 교회도 둘로 나뉘어져 있다면 카톨릭적인 것과 푸로테스탄트적인 것의 둘로 나뉠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세계교회의 일원이다. 세계교회에 있어서는 전세계 최고 신학자들의 부단의 연구에 의하여 지향되는 세계교회신학의 주류가 스스로 형성되어 가는 것이며 우리 교회는 이 세계교회의 신학적, 주류에 병진함으로써 교회신학의 “정통” 본류 또는 주류에 동참하는 것이다. 세계교회의 신학은 정통교의에서 그 정반대인 자유주의로 옮겼다가 다시 통합된 더 높은 차원에로 진행되고 있다. 틸리히의 말대로 한다면 정통주의라는 타율에의 반동으로 자유주의라는 자율로 옮겼다가 지금은 그 종합인 신율을 지향하고 나아간다는 것이다. 소위 정통주의자와 우리가 신학의 내용에 있어서 대동소이하다 할지라도 그 신학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온전히 반대되는 다름이 있다. 예를 든다면 그들이 배타적인 데 반하여 우리는 협동적이며 그들이 주입적인 데 반하여 우리는 비판적이며 그들이 통제적이오 억압적임에 반하여 우리는 자유인 것이다.

우리의 이런 태도가 위험하다고 느낄런지 모른다. 실수와 미혹이 우리의 이런 태도 때문에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이 위험을 떠나서는 참된 의미에서 인격적 신앙이란 있을 수 없다는 그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유, 자주 비판, 진취 등 독립적 활동이 없이 역사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역사의 문제에 대하여 그리스도교는 인간역사라는 소재(가루서말)에 하나님 나라라는 속량역사(누룩)을 심어 결국은 그 소재인 인간역사 전체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로 변화 또는 그 감화 아래 있게하는 “하나님-사람”의 운동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인이란 것은 자칫하면 인간역사에서 해탈 또는 도피하여 비역사 또는 초역사의 “無”(무) 또는 “일” 의 세계에 직접 옮겨가기를 원하게 되기 쉬운 것이다. 그것이 신성하고 세속적이 아닌 선경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장로교회는 이상에서 말한 바와 같이 소위, 정통주의 일색이었으므로 그들의 전도표어인 “예수 믿고 천당가시오” 하는 것으로 일관되어 왔다. 이것은 기독교신앙의 시작과 끝과를 직접 잇대여 놓고 그 중간 토막을 빼버린 느낌이 있다. 본의는 그렇지 않을런지 모르지만 일반에게 느껴지는 것은,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당간단다”, “이 잠깐 있는 세상이야 이럭 저럭 지내면 그만이 아닌가? 죽어서 천당 영복을 누리려는 것이 정말 큰 일이지”, “당신 뭐하려고 예수 믿소?”, “천당 가려고 예수 믿지”, 거저 이런 정도의 것이 된다. 이런 태도는 액운을 막으려고 “굿”하는 것이나 별다름 없는 조야한 이기주의의 반영이다. “예수를 믿으면”이란 것은 지성지애하신 인격이신 그리스도, 그 분을 “내”가 만나서 그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신뢰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인격인 Commitment를 의미함이오 무슨 미술사의 술법과 같은 자동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것을 말함이 아니다. “천당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우리 신자들과 화목하시고 그의 자녀로 삼으시는 데서 기대할 수 있는 소중이요 결코 우리가 “믿는다”는 그 공로 또는 효능 때문에 자동적으로 거기에 들어가는 것을 말함이 아니다.

우리가 믿고, 영원한 소망에까지 이르는 그 중간에는 신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끊임없는 인격적 결단이 요청되는 것이며 번연의 ‘천로역정’에서와 같은, 조금도 기계적으로 방심할 수 없는, 긴장과 분단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 중간 토막을 빼놓으면 인격의 핵심인 양심과 이성의 존엄 및 자유가 무시되고 도덕과 양지가 권외로 밀려나고 그 대신으로, 무지주의에 통하는 오해된 “신앙”과 욕심의 변형인 “천당복락”과 그 둘을 연결하는 자동적인 기계주의와의 합작에 의하여 원시형의 미신이 조성되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이 결사항전한 것이 이런 과제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 한국을 우리의 소재로 받았다. 우리는 한국역사 안에 그리스도의 속량역사를 조성하며 한국역사를 그리스도의 천국역사로 변질시키는 업무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천당가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될 것이므로 그의 뜻에 맡기고 바랄 것 뿐이며 우리들 자신의 당면한 과제는 주어질 이 한국역사를 어떻게 그리스도의 바탕으로 화할까 하는 일념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역사 안에 성육신하셔서 이 역사의 구원을 위하여 그 피의 최후의 한방울까지 남김 없이 쏟아 땅에 묻힌 ‘한알의 밀’이 되신 것 같이 크리스찬도 역사 안에 보냄받은 것은 역사에서 도피하라는 것이 아니라 역사안에 그 전 존재를 쏟아 그리스도의 속량의지에 충실하라는 데 그 소명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주어진 한국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의 각 부문에 그리스도의 정신이 그 조형이념이 되며 “魂”(혼)이 되게 하는 데 책임적으로 진력해야 한다. 이 점에서 기독교윤리며 응용기독교의 역할을 우리는 높이 평가하는 바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역사의 진전에서 영원한 천국을 예기하는 역사신도가 되려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우리가 역사에 이렇게까지 관심하는 것은 이것이 복음의 씨를 받을 소재인 까닭이다. 씨를 심기 위하여는 우선 토질을 조사하고 그 흙을 가꾸고 그 흙에 맞는 비료를 주고 하는 것처럼 복음의 씨를 심기 위하여 인간성과 그 생활부문 전면에 어느 정도의 예비시공이 있어야 할 것이 사실인 까닭이다.

요새 우리는 모든 것을 일반화하여 세계를 추상적으로 논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의 구체적 현실을 감추려하는 일을 흔히 보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더 나은 현실로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오 결코 현실에서의 도피나 망각에 의하여 해결될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한국의 역사를 책임적으로 건설할 사람들로서 한국의 현실과 한국교회의 현실을 현실적으로 검토하고 이해하고 그 대처할 방안을 또한 진지하게 토의해야 한다. 그것을 원칙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을 아울러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우리 총회가 새 기치를 들 때에 선언한 5항목 중에 “우리는 세계교회와 병진함과 동시에 전적인 그리스도가 인간생활의 전 부문에 주가 되게 하기 위하여” 전 존재를 바치려 한다는 구절이 있음은 이런 의미에서 “역사적”이라 하겠다. 우리가 우리 교회의 역사를 만들어감과 동시에 우리 나라의 역사를 변질시켜 간다면 그것 자체가 “역사적” 인 존재로 인정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이것을 하시려는 것이다.

셋째로, 현실교회 자체로서의 문제에 있어서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사회학적인 의미에서의 하나의 조직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일치”라는 인격적 친교에 있다고 스위스의 니그렌 감독은 말하였다. 우리 한국장로교회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을지 모르나 해방전후해서 드러난 모습으로 본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일치”라는 것보다도 어떤 “우상과의 일치”를 지향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치 그 본질적인 데서 부패하고 있었다. 신사참배 문제를 계기로 하여 일본 제국주의와의 일치를 총회적으로 결의하여 모든 지교회에 통고한 것이라든지 그 정신적 본영으로서의 당시의 평양신학교라든지가 신학적으로 어느 진영에 속했었는가는 만인이 공지하는 사실이다. 해방직후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난 교회의 현상은 교권발동과 그에 의한 사상통제였다. 여기에 미국선교사들의 물질적 정신적 가세가 있어서 그들은 자못 만용적이었다.

그것이 또한 정통주의 진영의 소행이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리하여 교회는 “그리스도와의 일치” 라는 것보다도 전체주의 국가와의 일치를 보이고 있었다. 인격도 양심도 도의도 집권을 위한 투쟁무기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어언간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하나님과 사람의 사랑의 화해처라는 것보다도 무시무시한 종교제국, 종교 재판소로 화하였다. 여기서 정통주의자들에 대하여 그럴 것이 아니라고 충고하던 사람들은 다 배제되었다. 그리하여 배제당한 그들은 교회의 좀더 본질적인 데로 돌아가기 위하여 기독교장로회로 발전하게 된 것이었다. 옛날 비울이 할례당의 율법주의에서 복음의 자유를 수호하던 것이나, 루터와 그 동지들이 로마 카톨릭의 교권적 제국주의에서 복음의 자유를 회복한 것이 교회사상에 거대한 생명운동을 전개한 것이었음을 시인한다면, 우리 한국교회의 정통주의적 “바리새이즘” 에서 복음의 자유를 천명하여 자유 한국의 자유교회를 수립하려는 우리의 운동이 교회사적으로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감히 공언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 전 세계교회가 지향하는 세계교회의 진로다. 그러므로 1954년 정통주의 진영은 그들의 안동총회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을 거부키로” 결의해 놓고서도 세계교회의 본류에 밀려서 감히 발언도 못하고 자가당착에 빠져 체면유지의 구멍을 못 찾아 구차한 형편이었던 것이다.

대략 이상에 말한 윤곽에서만 볼지라도 대한기독교장로회는 역사적 존재 의의가 뚜렷하며 또 한국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 기독교사의 본류를 저어가고 있음을 천하에 공언할 수 있는 것이다.

(1956. 5. 25. 총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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