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20일 수요일

[귀국이후] (4) 돌아온 옛집에서 [1711]

[귀국이후] (4) 돌아온 옛집에서 [1711]

손녀 명은과 명혜는 밤낮 할아버지를 그리워 했었는데 이제 할아버지ㆍ할머니가 자기들 곁에 있으니 반가울 것이다.

명은이 세 살 때 할아버지가 카나다로 갔으니 10년 만에 만난 셈이다. 명은은 두 살 때부터 할아버지 품에 안겨 아침 저녁 산책의 동무가 되었다. 사근사근 졸다가 할아버지 뺨에 뽀뽀도 하고 중국집 앞에 가면 단풍잎 장징스런 손을 말없이 내밀기도 했다. 찐빵 달라는 얘기다. 사 주면 빵이 뭉개지도록 단단히 걺어쥐고 가장자리부터 야금야금 뜯어 먹는다. 잊지못할 귀염둥이다.

할아버지가 카나다에 가서 10년 세월을 흘렸지만 그 동안에도 “명은”은 잊지 않고 할아버지를 그리워 했단다.

김포 비행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 명은은 의젓한 소녀가 되어 몰라보게 자랐다.

그 동안에 둘째 손녀가 났다. 이름을 지어 보내라 했기에 “명혜”라고 불르라 했다. 恩(은)과 惠(혜)는 다른 글자면서도 하나로 化(화)하는 묘미(妙味)가 있어 무척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명혜는 할아버지를 본 일이 없다.

“내가 네 할아버지다. 알겠니?”

“그러문요!”하고 똑똑하게 대답한다.

“어떻게 아니?”

“사진과 꼭 같은걸요!”

두 손녀의 손을 양팔에 부딩켜 쥐고 걷는 늙은 할아버지는 행복했다.

막내 부부는 명철하고 착하고 효성이 지극하고 애기들 “아빠”, “엄마”로서도 흠칠데 없다. 사랑으로 다스려지는 크리스천 가정이다.

막내는 시무 장로고 애기 엄마는 집사다.

교회일, 집안일, 늙은이 섬기는 일, 長空관계의 “비서”일 – 너무 바쁘게 지낸다. 때로는 내 건강 걱정도 하게 된다. 교회 봉사에 있어서는 all member canvass로 업무를 최대한 분담시키는 방향을 고려하는 것이 어떨까 싶어지기도 한다.

내가 귀국하자마자 수유리 집을 팔고 우이동 도선사 계곡 솔밭 속에 새로 지은 우이 빌라 맨션 A-201호에 이사했다.

세면소에 들어가면 깎아세운 백운대 봉우리가 눈앞에 희고, 바로 옆에는 개울물이 성급하게 달린다. 골물은, 가로 세로 얼싸안고 넘어진 육중한 바위들에 부디쳐 눈보라를 날린다. 좀 더 올라가면 푸른 골물이 절벽을 스치며 고요하게 넘친다. 한참 더 올라가면 도선사란 옛 절이 있지만 너무 俗化(속화)하여 절 같지가 않다. 어쨌든 산책 코오스로서는 그만이랄 수 있겠다.

그러나 몇 달 지난 오늘에는 다리가 늙어서 높은데가 무서워진다. 바로 옆에 낮은 솔밭 언덕이 있어서 내 기운에 알맞다. 손병희 씨 묘소도 그 언덕에 있다. 통모래와 솔밭, 그리고 진달래, 싸리, 찔레꽃 낮은 갈대와 돌이끼, 철쭉나무, 가둑나무 – 모두모두 의좋게 모여산다. 나는 내 마음의 티끌과 독소를 거기서 발산시킨다.

그것도 頻度(빈도)가 높을수록 感興(감흥)이 鈍化(둔화)한다. 싱거워서 맛이 없다. 그래서 그만 뒀다.

우리집 바로 옆에 목욕집이 있다. 우울하고 정신이 안 나면 목욕집에 간다. 훨훨 벗고 따가운 “기본탕”에 몸을 잠근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녹이는 것이다. 영어로 말한다면 warming up이다. 때를 밀고 냉수로 샤워하고 나면 心身(심신)이 가쁜하다.

산책의 대용품이다.

명은은 이제 어른들 그늘을 벗어났다. 자기 또래끼리 찾아가고 찾아오고 한다.

명혜도 언니 가는 데는 기를 쓰고 같이 간다. 아빠 엄마가 나갈 때면 명혜도 따라간다. 그러나 명은은 무슨 요청이 없는 한, 집에 있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도 명은을 “귀염둥이”로만 취급할 수가 없어 서먹해진다. 명은은 어떤 물음에든지, 또 어떤 사건에든지 지체없이 자기 이견을 말하고 자기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아주 착하다. T.V.에서도 살인 장면 같은게 나오면 낯을 가리고 돌아 앉는다. 전쟁에는 절대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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