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0일 월요일

[범용기 제6권] (1631) 교회와 정치

[범용기 제6권] (1631) 교회와 정치

“政治”(정치)란 것은 바르게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바를 정(正)자 여에 칠복(攵)자를 썼습니다. “攵”(칠복) 자는 支의 변형입니다. “친다”는 것은 살짝살짝 어깨를 두들겨서 Remind시키는 정도의 건드림이랍니다. 죄 없는 사람, 의 사모하는 사람을, 나라 사랑하는 사람을 몽둥이로 패고 주리를 틀고, 비행기 태우고, 물 먹이고, 어른 통조림하고 하는 따위 악독한 고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治”(다스릴 치)는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다스린다”는 말은 ① 정돈한다, ② 바로 잡는다, ③ 인정에 거슬리지 않게 한다, ④ 만든다, ⑤ 감독한다, ⑥ 가지런하게 한다, ⑦ 수리한다, ⑧ 병 고친다, ⑨ 익힌다, ⑩ 견준다 등등의 뜻이라고 대사전에 쓰여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 “政”(정)은 철학, 이념, 이상, 표준 등 지도 이념이고 “治”(치)는 그 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과 행동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구약성서 첫 장인 창조 설화에서부터 “정치”는 동반합니다. 더 따져 말한다면 창조질서 자체가 하느님의 “정치”였습니다.

“하느님이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시고” 그들에게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했습니다. 합동번역에는 “모든 생물을 부려라”고 되었는데 다스린다는 것은 “부린다”는 것보다 더 높은 윤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관리하고 개발하라” R.S.V.에서는 “Subdue them”, “have dominion over them”으로 번역되었습니다. 통틀어 말한다면 “정치하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창세기 2장 15절(J문서)에는 하느님이 지으신 인간을 에덴동산에 있게 하시고 그것을 다스려 지키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스린다”는 것은 개간하고 밭갈고(Till and Keep) 보전하라는 뜻으로도 번역돼 있습니다. 지구를 개발하고 수호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그 환경을 개발하고 수호함으로써 “정복”하는 것입니다. 밀림과 잡초와 독충, 독사가 우글대는 지면을 아름다운 곡식밭, 꽃동산으로 만들 의무가 있다는 말이겠습니다. 인간은 그가 처해 있는 환경을 상대로 “정치”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자연을 바르게 다스리는 “정치” 보다도 자연을 약탈하고 파괴하는 “악정”에 미쳐 돌아갔기 때문에 자연은 황폐해지고 그 황폐해진 자연이 다시 인간에게 침략적인 보복을 감행하여 “낙원상실”의 비극을 연출하는 것입니다. 요새 오염문제 갖가지 Ecological Problem이 그 일례가 아닙니까?

“낙원”에서 추방된 인간, 그 천진한 상태에서의 인간은 지혜와 함께 욕심이 자라서 자기 중심적인 이기주의적 삶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역사”를 만듭니다.

“가인”은 폭력정치의 강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의 동생인 “아벨”은 하느님 신앙적인 약자였습니다. 하느님의 관심은 약자인 아벨에게 기울어질 밖에 없습니다. 잃은 자녀에게 부모의 심정이 더 쓰이는 것과 같습니다. “가인”은 이것이 싫었습니다. 질투의 악화가 불 붙었습니다. 아우 아벨보다도 힘이 월등하게 센 가인은 문제 없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억울하게 죽은 아벨의 피는 땅에서 하늘에 호소합니다. 하느님이 모르는 체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애절합니다.

하느님은 가인에게 묻습니다.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렇잖아도 질투의 불이 가슴에 이글대던 가인은 발끈 성이 났습니다.

“내가 내 동생이 파숫꾼입니까?”

“네가 한 일이 그게 무어냐?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내게 부르짖고 있다.”

어쨌든, 가인은 폭력정치적 “강자”로서 세속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인간상”이고 아벨은 하느님 신앙 때문에 순교자가 되어 “구원역사”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가인의 후예는 세속적, 폭력적, 지배적인 강자로 더욱 발전했습니다. 산업을 발달시키고, 성을 쌓고, 악기를 만들고, 무기를 제작하고 했습니다. 그 직계 자손인 “라멕”의 시대는 말하자면 “전성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라멕은 권력정치, 권력왕국의 지배자로서 “기고만장”이었습니다. 칼을 만지며 “검가”(칼의 노래)를 부릅니다.

“나를 다치지 마라
죽여 버리리라.
젊었노라고 내게 손찌검 말아
죽여 버리리라.
가인을 해친 놈
일곱갑절 원수 갚는다면,
내 몸을 해치는 놈은
일흔 일곱 갑절 보복 받으리라.”

아무리 보아도 현대국가에까지 발전한 “강력정치”는 가인의 후에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서는 힘이 하느님 노릇을 합니다. 우리 대통령께서도 이 라멕의 “칼노래”를 부르며 독재를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4장 마지막에 보면, 자식 없이 순교한 아벨 대신으로 하느님은 “셋”을 세워 아벨의 대를 잇게 했습니다. 셋의 아들로 “에노쉬”가 나서 “에노쉬”가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드렸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에노쉬”란 말은 “인간”이란 말입니다. 인간 중에서도 약하고 고요하고 그러면서도 하느님을 맘 깊이 모시고 사는 인간을 의미한답니다. 그가 처음 하느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런 숨은 생명의 역사를 지하수 같이 보전해 주십니다. 그 후예들이 “구원역사”를 만들고 전하고 계승해 왔습니다. 하느님 아들이자 “참인간”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약속을 성취했습니다. 지금도 이 혈맥이 고난 한국에서 맥박치고 있습니다.

소돔ㆍ고모라 얘기는 도시 문명을 상징한 것입니다. 번영과 부요와 부정과 부패와 음란으로 차 있는 “도시”,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그 속에는 바르게 다스리는 사람이 열 사람도 없었던 도시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 가족이 거기 살았었습니다만, 그들은 소극적으로 자기 식구를 바르게 간직한 것 뿐이요, 적극적인 사회참여나 사회개혁에 나서지는 못했고 그럴 용기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타락한 도시에는 부와 육적 향락과 인간 만용이 난무했을 뿐, “정치”는 없는 도시였습니다.

껑충 뛰어 출애굽기를 봅시다.

유목 민족인 힉소스 패거리에게 파괴됐고 짓밟혔던 애굽문명의 재건, 국토와 신전과 왕총(Pyramid)의 건설 등 거대한 공사에 착수했습니다.

인력 부족 때문에 이주민인 야곱 족속을 징용하여 중노동을 강제했습니다. 그들을 노예화했습니다. 애굽의 라메세스는 현대 정치적으로 보더라도 제일급의 정치가였습니다.

라메세스는 인구정책, 특히 이래민인 이스라엘 또는 유다족의 인구에 대하여는 극도로 제한하려 했습니다. 갖난 “모세”도 하마터면 이 정책에 희생될 뻔 했었습니다만 애굽 공주의 모성애와 친어머니의 숨은 지혜로 애굽 문화 속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왕족으로 자랐습니다.

그는 양어머니인 애굽 공주의 궁궐 안에서 세상 교육을 최고로 습득했고 친어머니에게서 하느님, “야웨”와 “선민” 아브라함, 그리고 그 역사와 언약의 전승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이스라엘 민족의 후에요, 애굽민족의 일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강제노동에 기진맥진한 동족의 한 사람이 애굽인 공사감독에게 두들겨 맞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민족적 의분이 불붙는 폭탄 같이 터졌습니다. 그는 애굽인 공사감독을 죽여 모래밭에 묻었습니다. 그는 도망쳐 시내산에 숨었습니다. 거기서 불붙는 가시덤불을 보았습니다. 그 불은 가시덤부를 태워버리는 불이 아니라, 가시덤불을 빛나게 하는 영광의 불이었습니다. 이상하다, 어디 가보자 하고 불붙는 가시덤불을 향해 걸었습니다. 그는 그 앞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너를 애굽 왕에게 보내어 내 백성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려 한다. 내가 너와 함께 간다. 두려워 말아라.” 모세는 갔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기적으로 애굽 왕에게서 자기 민족을 해방시켜 하느님을 “왕”으로 모시는 “신정왕국”을 세우려 했습니다. 그는 홍해를 건너 사막길에 들어섰습니다. 40년(?)을 방황하며 새 나라 건설을 구상했습니다. “정치”를 연습했었습니다. 그가 들어가려는 국토는 가나안 – 조상의 나라였습니다. 그는 요단강 건너편 중앙고원과 지중해 블레셋 평원을 멀리 바라보며 소망 중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가 받은 법은 독재인간의 법이나 민중의 법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정점으로 한 정치를 지향하는 “법”이었습니다. 그 “명령”도 “긴급조치령”이나 계엄령이 아니라, 공의와 사랑을 내용으로 한 야훼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권위요 법이요 계명이요 율례였습니다.

가나안에 입주한 후 부족자치 시대인 “사사”(士師) 즉 “판관”시대를 지나 사울, 다윗, 솔로몬 등의 통일왕국 시대가 전개됩니다.

그들의 정치형태가 “신정”에서는 차츰 멀어지는 경향이었습니다만, 그래도 하느님을 “만왕의 왕”으로 모시는 데는 크게 다른 바가 없었습니다. 좋게 말해서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선한 정치를 하자는 것이 그들의 본심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건축은 그들 민심 수습의 정치수단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야훼 신앙, 특히 애굽에서 해방시켜 조국에까지 돌아와 새 나라를 세우게 해 주신 하느님에 대한 감격이 그 “불씨”였다고 봅니다. 그래서 다윗은 정부청사 보다도 성전을 먼저 지으려고 밤낮 맘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하느님 정치에 어긋나는 정치를 안하게 되겠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하느님도 정치를 하는 것이고 임금도 정치를 하는 것입니다. 정치는 주권자의 본직입니다.

군주정치 시대에는 주권이 임금에게 있었기 때문에 “임금”이라면 으레 정치를 전업으로 하기 마련이었습니다. “임금”이라면서 정치를 안한다든지 정치를 게을리 한다든지 정치를 잘못 한다든지 하면 그는 왕위에서 추방돼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어느 헌법에도 한결 같이 쓰여져 있습니다. 공산국가도 “인민 공화국”입니다. 그러므로 국민의 제일차적인 관심과 의무는 정치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어중이 떠중이가 모두 정치무대에 나서서 “난무”할 수도 없고 하니까 주권대표제가 생겼습니다. 말하자면 자기들의 주권행사를 가장 충실하게 맡아 대행할만한 대표자를 자기들 그룹에서 뽑아자기들의 정치행사를 대신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선은 아니라도 가능한 최선은 된다고 자타가 공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폭력배가 흉기를 들고 이 민주체제 구성 요원들을 협박 살상하고 국민이 주권을 강탈 독점한다면 그것은 담을 넘어 침입한 절도요 강도일 것입니다. “강도”가 강도당한 주인의 대표자일 수는 없습니다.

기원전 8세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야 등등은 역사를 꿰뚫어보는 눈을 가진 탁월한 정치비판가들이기도 했습니다.

아모스는 북왕국의 전성시대인 여로보암 2세 때에 그 번영을 타고 밀려온 부정, 부패, 불법, 우상숭배, 빈농 수탈, 사치, 타락, 난행들을 들어 불원에 나라가 망할 것을 예고했습니다. 아모스는 남왕국 출신입니다. 호세아는 북왕국 출신입니다. 그는 북왕국이 범죄자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북왕국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가 자기를 배반하고 딴 남자와 통하여 집을 나갔다가 길가의 창녀로 타락한 사건을 맘아프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창녀된 아내를 사랑으로 달래어 다시 속량하여 가정을 사랑의 보금자리로 되살렸습니다.

그는 이런 자기 경험에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계약의 아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라 했습니다. 아내인 이스라엘은 “바알” 신이라는 지방신을 따라 집을 나가 제단 앞에서 종교적 창기가 됐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그는 막대한 댓가를 내고 배반한 아내를 속량해옵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타이르고 감싸주고 해서 첫 계약을 되살립니다. 이스라엘이 죄인이면 죄인일수록 하느님의 사랑은 더욱 뜨거워집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속죄사랑을 8세기 앞서 예견한 사랑의 예언자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 체험이었다고 믿어집니다. 아무 것도 아닌 자기와 같은 인간으로서도 이런 심정을 가질 수 있는데 하물며 하느님이야 더욱 그렇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속죄사랑은 이런 사랑의 성취였습니다.

이사야는 당초부터 왕족 또는 귀족출신으로서 궁정의 예언자였습니다. 그가 본 하느님 비전은 “높고 높은 보좌에 앉으신 금색찬란한 왕복에 몸을 감싼 만왕의 왕 야훼”였습니다. 그 앞에서 천사들이 왕좌의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그 하느님이 유다왕국을 심기도 하고 뽑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고 허물기도 하는데 너 이사야가 내 “입”이 되어 나 대신 내 말을 왕과 백성과 만방 앞에서 대언하라 했다는 것입니다(이사야 6장). 그의 예언은 선이 굵습니다. 남성적입니다. 정치적 예언이 거의 전부입니다. 그 중에서 한 실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기원전 721년 시리아 에브라임 연합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였습니다.

이 전쟁은 메소포타미아 평원에서 앗시리아 제국을 누르고 새로 일어난 신바빌로니아가 남쪽의 노대국인 애굽을 제압하기 위해 남하정책을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북으로는 바빌로니아, 남으로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접경국가였습니다. 말하자면 시리아와 이스라엘과 유다는 강대국의 중간에 끼인 약소국들입니다. 약소국들이 단합하여 바벨론의 남침을 막자보자 하여 유다의 가맹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거기에 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선 시리아와 북왕국 즉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연합하여 “유다”를 침공한 것이었습니다. 유다도 자기들 연합체에 가입시키자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이 전략을 강요하려 했습니다. 백성들은 광풍에 휩쓸리는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습니다. 임금인 “아하스”는 안절부절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저수지를 시찰하고 있는 아하스 왕을 못가에서 만나 아하스를 격려했습니다. “네가 믿지 아니하면 결코 서지 못하리라.” “이스라엘과 시리아, 그들은 타다 남은 부지깽이 같은 존재들이다. 오래잖아 저절로 꺼질 것이다” 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시리아 북쪽에 도사리고 있는 신바빌로니아에 밀사를 보내어 구원을 청했습니다. 이사야는 깜짝 놀라 왕을 호되게 책망했습니다. 그렇잖아도 남침야욕에 기회만 노리고 있던 신흥 강대국 바벨론은 광풍같이 내리밀었습니다. 시리아 에브라임은 호랑이에게 쫓기는 토끼같이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군대는 성전을 약탈하고 유다를 속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쓸만한 사람은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기원전 6세기에 바빌로니아 왕 “네부가드네자르”가 “유다”를 아주 멸망시키고 유다의 알맹이 인간들을 또 포로로 줄에 엮어 끌고갈 때의 예언자는 예레미야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대세가 이미 결정되고 유다는 망할 밖에 도리가 없으니 차라리 저항전쟁 보다도 긴장완화에 의한 민중안보에 주력하라고 예언했습니다. 무리한 항거보다도 새로운 선민으로서의 새로운 언약을 믿고 고요히 새 사람 운동에 주력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적행위로 오해한 민중은 예레미야를 죽여버리려 했습니다. 구사일생으로 우물에서 구출되기는 했습니다만 그는 포로의 행렬에서 풀려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 왕국은 망국의 한에 잠겨 회복될 장래가 막연하게 됐습니다. 성전은 허물어져 폐허로 남았습니다. 주전 586년 유다 왕국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살아, 영원까지 “말씀”을 외칩니다.

필자가 이렇게 장황하게 써내는 것은 예언자의 주제가 하느님의 일러주시는 말씀에 따라 그 당시의 역사 현실을 상대로 정의와 자유와 질서와 사랑을 선포하고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 인간의 사회생활, 정치생활 등을 포함한 전체로서의 인간생활 전부분에 하느님 나라 씨앗을 심어 자라게 하자는 것이었음을 증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교회와 정치의 관련성을 요약한다면 -  교회와 세상은 둘로 갈라 대립시킬 수 없는 일체 양면이라는 것과 세계는 하느님이 창조한 하느님의 세계라는 것,  현 교회는 국가, 민족, 교파, 계급 등으로 나눠져 있지만 세계교회로 한 Fellow-Ship 안에 있는 한 몸이라는 것, 에큐메니칼 교회라는 것,  정치는 국민의 생활전반, (개인 또는 단체)를 외부적으로 구속하는 권력체제라는 것,  교회는 정치권력에 추종하여 “만년여당”이 되든지, 정부권력의 부패 부정, 횡포를 규탄하고 수난하는 “만년야당”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런 경우에 “여”에는 권력과 부패가 따르고 “야”에는 정의와 항거가 있다는 것, 이것이 십자가의 길이요, 예수의 제자직이라는 것,  교회는 정치권력의 인간화를 위하여 정치 비판, 참여, 운동, 가능한 최선에 대한 후원, 이상적 정치형태의 제시 등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천명할 것,  교회는 사회와 역사를 정치신학적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교직자와 교회임원 등과 교회원들과 교회 바깥 인사들에 대한 “의식화” 운동으로 부단히 계속할 것,  예수의 정치는 “정치부재”가 아니라, 고차원적 정치였다는 것, 기원 313년에 콘스탄틴 대제를 통하여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역사 안에 군림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  종말심판은 역사 안에서도 집행되지만 역사의 종말에는 세상역사가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역사에 포함되어 “구속사” 만이 영광으로 빛난다는 것,  이 종말의 완성을 goal로, 기독자는 역사의 그리스도 교회에 출전할 것 등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역사 안에서의 하느님의 정치란 어떤 형태의 것일까? ① 언약(Covenant), 하느님과 국민과의 “계약”을 기초로 한다는 것, 그 계약에서 전국민의 Consensus, 즉 합의를 요청한다는 것, 민주적입니다. 이 국민의 Consensus없이 정치를 전단하는 독재정권은 찬탈자라 하겠습니다. ② 도덕과 신앙과 법률을 한데 묶은 “율법”을 세워 삶의 Norm으로 삼는다는 것, ③ 역사 안에 이상적인 왕, “메시야”가 오신다는 것, 이것이 정치의 Idialism, Utopianism이며 인간역사의 미래지향적 소망이라는 것, ④ 이것은 인간 상위적인 정치, 특히 가난하고 약하고 병들고 눌리운 인간군상을 상대로 하는 정치라는 것, 하느님은 왕이실 뿐 아니라, 아버지시고 의로우실 뿐 아니라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 사랑하시고, 심판하실 뿐 아니라 용서하시는 분이라는 것, 법을 존중하지만, 정죄하는 법보다도 은총의 법을 시행하신다는 것, 지배보다도 봉사하신다는 것, 예언자임과 동시에 목자시라는 것입니다. 그는 강자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강자는 그 힘을 봉사의 도구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와 정치는 갈라질 수 없습니다. 교회는 역사의 주동자임과 동시에 정치의 주역으로서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정치 혐오증은 초대 선교사들의 “타계주의”에서 자라난 것입니다. 그것은 정신적 식민지의 터닦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기독교적인 정치참여는 잘만 하면 이웃 사랑의 행동부대가 됩니다. 교회 본위로 보더라도 이웃 만들기 위한 대규모적 선교고장의 정지작업이 됩니다. 맛 잃은 소금, 꺼진 등불이 되지 않기를 위한 성역(聖役)이고 왕업(King’s Bussiness)이기도 합니다.

1977년 N.Y. 지구
학생 수양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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