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4일 수요일

[범용기 제6권] (1625) 언론인 대회에서

[범용기 제6권] (1625) 언론인 대회에서- 1975년 12월 13일 오전 9시 -

N.Y. Stoney Point

민주사회에 있어서 인권과 민권을 수호하기 위한 가장 직접적인 활동이 “언론”이란 것은 두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입법, 행정, 사법의 3부가 분립하여 서로 감시하며 견제하면서 협력하는 대의제도가 민주정치의 구조적 “불문법” 같이 당연하게 됐다는 것은 상식이겠습니다만 이른바 “제4부”라는 언론이 없으면 그때 그때의 구체적인 사건 보도에서나 행정부 수반의 민의 위배조치 등에 대한 즉각적인 응전 기능을 상실할 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행정부 수반은 그 권력을 남용, 오용 또는 악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서도 직접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언론 특히 신문, 잡지들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남과 북을 막론하고 독재 정권이 장기화 되어 3부가 한 사람 – 그것도 악인 축에 가산될, 한 인간에게 독점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법” 위에 있어서 그 자신이 법이 됩니다. 법은 그를 위한 법이고 그를 섬기는 시녀요, 그 자신이 법에 제재되지는 않습니다. 말하자면 “폭도정치”가 되고, 그것도 장기화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 “언론”도 관권에 의하여 극도로 제약됩니다. 국민 언론이 KCIA의 가혹한 사찰망에서 “스크린” 됩니다. 결국 인쇄돼 나온 때에는 국민의 소리가 아니라, 독재자의 소리로 변모하게 됩니다. 일선 기자들이 언론자유와 사회정의를 위하여 모험하며 취재한 생생한 국민의 소리와 행동이 말하자면 생동하는 “특종뉴스”들이 “미들 매니저” 단계에서 어딘에가 탈락돼 버립니다. 간혹 최종단계까지 통과한다 하더라도 그 정수(精粹)는 증발되고 “혼” 잃은 시체같은 기사만이 눈에 뜨입니다. 기자들이 분노와 반발이 얼마나 할 것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그런 상태가 10년, 20년 계속된다면 기자들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가 “알 권리”, “표현할 권리”, “비판과 결단의 권리”, “행동의 권리” 등등에 마비를 일으켜 모두 멍청해지고 비전 없는 “쌀벌레”로 침전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역사의 새로운 창조와, 성장의 세계적 본류에서 밀려나 여가리에서 거품물고 맴돌다가 썩어버릴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도 한국의 민족지로 전통을 세운 동아일보는 가능한 최선을 다해 싸웠습니다. 특히 그 기자 여러분은 언론자유를 위하여 “순교자” 같이 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기자님들 중에도 같은 숭고한 전투에 투신한 분들이 많습니다. Middle Manager 이상은 경영주와 직결된 위치 때문에 그 결단에 있어서 기자님들 보다 더 어려울 것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경영주와 편집진과의 분리, 또는 분권이 분명치 못하고 자본주 또는 그 대표자가 사장이 되어 그 신문사의 전책임을 진다는 사실입니다. “전 책임”은 “전권”을 동반합니다. “전권”은 다음 단계에서 “전책임”을 말살하는 “전권”에로 전진합니다.

어쨌든, 지금 한국에는 3부가 없어짐과 동시에 제4부도 없어지나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언론자유가 있는 것 같이 정부는 가장합니다만, 사실은 “언론부재”올시다.

이런 경우에 해외 한국인들이 좀더 진지하고 강력한 언론을 전개하여 본국의 언론질식 상태에 자그마한 들창이라도 열어, 생기를 유통시켜야 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지금까지에도 북미주 한인사회에 여기저기 언론기관이 서 있습니다. 일간지는 못 된다 하더라도 주간지는 대도시에 산재합니다. 같은 애국동지들입니다. 그러나 흔히는 고군분투의 숨가뿐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대한 사업을 위하여 사계의 동지 동료자들이 한 번 합석하여 그 고충을 서로 나누고 장래를 협의하고 유효한 공동전선을 결성할 마음의 준비마저 미흡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번 이 모임이 마련된 것입니다.

이 모임을 위하여 N.Y. Church Center에 봉직하고 계신 이승만 박사가 여비 등을 마련하는 데 큰 수고를 담당했습니다. 이승만 박사는 사실 중동지방 담당자인데 한국일에 열중하는 것은 “덤”으로 하는 “섬김”입니다. 본부 동료들 말에 “이박사, 네 Head는 중동에 있고 Heart는 한국에 빼 돌린 것 아니냐?” 하고 농담한답니다. 이 박사는, “어떤 때에는 Head까지도 한국에 가 있다” 하고 대답했답니다. 물론 한국을 담당한 분이 열심히 일해줍니다만, 이 박사가 ○○○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회중을 대표하여 감사합니다.

우리가 토의 할 과제들은 많은 것 같습니다. (1) 상황보고가 있겠고, (2) 장래 계획도 나눌 수 있겠고, (3) 가장 어려운 난관의 소재를 발굴할 수 있겠고, (4) 경영에 도울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도 있고, (5) 신문이 개인의 사영에서 “공기”(公器)로 정립되게 하기 위한 구조의 개혁도 토의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6) 신문윤리 헌장도 만들 수 있겠고, (7) 본국에 대한 공헌, 특히 민주화와 통일촉진의 문제에 있어서의 논조의 방향도 숙고할 수 있겠습니다. 그 밖에도 토의사항은 얼마든지 튀어 나올 것입니다.

이번에 다행한 것은 신문학을 전공하신 이재현 교수가 이 회의에 동참한 사실입니다. 사계의 전문가로서 솔직한 비판과, 개선에 대한 방안 등을 지시해 주실 줄 믿습니다. “박사”는 많지만 신문학 박사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한국에 장권(張權) 박사가 계십니다만 그 밖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희소가치”로 보더라도 우리 이재현 박사를 잘 모셔야 하겠습니다. 박수로 환영합니다. (박수)

여러분의 협력으로 이 회의가 화기 애애한 가운데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바라면서 개회의 말씀에 대신합니다.

[1975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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