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7일 수요일

[범용기 제6권] (1613) 민족의 파수꾼

[범용기 제6권] (1613) 민족의 파수꾼(에스겔 3:16-21)

“내가 너를 이스라엘 민족의 파수꾼으로 세웠다”(17절) 했습니다. 에스겔은 기원전 597년 제1차 바벨론 포로 때 사람입니다.

신흥세력자인 바벨론의 네브가트네자가 애굽 세력 권내에 있는 유다 왕국을 가만 둘 까닭은 없었습니다. 대뜸 군대를 출동시켜 유다를 정복하고 쓸만한 유대인은 모조리 쇠사슬에 얽어 바벨론에 옮겼습니다. 에스겔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민족과 함께 망국의 슬픔을 나누며 그도 포로 대열에 포로가 되어 적국에서 포로로 지냅니다. 포로민들은 강제노동에 쓰여집니다. 그들은 ‘기백’이 없습니다. 불꺼진 ‘재’가 됐습니다. 조상들이 지은 죄의 열매를 우리가 거두게 됐으니 벗어날 길도 회개할 기회도 없다고 체념합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바벨론 사람들에 ‘동화’가 되어 살 길을 마련하자는 약삭빠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선민’이 다 무어냐? 하느님이 우리 조상의 하느님, 우리들의 하느님이라면 우리를 왜 이렇게까지 망하게 했겠느냐? 하느님이 다 뭐냐? 하고 원망하며 무신론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대로 버려둔다면 민족적 Identity도, 야훼 신앙의 전통도 국가의 회복도 기대할 수 없는 무역사(無歷史)의 유랑민으로 상실될 것 같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청년 예언자 에스겔은 하느님께 호소했습니다. 그는 해골 골짜기에 퇴적된 해골들이 다시 살아 큰 군대가 되는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는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웠다”하는 야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한국민족의 파수꾼입니다.

구한말 나라가 망하기 직전에 한국에도 기독교가 들어왔습니다. 여기저기 교회가 섰습니다. 교회는 한국민족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구습에 젖은 유교도들과 교만과 완고로 굳어진 양반계급에 회개와 개화를 촉구했습니다. 그래서 이상재, 윤치호, 유성준, 박승빈 등 양반사회 인사들도 믿었습니다. 그들은 용감하게 서민층에 접촉했습니다. 일반 민중에게 복음이 넓게 퍼졌습니다. 교회가 각처에 섰습니다.

교회마다 학교가 설립됩니다.

거창스러운 딴 건물이 없어도 됩니다.

오막살이 교회당이 학교 교사이기도 합니다.

한국교회는 망국의 극한선에서 우리 민족의 하수꾼 노릇을 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유다 왕국이 극한선에서 외쳤으나 나라는 망하고 만 것과 같이 우리나라도 회생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습니다. 1910년, 나라는 일본 군국주의 침략에 망하고 합방조서와 함께 2천만은 일본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교회도 포로된 한국민족 속에서 그들의 ‘파수꾼’으로 계속 활동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에 민족의 해방이 선언되었을 때, ‘파수꾼’도 함께 해방의 기쁨에 함성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미군정 3년, 이승만 정권 10년 가까이를 지난 오늘에도 하느님이 주신 민족자유를 제대로 누리느냐 물으면 모두 머리를 가로 흔들 것입니다. 이북에서는 민족 자유가 공산 독재자에게 포로 되었고 이남에서는 군벌의 자루 속에 꾸겨져 들어갔습니다.

4ㆍ19 의거를 계기로 민주당 정권이 서기는 했었으나 9개월만에 반란군인들 총칼에 포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런 당면한 현실 속에서 한국교회는 아직도 한국민족의 ‘파숫꾼’으로 제 구실을 하고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암흑속에서 때의 새벽을 전하는 전령자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까?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소수 창조적 그룹에서는 이 일을 하고 있는 줄 압니다. ‘창조적 소수’가 예언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전체로 본다면 “악하게 게으른 종”임을 면할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왜 이러할까요?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습니다만 교회관계 얘기니까 우선 ‘신학’ 면에서부터 천명해 보기로 합니다.

(1) 첫째로 – 한국교회의 타계주의적 신학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천당가시오” 하는 것이 선교포어로 되어, 적어도 50년을 ‘특허품’처럼 전매해 왔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나와서 교회에 들어와 충실하게 교회생활을 하다가 죽을 때에 교회에서 직접 영원한 천당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천당은 기화요초 만발한 아름답고 즐거운 고장이고 영생복락의 행복만 차고 넘치는 고장이라고 합니다. 거기까지 가면 그것이 구원이란 말입니다. 그것이 예수 믿는 목적이랍니다.

이 구원에 참예하지 못한 인간들은 예외없이, 죽은 후에 지옥의 꺼지지 않는 불 바다에 던져진답니다. 거기에는 돌이킬 기회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영원한 고통만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서운 Terroism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털끝 만큼도 남은 데가 없고 오직 분노와 보복만이 있는 상태입니다. 이 무서운 징벌에 걸려서는 안되겠다 하여 너도 나도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온 것입니다. 위의 말들은 대충 그렇다는 것이고 예외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의 목적을 온전히 내세에 둔다면 현세에서의 역사는 없습니다. 현세의 역사는 우리의 신앙 내용에서 탈락됩니다. 이런 無歷史 종교는 인도나 불교에서도 볼 수 없는 희안한 ‘도피’요, ‘비인간’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2) 다음 단계에서는 어떠했습니까?

3ㆍ1운동 이후, 과학 기술학적 문명의 영향을 받은 청년 학생들과 일반 사회인사의 사상경향은 점차로 현세주의, 세속주의로 흘렀습니다. “사후천당” 같은 데는 별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사후처리’나 하는 하느님이라면 “어디 그때 가 보자!”하는 식의 모멸이 앞서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교계에서도 “천당” 얘기보다도 “교회” 얘기가 많아졌습니다.

“예수 믿고 천당가시오” 대신에 “교회에 나오십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잘 나오노라며는 천당신앙도 생길 것이라는 소망도 포함된 것임에 틀림 없겠습니다만, 어쨌든, ‘천당’ 보다도 ‘교회’가 강조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이런 방향에서의 선교가 오래 계속되는 동안에 ‘교회주의’가 성장했습니다.

교회가 신성하고, 교회가 천국의 현관이고, 교직자는 성직이고 하느님의 사자고 특별은혜의 배찬자고 등등 교회의 특권화가 정립되었습니다. 그 대신에 세상, 역사는 장망성(將亡城)이고 속되고 부정하고 죄악의 도성이고 심판날 유황불에 타버릴 운명의 고장이라고 외치게 되었습니다. 그런 비참과 사멸을 면하려면, “일치감치 ‘교회’라는 노아의 방주에 들어오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교회주의자’가 한국교회원과 교직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성한 교회, 거룩한 교직자가 어찌 세상일, 특히 정치에 관여할소냐? 하여 스스로 거룩한체 얼굴을 내리 다듬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태”를 살펴보면 집권층 정치인에게는 ‘아부’랄 수 있을만큼 순종하면서 정의를 말하는 교계 인사들에게는 “왜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느냐”고 나무랍니다. 그들에게는 ‘야’만 정치고 ‘여’는 정치가 아닌 것으로 느껴지나 봅니다.

한국교회가 한국민족의 파숫군이라면 바른 소식을 바로 전달해야 할 것입니다.

(3) 더 능동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입’이라고 했습니다. 이 역사의 급류 여가리가 아니고 바로 그 복판에서 하느님을 대신하여 역사운영의 권력자들을 깨우치고 경고하고 편달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에스겔에게 분부하신 말씀을 되새겨 봅시다.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쳐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요,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그 생명을 보전하리라(3:17-19).

교회가 민족의 “파숫꾼”이라면, 악을 행하는 권력자에게 “네가 그렇게 하면 죽는다. 너만 죽는 것이 아니라 3천만 국민을 함께 죽음에 몰아넣는 것이다” 하고 경고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인의 본직이요 결코 해도 좋고 안해도 무방한 “By Job”이 아닙니다. 그것을 말하고 안하고 하는데 따라,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의 운명이 결정될 뿐 아니라 말하는 그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바른 말을 해서 상대방이 돌이키면 좋지만, 그러지 않고 더 완악하게 된다하더라도 너는 네 할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을 해도 그가 고칠 것 같지 않고 오히려 더 못되게 굴지 모르니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이 났다고 영리하게 침묵을 지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만, 이런 경우에서는 ‘침묵’은 ‘덕’이 아니라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침묵은 불의에 동조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최소한 “예”와 “아니오”만은 분명하게 발언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근자에 한국에서 학생들이 ‘데모’를 하면 15년에서 사형까지 시킨다고 공포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도메’는 그들의 의사표시오 평화적 행진이기 때문에 반란도 질서파괴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15년 종신 심하면 사형언도까지 한다고 하니 그것은 ‘악인’ 중에서 초고급 악인일 것입니다.

“데모”는 예언운동에 있어서 예언자들의 상징적 행동(Symbolic Action)에 유사한 표현방법입니다. 그것이 15년, 종신징역, 사형에 해당될 이유는 천하인간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있을 수 없는 폭군의 만행이라고 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4) 또 하나의 경우가 있습니다.

“의인”이 그 의에서 떠나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의는 무효가 된다는 것입니다. (3:20) 그러므로 너는 행악자를 깨우치는 것과 같이 ‘의인’도 깨우치라고 한 것입니다. 그가 돌이키면 좋고 돌이키지 않아도 네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은 삶의 황혼기에 들어서 불의에 말려드는 일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그가 저축했던 기왕의 의는 무효가 되고 마감의 불의만이 남아 그를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경종입니다.

한국교회가 한국역사의 ‘파숫군’임을 회피할 길이 없습니다. ‘말씀’의 바른 전령자가 되어 ‘파숫꾼’의 구실을 멋지게 해내야 할 것입니다.

1974년 11월 24일 Boston
시세로 교회에서

댓글 1개:

  1.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변절자들을 발견합니다. 역사의 현장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두각을 보이던 사람들 중에 그의 인생 마감까지 그 신념을 지키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외부의 요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협박, 회유, 유혹). 우리나라 역사 중에서 소위 일제 강점기 시대의 친일파들이 그 부류에 속합니다.

    그런데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내부의 요인입니다. 원래 처음부터 그 신념이라는 것은 올바른 정신의 바탕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이런 행동을 하면 내 이름을 드러낼 수 있겠지?' 이런 마음의 바탕이 있어서 정의로운 행동처럼 스스로를 포장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원래 추구했던 이익(명성, 부귀, 영화)을 위해서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때 흔히 하는 고정멘트가 있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소위 '구국의 결단'이라고 스스로의 변절을 포장합니다.

    대한민국 역사의 격동기를 거쳐온 장공은 80세를 넘기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했을 것입니다. 한때는 자신보다 뛰어난 강직함으로 크게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 어느 순간 변해버린 것도 수없이 목격했을 것입니다. 가끔은 그런 시대적인 흐름에 홀로 저항하는 것은 아닌지 고독하고 외로웠을지도 모릅니다.

    '나 하나 눈감고... 나이 핑계를 하면서 모른척 하면 되지 않을까?'

    아마 이런 생각이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지만 늙어까지 고생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주변에서 말하는 것보다 내면에서 '이젠 그만해도 될 때가 되었고... 이때쯤 은퇴해도 주변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을꺼다' 이런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쌓아왔던 '의' 보다도 마감의 불의가 하나님의 기억에 더 생생하게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계속 그를 역사의 현장에서 예언자로 살게 했던 것 같습니다.

    변절자... 하면 우리의 머리에 다양한 사람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바로 오늘의 역사 현장에서 "아니 저 사람이~?"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오게 하는 사람도 있고... 과거 역사 속에서 반면교사로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떠한지를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나는 과연 그동안 '의'를 저축해 놓고 있었는가? 마감의 불의를 이야기하기 전에 이전의 삶 자체가 '의'를 행하는 삶이긴 했는가?

    그래도 나름 내 삶의 원칙으로... 양심에 의거해서... 옳다고 생각했던 것을 아직도 붙잡고 실천하며 살고는 있는가?

    장공은 글의 제목을 '민족의 파수꾼'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파수꾼은 아무나 하나?'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