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2일 월요일

[범용기 제5권] (135) 輓章文記(만장문기) - 내 형제 정준 박사에게

[범용기 제5권] (135) 輓章文記(만장문기) - 내 형제 정준 박사에게

‘정준’ 박사는 진정 내 형제입니다. 신학적으로 ‘한신’의 건학정신을 끝까지 주장하고 지키고 후배들에게 전하려고 최후의 일각까지 충성한 형제입니다.

한신의 존폐문제를 몸으로 느끼며 몸부림칠 때 정준 박사는 ‘연합신학대학원’의 이미 닦아진 자리를 떠나 ‘한신’의 시련을 지고 격랑 속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래서 한신을 재생시켰습니다. 도미하는 어느 학생편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만지장설을 써 보내신 그 마감편지를 장공은 확대경으로 비춰가며 읽었습니다. 그 한신을 사랑하는 일편단심은 순교자의 모습을 새기는 ‘육비’(肉碑)의 판각(版刻)이었습니다. 히틀러가 독일의 고백교회를 뽑지 못한 것과 같이 박ㆍ전 군사독재도 한신과 한국의 고백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제 정준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몸으로 폭탄 삼아 마감 순간의 하늘을 찬란하게 불태웠습니다.

우리는 세계 여기 저기서 흩어져 삽니다. 그러나 다같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삽니다. 우리가 새벽 날개를 타고 하늘 저편에 간다해도 거기에 하나님이 계셔 우리를 품어 주십니다.

맏 자제 영일군은 Drew 대학에서 구약전공 학위받고 지금 Boston에서 교회를 새로 세우고 부지런히 목회에 정열을 쏟고 있습니다. 사실 정준 목사는 학자지만 상아탑 안의 학자는 아니었습니다. 목회를 하고 싶어했고 또 목회를 했습니다.

영일 군도 아버지 대를 이어 구약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아버지처럼 목회합니다. 아버지 못잖게 정열적입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그대로 닮았다던 둘째 자제 영철군도 와싱턴에서 오래잖아 학위를 받을 것입니다. 어쩌다 내가 와싱턴에 가며는 무척 반가워합니다. 한번은 없는 학생살림인데도 디너까지 차렸습니다.

주재숙 장로님도 자녀손을 돌보시려고 자주 미국에 왕래하십니다. 한번은 영일군과 함께 토론토에 나 만나러 일부러 오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럼 내 형제 정준 목사! 다시 만날 때까지 주님 모시고 영원히 즐거우십시오.

(1982. 장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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