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9일 금요일

[범용기 제5권] (122) 동경에서 – 권력자와 ‘야인’

[범용기 제5권] (122) 동경에서 – 권력자와 ‘야인’

임군과 백성, 독재자와 국민, 장교와 사병, 대통령과 선거권자 – 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두 대립 계층은 엄연히 있어왔고 금후에도 있을 것이다. 힘을 과시하려는 사람들과 그 힘을 제약하려는 사람들은 대립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불법하게든, 정당하게든, 한번 권세 맛본 사람은 권력욕에 자기를 묻는다.

중국에 어느 성군(聖君)이 지혜롭고 어질고 덕 있는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그 후보자를 찾고 있었다. 어느 치벽한 산꼴에 숨어사는 ‘허유’라는 분이 욕심없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그 뜻을 전했다. ‘허유’는 더러운 말 들었다고 말없이 맑은 시냇물에 귀를 씻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던 사람, 대통령이 될뻔 했던 사람, 의례 대통령이 됐을텐데 그 특권을 총 칼든 군인부대에게 날치기 당한 사람, 언젠가는 기어코 한번 대통령이 되보려는 사람 등등이 한국 정계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당연하고 대견한 일이다. 김대중 씨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그러나 세월이 바로되어 김대중 씨가 민주적인 새 ‘정당’을 조직하고 그 당수가 되어 대통령 입후보까지 한다하더라도 그 표밭이 그분 일색일 것으로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본국에도 대통령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한둘 만이 아닐 것이고, 그 중에는 평소에 대통령 감으로 정치와 행정면에 일가를 이룬 정치인도 있을 것이고 자기 정치 신념 때문에 감옥살이 한 분들도 한두 분이 아니다. 그런 이들이 난립(?)할 경우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학생표, 군대표, 교인표 등등의 표밭 ‘정글’도 여기저기로 분열될 것이다.

‘장공’이 이런 말 하는 것은 그 어느 분의 ‘대통령격’을 긁어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잇살 먹은 교직자로서, 또는 성서적으로 본다면 하늘의 말씀을 대언할 의무를 맡은 자로서 ‘말’의 진실은 지켜야 하겠기 때문이다.

김대중 선생이 워싱턴에 오던 날, ‘장공’은 83세의 몸으로 워싱턴 공항에 갔다. 어느때엔가는 그가 ‘대통령’이 되리라는 요량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자기 양심을 지켜 두, 세 번 죽음에서 살아났다는 그 ‘고난의 인간’을 존경해서였던 것이다.

그날밤 같은 호텔 옆방에 들었었기에 밤 늦게까지 ‘정치담’ 아닌 ‘고난의 종’으로서 진담을 얼마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아침 새벽에 토론토로 날아왔다.그이와는 어제밤에 작별인사까지 해 두었기 때문에 더 번거롭게 굴지 않았다. 그 후에 그가 어떤 일들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늙은이’의 알 바도 아니겠고 알 길도 별로 없다.

어느 친구의 덕분에 그의 3ㆍ1절 기념 N.Y. 강연 광경을 ‘오우디오 비전’으로 청문한 일이 있을 뿐이다. 그의 종교적 신앙과 신학은 건전했고 정치적 신념도 확고해서 믿음직스러웠다.

옛날 이스라엘에는 정치, 경제, 종교, 문화, 생활양식 등 모든 생활부문에서 드러난 악, 숨은 악을 파내고 쪼개고 진단하고 치료하는 ‘민간인’이 있었다. 그들은 ‘예언자’라 했다. 어떤 권력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서 그들을 질책하고 충고하고 심판하고 그 미래를 선고한다. 요새로서는 자유롭고 진실한 ‘언론인’이 그 부류의 한가닥을 계승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교회의 성직자가 그 본류를 계승한다.

나는 ‘대통령’과 성직자란 과제를 다시 생각한다. 예수께서 8복을 말씀하실 때, 기독자의 수난은 ‘복’이라고 말씀하시고 “너희들보다 먼저 왔던 예언자들을 이같이 핍박했느니라.” 그 말씀으로 크리스챤이 예언자 계열에 속했음을 명시하셨다. 김대중 씨도 ‘예언자’ 중의 하나다. 그러나 그의 본직이 ‘정치’니 만큼, 그는 정치적 예언자라 하겠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대언자다. ‘대통령’ 또는 대통령 될사람, 되려는 사람이라 해서 ‘귀하신몸’, ‘높으신 이’라고 함부로 치켜 올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도 ‘직위’와 ‘위신’과 자기과시(Self aggrandization)와를 혼돈하지 않는다.

김대중 씨가 미국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그 ‘이미지 따운’이 따를 것이 아닐까 걱정된다. 하루 속히 귀국해서 ‘국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종시 때가 안오며는 ‘대통령’ 직위같은 것은 아예 잊어버려도 좋다. 자유한국의 역사 속에 ‘한알의 밀’을 심고 가도 영광이겠지만, 그것이 썩은 밀알이 아니라면 반드시 재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 동안에 해외민주인사, 특히 ‘민통’ 관계 사람들이 어떻게 그의 구명운동에 애썼다는 것, 북미주 민주단체들이 어떻게 민주전선 통일을 위해 ‘산고’를 겪었다는 것, ‘민통’과 ‘UM’이 단일전선을 형성하기까지에 어떻게 좁은 문을 드나들었다는 것쯤은 알아줘야 할 것이고 그 동안에 자기 관계에서 수고했다는데 대하여 말로망정 ‘감사한다’는 인사쯤은 있어야 할 것이다. 그가 도착 성명에서, 리건 대통령, 에드워드ㆍ케네디 등에 대한 감사를 표명할 때에 해외민주 단체들에 대해서도 한 마디도 위로 또는 격려의 말이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점잖지 못한 줄 알면서도 적어둔다.

다시 말하거니와 성직자에게는 거룩한 ‘프라이드’가 있다. 그리스도는 헤롯왕을 ‘여우’(Fox)라고 공언했다. 빌라도 총독 앞에서는 ‘침묵’으로 무시해 버렸다. 높은 자리를 노리는 사람일수록 周公(주공)의 겸허가 요청된다.

[1982. 12. 24]

댓글 1개:

  1.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김재준 목사는 정치인들 중에서 대안적인 지도자로 '김대중'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

    정치인은 응당 정권획득과 대통령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 최선이 다른 사람에게는 '편법'이나 '불법'으로 보일 수도 있고... '꼼수'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승자독식'이 허용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제도에서 "무조건 되고 보자!"는 심리가 해방 이후 수많은 지도자들이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 편법과 무리한 방법을 동원하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쿠데타 등)

    이제 상황이 어느 정도 바뀌어서 보다 민주적인 방법을 통해 정상적인 방법으로 지도자를 선출하는 시스템으로 조금씩 방향 전환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지금으로부터 거의 40년전이라고 할 수 있는 1980년대 초반의 정치 상황은 상당히 오리무중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김대중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재야인사였지만... 바로 그러한 상황 때문에 제일 먼저 제거될 수 있는 유력한 재야인사이기도 했다.

    김재준 목사는 김대중을 바라보면서... 대통령에 대한 욕심을 비우고... 처음에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려고 했던 그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역사 속에서 진정한 지도자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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