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7일 목요일

[범용기 제4권] (93) 野花園餘錄(其四) - 霸道(패도)의 쌤플

[범용기 제4권] (93) 野花園餘錄(其四) - 霸道(패도)의 쌤플

진시황의 “통일천하”는 “이패제패”(以覇制覇)의 더 강한 패도(霸道)였다. 민심이 그를 따르지 않았다. 중국은 대야에 담긴 물이 아니라, 술렁이는 대해(大海)다. 진시황의 ‘천하’는 ‘바다’요, ‘연못’이 아니었다. 만리장성을 쌓고, 중앙집권을 제도화했지만 ‘바다’는 잔잔하지 않았다.

위선, 한패공 유방(漢沛公)과 초패왕 항우가 내란경쟁을 벌였다. 누가 먼저 ‘아방궁’에 쳐들어 진시황을 암살하느냐가 그들 ‘승갱이’ 목표였다. 무궁무진한 권모술수다. 우리나라 ‘장기’도 그걸 본딴 노름판(板)이다.

항우도 유방도 學의 사람은 아니었다. ‘항우’는 書(글)이란 제성명 쓸 줄 알면 된다고 호언한다. 고리타분한 학자들이 싫었던 것이다. 필요한 경우에 불러다 쓰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항우’는 천재적인 군인이었다. 힘은 산을 뿌리채 뽑을만하고 기백은 천하를 휩쓸만했다. 싸우면 못이긴 일이 없고 침입해서 쫓겨난 예가 없다. 그런데 그는 ‘보오스’ 기질이 없었다. 자기 과신 때문에 부하를 멸시한다. 유능한 인사를 의심한다.

‘유방’은 ‘능구렝’이었다. 모든 일에 ‘무리’가 없었다. 반대의견을 들어준다. ‘항우’의 진영에서 빠져나온 유능한 장성들을 무조건 환영하여 더 높은 직위에 임명한다. 그는 ‘Battle’에서 ‘항우’에게 진다. 그러나 ‘War’에서는 이겼다.

‘항우’는 완전포위를 당했다. 달밝은 밤이었다. 그는 두 애처를 끼고 단기로 포위망을 뚫어 탈출했다. 고향땅에 가려고 ‘오강’가에 왔다. 자기를 포위한 군단에서 ‘회향’의 노래가 울려 달 밤의 진지를 일렁인다. 그것이 모두 ‘초나라’ 민요였다. ‘항우’는 자기 병정에게 포위된 것을 알았다. 그는 마감 노래를 불렀다. 그것이 ‘力拔山氣蓋世…’의 노래다. “내 이제 무슨 면목으로 고향에 갈꺼냐?” 그는 칼을 빼어 두 애처를 자르고 타고 온 말 목을 베이고 칼 끝을 돌려 자결했다. ‘사면초가’란 여기서 나온 말이란다.

‘중원’은 ‘유방’의 손 안에 굴러들었다.

[1974]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