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5일 수요일

[범용기 제4권] (48) 군인 정치 – 뱀과 두 가닥 혀

[범용기 제4권] (48) 군인 정치 – 뱀과 두 가닥 혀

뱀을 노리개 동물삼아 안고 쓰다듬고 뺨에 대고 목에 감고하면서 애완하는 젊은 여인도 있다. 텔레비전에서 봤다.

또 어떤 기독교 종파에서는 마가복음 16장 18절에 있는 말씀 “믿는 사람들에게는 표징이 따르게 되는데… 뱀을 쥐거나 어떤 독을 마셔도 결코 해를 받지 않겠고 병자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다”한 구절을 ‘신자’ 자격 심사에의 유일한 출제로 해서, 진짜 독사를 쥐고 가슴에 안고 목에 감고 하면서 무대 위에서 자기들의 신자격을 데모 한다. 그러다가 독사에게 물려죽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어쨌든, 내게는 개나 고양이처럼 뱀을 쓰다듬을 뱃장은 없다.

뱀은 냉혈동물이어서 닿는 손길부터 ‘선뜻’하다. 따쓰한 데가 없다. 냉혈이란 점에서는 개구리나 물고기도 마찬가지겠지만 뱀의 냉혈은 다른데가 있다. 뱀은 어떤 다른 동물과 친하려 하지 않는다. 진짜 그리스도 왕국이 땅 위에 완성되는 날에는 온전히 “새 땅” 새 질서일 것이고 따라서 이사야의 예언서와 같이 “젖먹이가 살모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뗀 어린이가 독사의 굴에 겁 없이 손을 넣을 수 있을 것이다(이사야 11:8).

“하나님의 거룩한 산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없고 바다에 물이 넘실거리듯 땅에는 야훼를 아는 지식이 넘치리라”(이사야 11:9).

우리가 희구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란, 자유와 정의와 질서가 바다에 물 덮이듯 인간 역사에 차고 넘치게 하자는 운동이다. 이건 이것 그대로가 종교적이고, 종말론적인 푯대에 직결된 경기 “코오스”다.

내 나라만이 아니라, 어디를 가나 “해치거나 죽이는 일” 없는 세계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본국 소식은 다르다. 어디를 가나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당연히 행세한다. 서로 해치니까 해 입기가 두려워 아예 사귀지 않는다.

인간관계에 냉기가 서린다. 왜 그렇게 됐을까? 독사가 물고 감고 뒤틀고 하는 나라기 때문이다. 이 독사는 광주에서 천명 단위의 인간을 개구리 삼키듯 잡아 먹었다. 그리고서는 김대중이란 큼직한 사슴을 통째로 꿀꺽해 버리려고 두 가닥 혀를 남실거린다.

뱀에게 제일 정떨어지는 데가 있다면 그건 “독”도 아니고, 땅에 배를 문지르며 다닌다는 것도 아니다. 어디 숨었다가 갑작스레 덮친다는 것도 아닐 것이다. 제일 얄미운 것은 역시 혀끝이 두 가닥이라는 것이 아닐까?

야고보는 “혀에 자갈 물리라”면서 “혀에는 사람을 죽이는 독으로 가득차 있다”고 했다(야고보 3:8). 사람은 혀 하나로 쓴 말, 단 말 다 하지만, 뱀은 아예 나면서부터 두 가닥 혀를 쓴다.

불신, 불성실, 속임, 거짓증거… 뭐든 자연스레 해치운다. 이런 뱀이 다스리는 나라는 불안, 공포, 피해, 살벌의 나라 일 밖에 없다. 뱀은 길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때려 잡을 궁리부터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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