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5일 수요일

[범용기 제4권] (46) 군인 정치 – 들뜬 교만

[범용기 제4권] (46) 군인 정치 – 들뜬 교만

유다왕국 시대의 “에돔”은 사해 저편 험한 바위 절벽에 둘러쌓인 자연요새(Citadel)의 나라다. 그래서 그 당시 강대국들도 함부로 손대지 못했고 손댔자 오히려 손해라고 계산했었다.

그러는 동안에 “에돔”은 개구리 배때기처럼 제 김에 부풀었다.

“누가 능히 나를 바닥에 던지랴?”

선민의식의 “트림”이 목구멍까지 치민 유다 족속은 “양반” 교만으로 가슴이 쑤신다.

“옛날 다윗 같은 임금이 나서서 저 에돔 쌍놈들을 진흙바닥에 짓이겨 줬으면 속 시원하겠다.”

그러는 동안에 북쪽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망하고 남쪽 유다는 신바벨론에 망했다. “선민”이노라고 뽐내던 치들은 모두 쇠고랑 차고 줄에 꿰여, 후려갈기우며 걷어 채우며 피투성이 되어 호지땅으로 끌려 간다.

그때, 에돔 사람들은 구경삼아 길바닥에 나와 모두 손뼉치며 놀려댔단다.

“선민 양반들 꼴 좋쉬다. 어디 양반 자랑 좀 더 하시지….”

이런 “조롱” 때문에 유다족은 에돔과 원수가 됐다. 이를 박박 갈았다. “에돔”도 조상을 따지면 같은 뿌리에 달린 가지인데, 원 저럴 수가 있나?

“안됐구나! 한마디 해줘도 우리는 눈물나게 고마울텐데!”, “인제 너 에돔에겐 ‘저주’밖에 남길 말이 없다.”

“네가 독수리 같이 높은데 집짓고, 별들 사이에 네 둥지를 튼다해도 거기서 내가 너를 잡아 내리라,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다….”

뭣 때문인가? 결국 교만 때문이다. 인간 교만, 민족 교만, 나라 교만 등등이 지혜의 눈을 덮어 씌웠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은 죽음에 이르는 일곱가지 “악덕” 가운데서 “교만”을 첫째로 꼽았다. 그리고 제일 마감에 남녀 관계의 “음란”을 들었다.

나는 우리나라 형편을 비춰 본다. 소위 집권자들의 “교만”은 형편없다. “북”에서는 “민족의 태양”이라고 말끝마다 치켜 올린다. 그 놀음에 으쓱해서 더 그러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남”에서는 민의야 어떻든, 반란으로 독재자가 되어 “법” 위에 앉은 법 없는 “폭군”으로 자기를 “전능자”의 위치에 세운다. 말하자면 “독수리 같이 높은데 집 짓고, 별들 사이에 둥지 튼” 교만자들이다.

그러나 “거기서 내가 너를 잡아 내리라”하고 야훼는 말씀하신다. 남과 북의 집권자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일반 시민도 에돔 사람 못잖게 차갑다. 고난받는 동족을 헐뜯는 일, 거짓 증거로 “의인”을 재판하는 판검사, 거짓을 제작하는 언론기관, 악당의 꼭두각시로 구차스레 출세하는 종교인 – 그 맘의 근본을 따져보면 뭔가 영웅주의 한번 높은데 앉고 싶은 교만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때문이 아닐까? 진짜 “임금”은 스스로를 “과인”(寡人)이라 했다. “작은 사람”이란 뜻이다.

댓글 1개:

  1. 30년도 훨씬 전의 글이지만...
    장공 김재준 목사님은...
    최근까지의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어쩌면 아직도 현재진형형인 상황이 더 많다...)

    동족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정권 연장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정치인들...
    동족을 헐뜯는 사람들...
    거짓 증거로 재판하는 사법부...
    거짓(가짜뉴스)을 제작하는 언론기관...
    종교의 본질을 망각한 종교정치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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