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9일 월요일

[범용기 제3권] (253) 北美留記 第六年(1979) - 보쿰에서

[범용기 제3권] (253) 北美留記 第六年(1979) - 보쿰에서


12월 14일(금) - 조반 후에 산중호 여관을 떠나 장목사 내외분 동승 “보쿠움”에 갔다. 보쿠움 중국음식점에서 국과 채를 먹었다.

토론토에 가서 성탄선물로 나눠줄 자자부레한 선물들을 샀다.

보쿠움 병원 우리 간호원들과 부근의 우리 교포들이 보쿠움 병원 우리 간호원 기숙사 한 방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예배 순서와 사회는 거기 모이는 간호원 아가씨들의 자치에 맡겨져 있었다.

장목사는 설교만 한단다. 오늘은 내가 설교했다.

부근에 있는 강대인 군이 와서 예배에 동참했다. 대인군 아파트에 가서 늦게까지 얘기했다. 부인이 덕스럽고 첫딸애 윤애는 영리하고 귀여웠다.

본국에서는 계엄령은 선포되고 군인끼리 분렬되어 총격전까지 있었다고 한다.

대인군 Apt.의 한 방에서 유숙했다. 윤애는 두 살백인데 한국말 독일말을 곧잘 gsek.

“나는 할아버지가 셋이다. 강할아버지, 김할아버지, 이할아버지!”

점심 먹고 떠날 때에는 할아버지 간다고 마구 운다. 수유리 명은애 같이 귀엽다.

6PM에 이삼열 박사 부부의 Apt.에 옮겨 거기서 유숙했다. 전기담요 속이 따뜻해서 온천장의 하룻밤을 연상시켰다.

12월 16일(일) - 오후 2시에 보쿠움 교회에 갔다. 이삼열 박사가 사회했다. 내가 설교 “인간의 시대”라고 제목을 붙였다.

점심식사는 교회에서 밥과 국과 김치를 준비했다. 질의문답 시간에는 “질의”보다는 걸고드는 반론이 많았고 “대답”을 기다린다는 것 보다도 자기 주장을 연설하는 사람이 많았다.

12월 17일(월) - 12시쯤에 장목사 부부와 함께 듀이스벅 비행장에 나가 2시 30분발 “부리티쉬에야”기로 서백림에 날았다.

3:30PM에 서백림에 내렸다. 정하은 박사가 기다리고 있다. 그의 Apt.에 갔다.

오랫동안 쌓였던 정담과 그의 사하라 사막 여행담 등등이 새로 한시반까지 계속됐다. Mrs. 정이 인절미를 꿀에 잰 중참을 들여왔다. 별미였다.

12월 18일(화) - 오전은 정박사 댁에서 지내고 오후 6시에는 한독협회가 주최한 “한국의 날” 모임에 참석했다.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는 백인들이 출석의 3분의 2를 점령했다.

말하자면 독일인에 대한 한국문화선전의 날이었다. 한국무용, 탈춤, 한국노래 등등이 연출됐다. 김문환씨가 지도감독한 것이란다.

김문환은 자기가 창작안무한 “고민”이란 무용을 자기 혼자 몸으로 연출했다. 괴로움 몸부림이 지금의 한국이란 뜻일 것이다.

정박사 댁에서 유숙했다.

12월 19일(수) - 정박사 집을 9PM에 떠나 푸랭크풀트에 날았다.

정박사와 路上作別은 서운했다. 再會의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푸랭크풀트 공항에는 손규태 부부가 기다린다.

곧장 토론토행 Luthansa기에 갈아탔다. 북극권을 넘어 몬트리얼에서 한 시간 쉬고 토론토에 난다. 이목사가 공항에서 맞이해 준다.

이 목사 집에서 그 동안의 정보를 교환하고 10시반에 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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