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3일 화요일

[범용기 제3권] (201) 北美留記 第五年(1978) - N.Y.에 – 인권의 날 시위행사 뒤에

[범용기 제3권] (201) 北美留記 第五年(1978) - N.Y.에 – 인권의 날 시위행사 뒤에


12월 4일 – N.Y. 이승만 박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인권의 날”에 “대데모”를 하자는 것이었다.

12월 9일 – N.Y.로 간다. 9AM에 이 목사 차로 공항에 나가 11:30AM에 이륙, 12:30에 N.Y.에 도착했다. 이승만 박사가 공항에서 맞이해 줬다. 같이 그의 사택에 갔다.

저녁 후에 임순만, 김정순, 한승인 내외분 등, 예의 민주인사들이 모여 내일 “대데모” 준비에 바빴다.

12월 10일(일) - Washington에 갔다. 이승만 박사 집에서 조반을 먹고 아침 예배를 드렸다. 내가 설교했다. 곧 떠나서 Shuttle로 Washington을 향했다. 백악관 앞에서 데모를 정비했다. 우리 만이 아니라 필리핀, 이란, 그리고 백인 친구들까지 한데 모여 데모대원이 약 100명 되었다.

고세곤이 사회했고 내가 개회연설을 했다. 필리핀 상원의원이 연설한 후에 Fraser 의원의 축사를 “프레이저”의 여비서(?)가 대독했다.

U.M., 민련, 인권의 세 단체 연합주최였는데 일체가 되어 행동했다. 조금 후에 최덕신, 최홍희 장군도 합세했다. 임창영도 참석하여 성의를 다했고 “민통”에서는 개인으로 많은 인사가 내참하였다. 문재린 목사도 시종 같이 했다.

데모 “코오스”는 우리 영사관, 일본 영사관, 국무성 등 언제나 정해진 “코오스”다. 경찰서 허가 없이 하는 ‘데모’였기에 간 곳마다 옥신각신이 있어서 뭘 하는 것 같은 기백도 돋보였다.

대법원 앞 광장에서 마감하고 N.Y.에 돌아와 한승인 장로 댁에서 만찬을 나누고 11시까지 간담하다가 11시 반에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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