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8일 목요일

[범용기 제3권] (155) 北美留記 第四年(1977) - 디트로이에

[범용기 제3권] (155) 北美留記 第四年(1977) - 디트로이에


1월 27일(목)에서부터 디트로이, 랜싱, 또한 한고장 순회강연하기로 되있다.

랜싱에서 시작하여 디트로이에서 마치도록 된 순서다. 그런데 함박눈이 바람에 휘몰려서 비행 “스케쥴”이 엉망이다.

랜싱행은 “캔셀” 됐단다. 혹 “디트로이”서 떠나는 편이 있을지 모른대서 디트로이로 날았다. 못 간단다. 시카고에서는 있을지 모른대서 시카고에 갔다.

봐야 알겠다고 기다리란다. 저녁때까지 기다렸는데 결국 “랜싱” 행은 모두 취소란다.

그럴바에는 토론토로 간다고 했더니 토론토 공항은 아주 닫혔다고 한다. 할 수 없이 근처 “할리데이 인”에 들렀다.

7불짜리 디너 먹고 25불짜리 방에서 잤다. 이 비용은 후에 비행기회사에서 변상해 줬다.

1월 29일(토) - 토론토에 돌아왔다. 내일 꼭 디트로이로 와야 한다는 김신형 여사의 전화가 왔다.

1월 30일(일) - 오후 1시 40분에 토론토 공항을 떠나 2시 15분에 디트로이 공항에 내렸다. 유시홍 박사, 김용성 박사가 멀리 공항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차로 곧장 시내 집회장소에 갔다.

3시 30분에 이재현 박사 강연이 있고 이어서 나의 사회로 디트로이 민건 창립 예배모임이 있었다. 이어서 시노트 신부의 강연과 내 강연 그리고서 “디트로이 한국민주건설 협의회” 창립총회가 시작됐다.

선언문 낭독(김신영), 헌장 통과, 임원선거 등등을 일사천리 마치고 시노트 신부의 B.B.C. 민혁당 사건 기록영화를 봤다.

송석중 박사도 거기서 만났다. 시노트 신부와 나는 김용성ㆍ김신형 가정에서 유숙했다.

1월 31일(월) - 우리 졸업생 최요한 목사와 장시간 담화했다. 그는 “IL매담”들의 인간회복 운동에 성공적인 기록을 갖고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다. 그녀들은 그를 아버지 같이 따른다. 그가 맡아보는 한인교회 장로님은 즐겁잖다.

“거룩한 교회당 안에 그런 더러운 계집들을 들여놓는 목사는 이 교회 체면을 봐서라도 ‘거취’를 밝히라”고 항의한다고 들었다. 이런 것이 기성교회 목회자의 고민이라고 최목사는 나에게 고충을 호소했다.

김신영 박사와 김용성 박사가 처음부터 나가는 교회 목사는 박사학위까지 받은 분인데 그렇게 찰떡같이 “여당”일 수가 없단다. 그 목사가 방송프로그람 위원장인데 내 집회에 대한 방송을 기어코 거절했다고 김신영은 분개한다. 그렇다고 그 교회 창설위원인 김용성ㆍ김신영 부부가 자기들이 창설장로인 본교회를 탈퇴하고 최요한 교회에 옮길 수도 없는 고민이 있다고 했다. 이런 것이 기성교회 평교인의 “딜렘마”라고 그들은 오래 얘기했다.

이 날로 토론토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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