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6일 화요일

[범용기 제3권] (117) 北美留記 第三年(1976) - 교회로서의 RESPONSE

[범용기 제3권] (117) 北美留記 第三年(1976) - 교회로서의 RESPONSE


3월 14일(일) - 안병국 목사와 그 가족이 나가는 와싱턴 침례교회에서 예배했다. 예배자 약 2백명이다. 내가 설교했다. “교회와 세계”라는 제목이다.

예배를 마치고 승규 차로 윤규 박사 집에 갔다. 승규 집 바로 옆 집이었다.

6:30PM 안병묵 목사 집에서 만찬에 초대한다. 목사 8명과 성공회 왕신부란 분이 자리를 같이 했다.

그들은 한국 민주운동의 기독교적 의미를 납득시키려는 목적이었다. 나는 내 재주껏 목사님들에게 설명하고 지금도 젊은 목사들이 예언자적 사명에 부름받아 고난 중에 자유와 정의를 씨뿌리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의식 가진 분은 있는 것 같지 않다. 까놓고 질문하는 분도 없었다. 자기들도 숨은 동지라면서 찬사를 올린다.

그러나 길 바닥에 떨어진 씨앗이랄까 열매 맺혔다는 소식은 없다.

3월 16일(화) - 3:30PM 와싱톤 지방 장로교노회가 모인다.

김응창 장로도 노회원이기에 그의 주선으로 노회 경건회에서 내가 5분간 설교하도록 순서가 짜여 있었다.

나는 히틀러 독재때의 독일교회 얘기에 한국교회 실정을 덧붙여서 신앙 자유를 위해 세계교회 공동전선이 형성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무 반응도 없는 것 같았다.

그 노회에서 사회에 관심과 책임을 느끼는 회원이 얼마 있다고는 하지만 거의 전부가 “교회주의”에 농성한 보수적인 “부자”들인 것 같았다.

나는 내 얘기를 마치는대로 나와 버렸다. 후에 김응창 장로의 노력으로 한국교회를 돕는 무슨 위원회가 됐다는 소문도 들은 것 같으나 내게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3월 16일 – 나는 어젯밤을 “윤규” 집에서 지내고 새벽녘에 일어나 승규 출근차에 동승, 국회도서관에 갔다.

그는 한국부장이다.

승규는 나에게 국회의사당 매점에서 육중한 손가방 하나를 선물로 사준다. 그것이 10년내 나의 민주운동 행각(行脚)에 “괴나리 봇짐” 노릇을 한다.

국회도서관 식당에서 전규홍 박사, 송승규와 나 셋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곧 국회의사당 정면 층계앞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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