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2일 화요일

[범용기 제2권] (143) 후기

[범용기 제2권] (143) 후기


凡庸記 제2권은 제1권에서와 같은 철자의 오류라든지 오식이란 것은 감소된 것으로 믿는다.

이번에도 長空이란 한 인간의 생활기록이어서 어떤 체계 선 ‘학’은 섞여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 어떤 개인의 삶이란 것이 어느 한 고장에 갇혀 있는, 출구없는 ‘아비스’가 아니라, 못견디게 유동한다는데 뜻이 있다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무슨 부챗살 같다고 할까!

한국의 부채는 꿰어 맨 줄거리가 한 점에 모여 고정되어 있고 펴면 그 부채살 주변에 붙은 종이가 그 살과 함께 퍼져서 윤곽이 확대된다. 움직이면 바람이 난다.

범용자의 삶도 그런 것 같다.

‘범용기’ 제1권에서는 주로 개인으로서의 삶과 그 삶의 주변인 가정과 소속교파에 국한된 기록이었다.

그러나 제2권에서는 그 삶이 ‘교회’와 ‘사회’에로 퍼졌다. 주변이 확대된 것이고 선두(扇頭?)가 아주 헤벌어진 것은 아니다.

부채 머리는 언제나 ‘크리스찬’이고, ‘한국민족’이고 ‘민주인사’다.

‘크리스찬’은 범용자의 ‘영’이고 ‘한국민족’은 범용자의 ‘혼’이고 ‘민주인’은 그의 Social body다.

작은 부채지만 펴 갖고 부치면 바람이 생긴다. 그래서 소위 ‘사회운동’이 일어난다. 냉혈동물은 바람을 싫어한다. 컴컴한 동굴이 그의 세계다. 그는 바람구멍을 틀어 막는다. 그러나 바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는 골이 난다. 몽둥이를 휘두른다. 그래도 ‘바람’은 얻어 맞지 않는다.

오히려 더 일어난다. 그는 자기의 ‘라이벌’인 ‘용’(龍)과 싸우는 줄 알지만, 사실은 ‘용’이 아니라 ‘영’(靈)과 싸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범용자’에게는 ‘관전’(觀戰)의 ‘흥미’도 곁들이는 것이었다. ‘범용기’는 그 ‘관전’의 기록의 한 장면이랄 수도 있겠다.

동지들이 모두 자기 맡은 일에 바쁘기 때문에 이번 책은 누구에게 교열을 부탁하지도 못했다. 미비된 점이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범용자’ 자신의 책임이다. 편달해 주기를 바란다.

이번, 제2권에도 정가를 매겼다. 읽으신 분들이 정가대로 송금해 주시면 그에서 더 큰 성원은 없겠다. 그것이 제3권의 ‘산모’가 되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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