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7일 목요일

[범용기 제2권] (75) 인철ㆍ혜원 결혼 – 혜원 결혼 상담

[범용기 제2권] (75) 인철ㆍ혜원 결혼 – 혜원 결혼 상담


막내 딸 ‘혜원’(惠怨)은 1952년 부산 피난 중에 이화고녀를 졸업하고 이대(梨大) 영문과에 입학했다. 1953년에 환도하여 1956년에 ‘이대’를 졸업했다. ‘이대’ 재학중, 이대 총기독학생회장으로 있었다. 나는 학부모란 위치에서 학장, 총장을 면회할 기회가 많았다.

‘혜원’에 대한 그들의 ‘콤멘트’도 자주 듣게 된다. ‘자도자격이 있다’, ‘일처리가 부드러우면서도 실수가 없다’, ‘인화(人和)가 잘 된다’ 등등 칭찬이었다.

졸업반 때에는 캐나다 여선교사로서 ‘이대’ 교수인 미스 Daniels의 조수로 있으면서 그의 교안을 정리하고 교수시간에 통역도 하곤 했다.

미스 다니엘스는 혜원을 ‘유망주’(有望株)로 보았던지, 캐나다 연합교회의 Full Scholarship Student로 추천하여 허락됐다.

그러나 정작 졸업하자마자, 캐나다 연합교회 외지선교부 방침이 변경됐다. 1년 동안 사회경험을 치루고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년을 미스 다니엘스의 비서로 일하게 됐다.

그 동안에 혜원은 장인철과 사랑이 오가게 됐다. 인철은 ‘한신’ 졸업반에 있었다. 경동교회 찬양대에서 테너 파트를 맡기도 했었다. 따라서 혜원과의 접촉도 잦게 됐다. 인철은 유달리 ‘쎈시티브’한 재치있는 청년이었다. 혜원과 2년이나 떠나 있을 자신이 없다고 한다. 사실, 그 당시 그의 정신건강상으로서는 과중한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혜원은 그것을 염려하여 유학을 단념했다.

상철과 나는 2년 유학 후에 결혼하라고 혜원에게 권했다.

혜원은 머리를 가로 흔든다.

“인철의 건강상태로 보아 그것은 무리한 모험이야요.”

할 수 없었다. 나는 미스 다니엘스에게 사과하고, 다른 후보를 추천하라고 했다. 미스 다니엘스는 쉽게 이해했다.

“사랑이란 그런게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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