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8일 월요일

[1211] 제4일의 아침

제4일의 아침


헤롯이 예수를 죽이려고 음모한다는 소문에 예수는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칠 것이요, 사흘째 되는 날에 나의 일을 완전히 이룰 것이다.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그 다음 날도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겠다.”(눅 13:31~33)라고 했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내 길을 간다.” 이것이 예수의 삶이었다. 그 길의 첫날은 죽음, 제2일은 무덤, 그리고 제3일은 부활이었다.

자유하는 민주 한국도 이 세 고비 길을 걷는다. 군사 쿠데타에서 죽고, 유신체제에서 무덤에 인봉됐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셋째 날이 반드시 온다고 믿는다.

제3일 동틀 무렵에 예수의 여제자 몇 분이 성묘하러 갔다. 그러나 열린 무덤 속에 예수의 몸은 없었다. 당황한 여제자들에게 들려온 음성, “너희는 왜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는 부활하셔서 갈릴리로 가셨다…….”(마 28:3~10)

한국에 오신 예수에 대해서도 이런 만남의 대화가 있지 않았을까?

너무 생생한 수난의 현실에서 고난의 십자가가 돋보이고, 고난에의 동참이 신앙인의 보람이 되고 양심의 자랑이 되어 그 고난이 세계 교회 등대에서 반짝이는 유일한 불꽃으로 보이지 않았는가? 이것은 우리의 보람이고 자랑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부터 제4일에의 새로운 명령이 주어진다.

그것은 헤롯과의 대결이나 빌라도 앞에서의 호소, 또는 항변이라는 범위를 넘어서 그리고 바리새인과 서기관, 제사장, 사두개인 등 교권자들과의 논쟁까지도 넘어서 진정 새로운 세기 탄생의 고지(Annunciation)자로서, 새 세계에서의 선교자로서 무한이랄 수 있을 정도로 넓고 무량이랄 수 있을 정도로 많고, 그리고 한없이 높고 깊은 하나님 사랑에 화신(化身)한 인간군으로서의 진군나팔에 발맞춰야 할 것이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제4일은 위대하다. 그것이 제3일 새벽까지의 좁은 문을 통과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그것이 이 사특한 세대에서 그럴 수밖에 없고 그래야 할 과정이었음에는 틀림없으나 일단 통과한 다음의 넓은, 하늘가에 끝없이 퍼진 그 수평선과 지평선 그것은 기막히게 넓은 무대다. 제4일은 그 평원에의 행진을 촉구한다.

그 넓음을 생각할 때, 우선 ‘미시오 데이(Missio Dei)’, ‘에큐메니컬 운동’ 등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어느 정도로 토착화한 우리 언어로 되어 있는가는 아직 문제로 남아 있다. 한국 교회의 다수를 쥐고 있는 예장에는 아직도 생리적으로 소화돼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 세계 교회적인 언어와 그 기관들이 모두 남들이 쓰는 말, 남들이 만든 기관이랄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도 거기에 가입하고 참여한다는 승객으로서의 승차권 소유자랄 것만이 아니다. 그 기관, 그 일 자체가 진정 우리 신앙과 생활의 본분에 속한 것임을 자각해야 하겠다.

WCC란 ‘전 세계 교회들의 의회’란 말이다. 기성 교회로서 가톨릭, 오소독스, 그리고 신교의 각 종파가 포함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교회들은 주로 서양의 국가와 사회 발전과정에서 생성된 것이니만큼 서양적이고 그 지배 민족인 백인의 주도권 안에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지금까지의 얘기고 이제부터는 확실히 그 풍토가 달라질 것이다. WCC는 그들의 무대만이 아니라, 그들과 우리 모두의 집이어야 하며, 그렇게 되기 위하여 우선 그리스도 자신의 집(오이코스)이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란 체제화한 기성 교회만으로 국한시킬 수 없는 세대가 오고 있다. 개혁교회로 말하더라도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중산층이 주도한다. 자유 신앙자들의 헌금에 의하여 경영된다. 거대한 교회당, 명성 높은 설교자, 고도의 문화적 심벌 등은 그 교회의 자랑인 동시에 그것을 위한 막대한 예산이 지출된다. ‘과부의 두 푼 돈’ 따위로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록펠러, 포드, 모르겐 등 억만장자들의 거액 헌금이 요청된다. 그래서 된 교회당은 그들의 기념관같이 된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작은 교회들도 경영학적 분석으로는 같은 유형에 속한다.

그러나 지금부터의 세계는 독점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산대중 또는 짓밟히는 민중의 세계로 그 풍토가 바뀐다. 그것은 그들이 인간군으로의 절대다수인 데다가 인권의식이 각성되고 그 인간권 회복을 위한 공동투쟁 전선이 결정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폭력 정권의 탄압이 한때 그 터진 데를 꿰맬 수 있을지 몰라도 헌 의복을 꿰매는 데는 한도가 있다. 꿰맬수록 딴 데서 더 크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래 역사가 민중의 무대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민중에게는 돈이 없다. 이론 투쟁을 위한 지성도 없다. 이런 약점을 기성 교회 안의 창조적 소수자가 맡아 보완해야 한다.

이 창조적 소수자가 진정 창조적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예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교회라면 예수 이미지를 민중에게 똑 바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1) 예수는 자본가가 아니었고 자본주의자도 아니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그는 돈이 없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나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했다. 또 “돈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지 못한다.” 고도 했다.

2) 예수는 교회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당시의 교회당에서 몰려났다. 그는 자기 나름의 교회를 건설하지도 않았다.

3) 그는 인간주의자였다. “천하를 주고서도 인간 하나의 목숨과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인간 하나가 하나님이 극진하게 사랑하시는 그의 자녀라고 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를 사랑할 줄을 알지 않겠느냐?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는 더욱 그렇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 사랑은 무조건이다. 하나님은 악한 자와 선한 자에게 빛을 같이 비추시고 비를 같이 내리신다고 했다.

4) 그는 거리의 선교자였다. 거리에는 가정과 사회에서 몰려난 나환자, 불구자, 갖가지 병자, 거지 등이 우글거렸다. 그들은 인간 축에 들지 못하는 천민, 기민들이었다. 행인들은 몸의 어느 한 부분이 그들에게 닿기만 해도 부정을 탄다고, 낯을 돌려 피해 다녔다.

그러나 예수의 눈에는 그들이 돋보였다. 성한 자녀도 아버지가 사랑하는데 하물며 앓는 자녀를 더욱 위해 주시지 않겠느냐 싶어, 나환자를 만져 깨끗하게 하고, 병자들을 고쳐주고, 성한 자들을 가르치고, 집권자들 을 책망하고, 죄인과 세리들의 친구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는 민중의 사람이었고, 그가 있는 곳에 민중이 모였다.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집권층, 특권자들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하여 예수를 싫어했다. 다음으로는 무서워했다. 그에게 모여드는 민중은 소수가 아니었다. 수천 명이 그 좁은 거리에 꽉 차서 예수와 함께 움직이는 그 인간 파도는 그들에게 폭풍 전야를 예감케 했다. 다행히 예수의 측근 자 한 사람을 그들의 스파이로 매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예수는 잡혀 국가 반역자란 조작된 죄목으로 십자가 형틀에 달려 죽었다.

이것이 예수의 오늘과 내일을 걸은 ‘길’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명은 죽음에 묻혀 시체로 썩기에는 너무 생명적이었다. 바울이 말한 대로 그에게서 죽음이 생명에 삼킨바 되었다. 그래서 제3일의 부활이 약속되고 실현 된 것이다. 이런 것이 예수의 모습이었다면 역사 안에서 예수의 몸이라고 자부하는 교회의 모습도 그러해야 할 것이 아닐까?

나는 위에서 미래 역사는 민중의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도 민중의 사람이었다면 교회의 창조적 소수자가 할 일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민중 속에 들어가 민중과 그리스도가 일체감으로 하나 되어 인간 구원 운동에 매진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런 경우에 그들의 선교에 의해 생겨나는 교회의 형태는 어떤 것일까? 돈 없는 민중의 교회니만큼 교회당 세우고 목사 월급 주고 할 예산을 편성할 수 없을 것은 물론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와서 푸닥거리해 줄 부흥사도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들은 어느 판잣집이나 어느 가난뱅이 천막에 소수의 그룹으로 모일 것이다. 모이는 것뿐이요, 어떤 사람만이 모인다는 아무 조건도 없다. 독재 권력에 희생되어 학원에서 퇴학된 학생들, 파직된 교수들, 감옥에 갔던 목사들, 그리고 그런 환난 속에서도 어찌어찌 무사히 지낸 남은 백성들, 그런 분들이 그 소수의 그룹들에 메시지를 증언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는 것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보다도 그렇게 돼야 하고 그렇게 되는 그 자체가 제4일 주역으로서의 기독자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민중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새 역사에서 민중이 만든 ‘새 교회’ 형태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민중의 전 생활을 창조하는 생활 공동체며, 그 혼은 살아 계시니 그리스도라 하겠다. 그 형태로 볼 때, 퀘이커나 무교회주의자 그룹에 유사하다. 그러나 그 자기 정립과 생활 양태에 있어서 정도의 차이를 넘어서 유형의 다름을 지향한다고 하겠다. 퀘이커 친구는 자기 개인으로서의 심적 평화, 내적 빛(Inner Light)을 추구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구호사업에 치중한다. 무교회주의자들은 조직체로서의 기성 교회를 전적으로 부인하고 개인적인 임의 그룹으로 성서 연구에 치중한다. 기성 교회에 대한 불신은 양자가 공통이다. 대사회 관계에서는 어떠냐? 그 관심의 밀도는 기성 교회보다 훨씬 짙다. 퀘이커도 무교회 주의자들도 전쟁에 항거하고 투옥 또는 감금되었다. 퀘이커 친구들은 힘에 겨울 정도의 사회구호 사업에 열중했다. 그러나 그들이 정치, 경제 등 체제 자체에 도전하지는 않았다. 그것도 공통점이라 하겠다. 주로 개인적이요, 자기 성찰적이고 정적인 데 치중했다고 할까?

그러나 지금 한국 교회에서의 창조적 소수자들은 1) 교회인으로서 세속에 들어간다. 교회인이지만 그 교회인 형체를 소금 녹이듯 녹여 세속에 배어든다. 그는 자기를 세속인과 일치시켜 일체가 되는 방향을 취한다. 가장하는 것이 아니라 화신하는 것이다. 그들이 모두 온전히 그렇게 됐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려고 스스로를 때려 복종시키는 것이다.

2) 그들의 사회 관심은 그들의 기독인로서의 본분이어서 그들 신앙 고백에 속한다. 예수가 “너희는 세상에 빛이요 소금이다.”라고 했다면 신자로서 세상을 향하여 자기 심지를 태워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고, 자기 몸을 녹여 세상 속에 배어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서 사회 관심을 제외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사회생활 전반을 강제력으로 통어하는 정치세력을 도외시할 수도 없다. 집권층에 아부 또는 추종하는 것도 정치요, 소수 정의파에 동조하는 것도 정치 참여일 것이므로 정치에서 제외된 신자는 한 사람도 있을 수 없다. 거짓 예언자가 되느냐 참 예언자가 되느냐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3) 한국 교회의 창조적 소수자는 참 예언자가 되려고 한다. 또 이미 그렇게 부름 받은 표적(Sign)인 성령의 위로와 기쁨을 은혜로 간직하려고 충성을 다한다. 그들은 예언하고 동참한다. 수난은 그들이 경험하는 영광이었다. 그들은 동적이다.

4) 그들은 ‘체제 불가침’이라는 독재자의 성채를 항하여, 그 체제 자체에 도전한다. 그 체제 자체가 악이고 모든 악정이 그 체제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렁이 뱃속에서 수없이 많은 구렁이 새끼가 나오는 것과 같다. 한국의 현존한 독제체제를 민중 주도의 민주체제로 바꾼다는 것은 난공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진리 편에 선 소수자의 하나님을 플러스한 것은 진리 아닌 독재 권력에서 하나님을 마이너스한 것보다도 강하다. 그래서 그들은 개가를 부르며 전진한다. 제3일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제3일의 소수자들은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아직도 표적인 자유, 정의의 구현을 위해 앞만 보면 달리고 있다. 그러나 제4일 의 새벽은 가까워온다. 때의 징조가 이를 암시한다. 제4일은 전력(戰力)의 묽어짐이 아니라, 총공격을 위한 총력전의 준비의 날이랄까? 이것은 좀스러운 국지전이 아니다. 남이든 북이든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그것이 악령적인 권력인 경우에는 그 어느 것도 규탄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을 것이다. 제4일의 세계는 진정 세계적이기 때문이다.

5) 제4일의 운동은 거대하다. 그러나 정당한 이론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정당한 이론과 철학이 없는 운동은 망동이다. 기독교 운동의 이론을 ‘신학’이라 부른다. 그러나 세속 권력에 아부하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어용학자가 있듯이 기성 교회의 교권에 추종하는 교회의 어용학자도 있다. 어용학자에게도 부분적인 진실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학에 임하는 태도 자체가 진리를 수단으로 악용하는 방향인데서 그 진리도 학으로서의 위신을 잃고 경멸의 대상이 된다.

제4일의 신학도 교회의 신학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의 신학일 것이다. 더 꼬집어 말한다면 인간의 생활신학일 것이다. 하나님을 정점으로 하고, 개인과 사회를 저변의 두 점으로 한, 삼각형적 생명체로서의 생활신학일 것이다. 하향적인 권위주의가 아닌, 자유와 정의와 신실 (Faithfulness)로 교류하는 아가페적 사랑의 신학일 것이다.

이런 방향에서의 신학은 세계 여러 고장에서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보다도 이런 신학의 탄생에 기여할 수 있는 토양이 갖추어져 있다.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국제적으로 수난을 거듭하는 역사, 그중에서도 가장 비참한 수난자인 민중, 밑바닥 민중의 삶에서부터 진정한 ‘민중신학’, ‘서민신학’이 자라 올라올 것이 아닐까? 그 밑거름으로 다원적인 종교, 다양한 전통 문화, 그리고 수천 년을 이어온 고난의 역사, 종교적인 민족성 등등의 영양소가 깔려 있다. 시인 김지하가 자기는 ‘가톨릭 래디컬’이라면서도 ‘밥은 하늘이다’고 한 것은 이런 방향에서 기대되는 서민의 소리가 아닐까? 제4일 신학의 방향은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독점 권위주의가 아니라, 밑바닥에서부터 경험된 서민의 생활신학일 것이다.

댓글 1개:

  1. 우리가 흔히 '민중신학' 하면 안병무나 서남동 등을 머리에 떠올린다. 그런데 민중신학은 어느 한 신학자나 학회의 전유물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김재준 목사의 글을 살펴보면 그의 글 중... 여기저기서 '민중'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나는 위에서 미래 역사는 민중의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도 민중의 사람이었다면 교회의 창조적 소수자가 할 일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민중 속에 들어가 민중과 그리스도가 일체감으로 하나 되어 인간 구원 운동에 매진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신의 신학이 어느 순간에 멈춰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민중신학은 안병무와 서남동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하고... 활발한 민중 신학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전개해 나가는 것... 그것이 수유리 캠퍼스에서 지속적으로 언급이 되고... 소수의 학자들과 학회에서만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현장 교회의 목회자들과 현장교회에 이야기로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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