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1일 금요일

[1154] 장공칼럼 : 뱀과 비둘기 - 1977년 5월 16일

長空 칼럼

뱀과 비둘기


그리스도가 제자들을 “선교에 보내면서”, “지혜는 뱀같이, 순하기는 비둘기같이”하라고 했다. 바르고 착하고 아름다운 일이 무엇인 것을 알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 등등을 다 안다는 것이 “지혜”라면 주의 제자로서 그런 “지혜”에 둔물이어서 안된다는 말씀이다. 뱀은 좀처럼 자기를 노출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가 위험에 부딪힐 때, 그 감지성능이 놀랄만큼 민첩하다. 그래서 재빨리 피한다. 그러나 할 수 없이 적과 대결하지 않을 수 없을 때에는 용감하게 대든다. 그 이빨에는 독이 있다. 독없는 뱀도 있지만 그건 “뱀”이랄 수 없다. 자기보다 몇갑절 뚱뚱한 노루 사슴도 통채로 삼키고 그걸 뱃속에서 소화시킨다. 그것은 타고난 생리요 “지혜”랄 수 없겠지만, 그 체질이 그렇단 말이다. 크리스찬이 독사같은 권력과 대결할 때, 그 지혜가 그보다 모자라는 수준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예수의 경고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순하기는 비둘기같이 하라”는 말씀은 덮어높고 얌전만 하란 말일까?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할 것은 “아니오”하라고 예수는 말씀하셨는데 너무 순해서 “예”도 “아니오”도 말하지 못하는 그런 것을 원한다는 말인가? 물론 그럴 수는 없다. “순”하다는 것은 악마적인 권력이 하라는 대로 “순종”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억울함을 당하는 경우에도 즉석에서 “폭력”으로 행사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것은 예수의 수난기사에서 잘 드러난 예수의 생활원리였다. 이것은 무기력을 의미함도 아니요, 인종(忍從), 체념(諦念), 또는 전략(戰略) 등에 속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승리의 신앙에서다. 하나님이 옳게 여기시고 내 편에 서신다는 신앙과 신념이 필승을 약속하기 때문인 것이다.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서 이기는, 폭력 이상의” 힘이 확약돼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찬의 비폭력적 “순”함은 하나님의 승리에 동참하는 안정된, 차원높은 힘의 “아멘”이다.

비둘기가 이런 “순”함의 씸볼로 될 만큼 “순”하냐 하는 것은 별문제다. 비둘기도 자기보금자리의 안전을 위해 침입자와 싸운다. 그러나 독수리나 사자와 같은 육식동물에 비하면 “순”한편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에 채용되는 영광을 받은 것이라 하겠다.
(1977.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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