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9일 화요일

[0735] 기독교와 문화 / 1966년 3월

기독교와 문화


《새생명》(1966년 3월)

‘문화’란 말은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넓게는 ‘문명’이란 말과 같고, 좁게는 ‘교양’이란 말에 해당한다. 요새 한국에서 이른바 ‘문화인’이라면 문학이나 미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별칭인 것같이 생각되지만 사실 문화인이란 넓은 의미에서의 ‘교양인’을 말한다.

다시 말해 전해진 사회적 관습에 적응해서 예절 바르고 의복이나 외모에 누추하거나 조야한 데가 없고 몸 건사를 정결케 해서 남에게 역하게 느껴질 냄새나 습성을 없이하고, 교제가 능숙해서 좌담도 잘하고 어디 내놓아도 그 환경에 잘 적응해서 빠지는 데 없는 사람을 의미함일 것이다. 교육 정도가 높고 취미생활도 다방면이고, 미술, 문학, 음악 등 교양과목에 대한 지식과 감상력이 있는 인사를 말한다. 이런 것은 물론 기독교적이랄 것도 없고 기독교가 있어서 비로소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세속생활만으로 충분히 형성되는 문화라 하겠다.

그런데 기독교적 전통에서 가장 주류를 이룬 예언자나 사도들은 이런 의미에서의 ‘문화인’이 아니었다. 예언자의 마지막을 장식한 세례자 요한도 온전히 야인이어서 수염과 머리칼은 자라는 대로 버려두고 포대자루 같은 약대털 천으로 몸을 가리고 가죽띠로 허리를 질끈 묶은 조야한 사람이어서 세련된 거라곤 어디도 없었다. 그리고 외치는 말이란 남을 무시한 공격과 회개의 명령 같은 것이었다. 남이야 싫어하든 말든 제 말만 하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그가 요새 말하는 ‘문화인’ 타입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사도들도 그러했다. 바울로 말할지라도 ‘텐트’ 꿰매는 기술노동자로서 주리고 헐벗고 매맞고 까닭없이 능욕당하고 날마다 도살장에 나가는 양 같은 생활을 계속했다. 그는 스스로를 가리켜 “만물의 때와 같다.”고 했다. 그는 헬라 문화의 도성에서 자란 유대교 학자였으니 문화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자기가 좋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분토같이 버렸다.

넓은 의미에서 ‘문명’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종교와 결부 시키거나 종교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언제 어디에서나 인간이 있는 고장에는 문명이 있었다. 그 내용과 정도의 차는 있어도 다같이 문명임에는 틀림없었다. 각기 특수한 민속이 있고, 시비를 가리는 도덕적 표준이 있고, 가정과 사회의 생활양식이 있고, 경제, 법, 오락, 교육, 예술, 인간과 사물에 대한 이해(철학), 그리고 종교가 있다. 이것은 인간에게는 (일반 생물과 다른) 자유라는 열린 문이 있어서 그것을 통하여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이상을 자기들 사회 속에 구체화하는 창조활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그 결실이 곧 문명이었다. 여기서 종교가 문명의 한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였으나 문명 전체가 종교의 산물은 아니었다.

서양 문명을 우리는 기독교 문명이라고 한다. 그것은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한 이래 하나의 기독교적 권력 구조에 의하여 성취한 문명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거대한 권력을 발동하여 종래의 비기독교적인 생활양식을 박멸 또는 흡수하고 모든 문명을 기독교적 방향에서 통일했던 것이다. 이 현상은 중세기에 그 절정에 달했고 문예부흥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분해작용에 의해 악화 또는 변모의 과정을 밟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조성된 소위 기독교 문명이란 진실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한’ 문명이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힘’ 제일주의여서 같은 기독교 국가들 사이에서도 전쟁이 반복되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자 그것을 이용하여 탐욕을 맘대로 만족시켰다. 해외 진출이 열리자 그들은 아프리카, 중동, 인도, 동남아 지역들을 식민지로 만들고 동양 문화의 총본산인 중국까지도 갈라 먹으려 했다. 엄격한 기독교인으로 자처하는 청교도들은 기도드리고 무기를 들고 아프리카의 흑인 촌락을 급습하여 일할 만한 남녀를 모조리 잡아다가 노예시장에서 경매했다. 이런 침략적 제국주의가 기독교의 의복을 입고 세계를 횡행했다. 지금도 미국에서 흑백 분규가 치열하지만, 그것은 이미 심은 악의 열매를 운명적으로 거두는 것이라 하겠다. 그래도 그중에는 소수의 의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거대한 죄악이 어느 정도 속량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스도는 인간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는 특히 약하고 버림받고 짓밟힌 인간들의 친구가 되셨다. 그에게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고 전 세계 모든 인간들은 그의 자녀들이었다. 다만 그들이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어느 한 인간도 폭력으로 정복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인간을 대신하여 자기를 죽음에 내놓을 정도의 사랑으로 대했다. 그는 섬기는 자로 섬기면서 오해받아 죽는 데 이르는 자로 자처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이 참으로 인간답게 되고, 인간으로 대접받고, 서로 인간으로 대접하는 사랑의 공동사회를 이루고자 하였다.

여기에 진정 기독교 문명이 조성된다면 그 문명의 터전은 반드시 이런 ‘그리스도의 마음’이어야 할 것이며, 그 문명이 아무리 찬란하게 발달된다 할지라도 이 방향에서 이탈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방향의 삶이 아니고서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이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구에서의 특히 기독교 왕국, 기독교 문명이 저지른 죄과가 너무나 심했기 때문에 새로 나는 세대들에게 불신을 사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아무리 과학과 기술학의 세계가 되었다 할지라도 기독교 문명이 이런 방향에서 이런 바탕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었다면 결코 멸시나 냉소의 대상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대하려는 인간을 마다할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설사 오해로 인하여 난을 겪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제3일에’ 그 무덤은 반드시 열리고 그 생명은 부활할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 문명이란 그리스도의 마음이 역사 안에서 형태화한 모든 업적을 말하는 것이요, 거대한 사원, 유현(幽玄)한 학리(學理), 제국같이 조직된 교회 등등의 자랑스러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근래 이런 방향에의 관심이 상승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따라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 세계 정황 속에서 정치, 경제, 교육 등에 종사한다면 하는 과제가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기독교 문명이라는 서양 문명이 아주 몰락한다거나 몰락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마음에 비추어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유럽에 있어서는 특히 국교적인 기독교가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자체에 대한 재검토, 즉 기독교 본래의 모습을 찾기 위한 운동도 활발해야 할 것이며, 수천 년 누적된 소위 기독교 문명과 기독교를 혼동하는 상투적인 태도에 대하여도 철저한 재검토에 인색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과학이 역사의 열쇠를 잡고 있으며, 기술학이 인간생활의 실제를 좌우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전통적인 기독교에 대하여 거의 이방인의 위치에 놓여 있다. 이제부터 기독교가 이 과학문명 안에서 담당해야 할 사명은 과학문명에 왕위를 이양하고 스스로 은퇴자의 평안을 누리려는 태도보다도 과학문명에서 감당하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가장 근원적인 인간 문제를 적극적으로 담당 보충하는 일일 것이다. 진정 인간을 인간으로 대접하고 공동사회를 사랑으로 화육(和育)하는 마음의 왕국을 제공하는 일을 자신 있게 감당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한국은 유럽이나 미국에서의 정황과는 다른 무엇이 있다. 우선 한국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었으며, 기독교 문명의 나라도 아니었다. 원시적 유산인 무당 종교가 민심에 뿌리 깊게 전승되었고, 불교와 유교가 번갈아 국교로 행세했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불교적인 무상감(無常感)과 유교적인 도덕이다. 그런데 이 둘이 다같이 호국 종교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망국과 함께 그 긍지를 잃었고, 개화의 새 풍조를 타고 들어온 기독교가 그 공백을 메우는 구실을 담당했기 때문에 기독교의 위치가 국민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한국의 기독교는 그 역사가 한 세기 정도에 불과하면서도 그 앞길에는 아직도 많은 약속과 기회가 놓여 있다는 것을 긍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선교사들에 의하여 우리에게 전달된 서양식 기독교를 그리스도 이미지에 의하여 그 근원에서부터 재평가할 단계에 이르렀다. 이상에서 우리는 구미 제국의 기독교가 순수한 것이 못 됨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양의 기독교보다도 그리스도 자신의 산 싹을 우리의 그루터기에 접목해야 한다. 마치 돌배나무 그루터기를 자르고 거기에 참배나무 가지를 접목하는 것과 같다. 접목한 다음에 그 참배나무 가지를 기르는 영양은 기왕부터의 돌배나무 뿌리에서 온다. 그러나 그 열매는 참배요, 돌배는 아닌 것이다.

고요하고 정서적이요, 시적인 한국인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그 깊이에서 이해한다. 불교와 유교의 문화를 일본에 전달하여 평화리에 일본의 문화 건설에 이바지한 것이 우리 민족이었다면, “또다시 동양의 등불이 되리라.”고 한 타고르의 한국에 대한 기대는 실현되어야 할 예언인 것 같다. “한국을 쥐는 나라가 전 동양을 쥔다.”는 말은 지정학적으로 한국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말함이다.

그렇다면 원래부터 한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그리스도와 그의 새로운 문화를 동양 또는 다른 지역에 전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망상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본질적인 의미에서는 금력이나 권력에 의존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인의 정신적 활력 여하에 따라 성패가 작정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인으로서 새 세기의 문화 건설 또는 그 갱신에 이바지할 수 있는 전선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활화하는 그것이다. 신학에서 유럽이나 영미의 학자들을 앞질러 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교회의 조직과 기독교 사업 기관의 운영에서 소위 기독교 국가들과 경쟁하여 그들 이상으로 공헌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신자 하나하나가 그리스도적인 생활종교에 철저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진정한 그리스도 문화는 태동할 것이다.그것이 곧 유교의 인(仁)을 생활하는 것이고 불교의 무아(無我)의 자비행(慈悲行)에 통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재산도 관록도 없는 30대 청년 나사렛 예수가 전 인류 문화의 선두에 선다.”는 H. G. 웰스의 말은 그리스도인과 문화의 관계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등불이 제 몸을 태워서 방안을 비추고 소금이 제 몸을 녹여 물체를 보존하고 누룩이 스며들어 가루를 변질시키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이 세계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로 살면, 세계는 있고 그 고장에서 그리스도상으로 조정될 것이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종교다. 생활종교로서의 기독교는 날마다의 생활–그것이 정치든 경제든 교육이든 예술이든 간에–그 모든 것들을 모조리 그리스도 질서 안에 포섭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불이 되고 소금이 되고 누룩이 된다. 기독교로 살 때, 그것은 저절로 기독 교 문명이 된다. 문명이란 것은 결국 생활문화여야 한다. 그리스도로 사는 생활이 그대로 그리스도 문명이다. 생활을 떠난, 또는 생활에 무관심한 문화란 내용 없는 형식이다. 기독교는 인간을 이원적으로 갈라 다루지 않는다. 하나의 전인으로 대한다. 따라서 생활도 성(聖)과 속(俗)으로 나누지 않는다. 믿음 안에서 모든 ‘속’은 다 ‘성’이 된다. 그렇게 사노라면 정치는 민주적으로 되고 국제 관계는 평화와 이해로, 사회는 서로 위해 주는 공동사회로, 교육은 인간의 본모습을 되찾는 인간 건축 과정으로 되어간다. 교회가 세상과 함께 타락할 때에도 소수의 ‘영의 사람’, 의인들이 있어 생명 갱신의 핵심이 되곤 한다.

지금 우리는 새 시대의 관문에 서 있다. 전통적인 기독교, 기독교 문화, 그리고 비기독교 세계와 문화 등등이 근본적으로 재검토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와 문화를 두 대립 개념으로 보아 서로 반발했느니, 합해졌느니, 초월했느니, 역설적으로 종합했느니, 변질시키느니 하는 등등의 얘기에 더 오래 머물려 하지 않는다. 생활종교로서의 기독교는 그 표현이 그대로 기독교 문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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