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30일 수요일

[0706] 리처드 니버의 신학과 윤리 / 1963년 10월

리처드 니버의 신학과 윤리


『오늘의 고전』(1963년 10월)

[1] 그의 면모

최근 20년 동안 처음에는 그의 제자로, 다음에는 그의 동역자로 리처드 니버와 가까이 지낸 예일대학 교수 리스턴 포프(Liston Pope)는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최근에 니버는 나에게 말하기를, 그의 최선의 저술은 이제부터라고 하면서, 새로운 차원에서 그의 사상을 발표할 몇 가지 의중의 새 책 제목을 말한 일이 있다.”

“그의 인격의 특징은 자기를 나타내지 않는 무사(無私, selflessness)다. 그는 자기에 대해서 말하려 하지 않는다. 자기 사상에 대하여는 언제나 날카롭고 용감하지만 그의 사사로운 생활면에서는 가장 가까운 친구로도 별로 들어본 일이 없다.”

“그렇다고 그가 냉정한 것은 아니다. 아마도 예일대학 신학부에서 제일 학생들에게 친숙한 교수는 니버일 것이다. 그는 학생들의 마음에 직통하는 감화력을 갖고 있다. 학생들의 각양 번민에 동참하고 그들에게 깊은 동정과 이해를 가지면서 상담에 응한다.”

“대화자로서의 니버의 인상은 단순성과 복잡성이 한데 엉키어 있다는 그것이다. 어떤 때 그의 너무나 단순한 발언에 실망하다가도, 그것을 얕보고 변론을 전개하면, 어느새 고매하고 정밀하고 복잡한 사상의 그물에 걸려, 가장 유능하고 머리 좋다는 학생도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겨우 희미하게 한 줄거리 알아들을 정도로 되어버린다.”

“그의 강의는 충분히 준비된 것이지만, 결코 ‘노트’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는 즉흥적으로 문제를 다루는 것같이 보인다. 말하자면 그는 가르치면서 생각하는 교수라 하겠다. 그러나 그 사상의 전개는 놀랍게도 정연하고 유창하다.”

“그가 갖는 자세나 만들어내는 분위기로 보면, 그의 유명한 형인 라인홀트 니버보다 탈선율이 극히 적다. 그는 훨씬 더 침착하다. 그러나 형만 못지않게 매혹적이다. 말하자면 형은 트럼본을 불고 동생은 플루트를 부는 셈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큰 기대를 건다. 그러기에 참고서 목록도 다량으로 또 다방면으로 주고, 최신의 것까지 정독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게 한다. ‘텀 페이퍼’의 비판과 심사도 엄격하다. 인간은 훈련을 통하여 자기 성품을 건사할 능력이 생긴다고 그는 믿고 있다. 산더미같이 쌓인 학생들의 보고, 논문을 일일이 정독하는 것을 그는 교수로서의 자기 훈련이라고 말한다. 그의 강의에는 청강하는 학생이 전교에서 제일 많다. 그러나 그는 조수의 손을 빌리는 일은 거의 없다. ‘교수가 친히 학생의 노작을 평가하는 것이 교수로서의 당연한 원칙이다’라고 그는 주장한다.”

“니버는 학생들이 질문하고 토론하기를 원하지만 그의 강의에서는 토론이 생겨지질 않는다. 그의 강의 자체가 너무 장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 학생이 자기 동료에게 편지한 가운데 ‘아무도 니버의 기독교 윤리 시간에 질문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장엄한 성당 속에서 함부로 고함지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후에 이 이야기를 니버에게 전할 때 그의 대답은 ‘그건 신학이 가르쳐질 정당한 길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신학에서든 사회문제에서든 어떤 권위를 쉽사리 인정하고 그에 도전하기를 꺼리는 학생들의 새로운 경향에 깊은 불만과 불쾌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학생들이 그에 대하여 좀 더 자주 도전하지 않는 것에 다소 실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니버의 사상은 최근 30년 내 별로 변한 흔적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자기 검토에 등한했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그는 간단없이 자기 사상을 재검토한다. 그러기에 그는 말하기를, ‘지성이 거주할 고장을 택한다면 그는 천막을 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여튼 그의 교수로서의 감화는 한 특정한 학교나 그 교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의 저서는 전 세계에서 몇 세기를 두고 스스로 그 권위를 입증할 것이다. 그가 예일대학에서 박사 후보생을 지도 심사하여 성공시킨 사람만 해도 75명에 달한다. 그 사람들이 거의 전부 각처 각국에서 교수로 근무한다. 그들이 다 니버의 사상을 그대로 전한다는 것은 아니겠으나 니버에게 깊은 감화를 받은 사람들임에는 예외가 없다.”

그는 1953년부터 예일대학 신학부 대학원장으로 있으며, 60명의 박사를 내었다. 그리고 1954~1956년까지는 전 미국 신교파 신학교육 재검토를 위한 위원회의 주동자로서 이 방면에서 귀중한 저서들을 출간하였다. 그것은 니버와 윌리엄스와 구스탑슨 3인 공저로 된 『교회와 교직의 목적』, 『신학교육의 향상』이란 책과, 니버와 윌리엄스 공저인 『역사적 전망에서의 교직』이란 책이었다.

이제 그의 약력을 소개한다면, 그의 성명은 헬무트 리처드 니버(Helmut Richard Niebuhr), 그의 부친은 복음개혁교회 목사였고, 그의 형은 유명한 라인홀트 니버다. 그는 1894년에 미국 미주리 주 라이트 시에서 출생, 1912년에 엠허스트 대학을 졸업, 1915년에 이든 신학교를 졸업하고, 1917년에 워싱턴 대학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은 다음, 계속 신학을 연구하여, 1924년에 예일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4년에 이든 신학교와 시카고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56년에 프랭클린 마쉴 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웨슨게얀 대학교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16년에 복음개혁교회 목사직에 장립되었으며, 1916년부터 1918년까지 세인트루이스에서 목회하였고, 1919년부터 1922년까지와 1927년부터 1931년까지에 이든 신학교 교수로, 1924년부터 1927년까지 엠허스트 대학 학장으로 근무하였다. 1931년에 예일 대학교 신학부 교수로 취임, 1953년부터 대학원장으로 있었다. 그동안 1954년부터 1955년까지에는 미국과 캐나다의 신학교육 연구를 위한 위원회 일을 주재했다.

[2] 그의 신학사상

1) 그의 신학방법

폴 람제이는 니버 70세 기념논문집 『신앙과 윤리』 서문에서, 『교회와 교직의 목적』에 실린 니버의 말을 인용하였다.

“참되고 본질적인 지혜는 세 부분으로 형성된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자기에 대한 지식과 타인에 대한 지식이다. 이 셋은 너무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분리시킬 수가 없다. …… 신학은 복합적인 대상으로, 자기와 타인들과의 관계에서의 하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 및 타인을 갖고 있다. 인류에 대한 정당한 연구는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과 하나님 자신과의 상호관계에서 되어져야 한다. …… 신학적 연구의 복합적인 대상은 언제나 이 세 관점을 갖고 있다. 즉 인간과의 관계에서의 하나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인간, 하나님 앞에서의 관계 그것이다.”(113, 115)

니버의 신학은 신앙과 윤리의 불가분의 관련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따로 떼어 하나님 자신(Deus per se)을 관념적으로 실체화(hypostatize)하는 방향을 배제하고 인간과의 역사적 관련에서의 하나님(Deus ad novis)의 방향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철학적 흥미는 논리, 우주론, 본체론 또는 형이상학보다도 윤리학, 역사, 철학, 인식론 등에 경주되었으며, 수학자, 물리화학자, 생리학자 등보다도 사회과학자, 그리고 역사를 자연적으로만 보려 하지 않고 독특한 과정으로 보려는 시인, 미술가, 인류학자, 심리학자 등과 대화하기를 즐겼다.

그의 신학적 온축은, 우리나라로 말한다면, 용문사 뜰에 서 있는 천년 묵은 은행나무가 뿌리를 깊은 데 늘이고 모든 과거를 한 몸에 섭취하여 아직도 노쇠를 모르는 생생함과 같다. 그는 이상주의 철학, 역사주의, 실존주의, 칸트, 슐라이어마허, 트뢸치, 로이스 등의 사상과 바르트, 불트만, 틸리히 등의 사상,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상호 관련에 가장 투철 정밀한 검토를 가하고 독일과 미국 신학계의 교류와 그 최선의 완성을 기도한 집대성의 신학자로 주목받고 있다. “리처드 니버는 현대 신학사상의 최선의 부분들로 온전히 새로운 전체를 만들었다.”고 한 《크리스찬 센추리》의 평은 정당하다고 다들 인정한다.

니버의 신학적 방법은 가치론적, 관계론적, 계시론적인 세 면을 삼릉분광기(프리즘)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관계’에 있어서는 마르틴 부버가 말한 ‘나와 너’적인 교통을 속속들이 침투시키고 있다.

2) 그의 신론

그는 신론에 관해 실존주의와 관계론적 객체라는 경로를 통하여 설명한다. 그는 어떻게든지 간에 ‘일관된 유일신론(consistent monotheism)’, 또는 ‘극단적인 유일신론(radical monotheism)’을 표시하려고 애쓴다. 그에게서 자연 숭배는 그대로 다신교적이다. 그것이 어떤 사회적 실재든지, 어떤 인격이든지, 자아든지, 어떤 추상적인 본질이든지 간에 그것에 대한 숭배는 다신교적이다. 우리는 어떤 코즈(cause)를 위하여 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신성하게 하는 존재를 숭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다신교적인 신앙에서 우리는 모든 많음(다수)의 저편(beyond)에 있는 하나, 그러면서도 ‘많음’ 가운데와 ‘많음’ 안에 있는 하나인 그이와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우리는 당황과 무지와 적의와 불신과 공포로 대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그를 믿든 안 믿든 간에 우리는 이런 하나님과의 직면을 피해낼 수가 없다.

우리가 우리의 ‘인간 존재’를 위하여 지향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은, 치워버릴 수도 없고 넘어갈 수도 없는 우리 행로의 막다른 운명, 그 최후 궁극의 세력에 불가피적하게 맞부딪히는 그것이다. 하나님은 이 궁극에서 ‘힘’으로 우리에게 직면한다. 그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소욕을 연장시키거나 자연의 이치를 미루어 그를 대항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 그는 모든 것을 참패시킨다. 결국 그 자신 이외에 영원한 것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니버에게 자연 종교의 신은 무엇보다도 먼저 힘으로 나타난다. 통일성이란 것도 힘의 일면이다. 그리고 그 적극적인 바탕은 ‘적의’다. 그런데 우리는 그와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직면한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와 직면하면서도 그와 호의의 관계를 지을 수는 없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그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그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가 성립되어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이 됨을 경험하게 된다.

사실 예수의 삶과 죽음은 그것이 자연 종교의 우위적 입장에서 되어 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적의적인 ‘힘’이 가장 극심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살해자(slayer)에 직면한다.”(The Nature and Existence of God, 45, 46)

“십자가는 그에게 절대 충성을 다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배신이었 다.”(Christ and Culture, 254)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충성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된 관계의 길이 열렸다. 지금까지 그 절대의 힘으로 우리에게 직면하던 하나님은 그 힘과 아울러 용서와 호의와 사랑이신 우리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하나님–인간’ 관계가 변혁된 내면적 요인을 무엇으로 설명할까? 니버는 ‘속죄론’을 직접적으로 말한 일이 없다. 그는 이 관계 성립의 사실을 선포함으로써 기뻤던 것이 아닐까? 사람의 실태가 변했기 때문인가? 하나님의 노여움이 풀렸기 때문인가? 하나님 자신 안에서의 진노와 사랑이 함께 만족되었기 때문인가? 단언할 수는 없으나, 그가 삼위일체를 논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통일성을 자주 강조한 것으로 보아 속죄와 화해의 문제를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의 통일이라는 문제 안에 포섭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기독교 왕국 안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삼위일체론이 현재에서도 재연되어야 한다면 그 결과는 과거의 그것보다 다른 구조를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변경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그러나 그 위(位, personae)에 대한 교리를 말한다면, 성부는 성자가 아니며, 성자는 성부가 아니요, 성신은 성부나 성자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The Purpose of the Church and its Ministry)

그러나 그의 삼위일체 신앙이 하나님 중심적이요, 그리스도 중심이 아닌 것과, 그것이 피조자에 대한 하나님의 표현이라는 데 중점을 둔 것인 것으로 보아, 그의 삼위일체 신앙은 계시경험에서의 삼위일체(economic trinitarianism)이요, 바르트가 말하는 내재적 삼위일체론(immanent trinitarianism)과는 다른 것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그가 최근에 신학자들에게 요청했다는 말의 내용으로 보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즉 신학자들은 전능하신 속량주이신 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통일성(unity)을 강조해야 할 뿐 아니라, 그 한 분이 또한 창조주시며, 그의 영원한 아드님이 속량 사업에서뿐 아니라 ‘창조’에서도 대행자(agent)였다는 것을 같은 정도로 강조해야 한다고 요청했다는 것이다(cf. Hans W. Frei, Faith and Ethics, 107).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한 분으로서, 그 자신 안에서, 삼위가 내재적인 ‘유니티’를 갖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라는 것이므로, 단순한 economic trinitarianism으로만 생각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의 인격성 이해에 있어서 종래의 ‘한 인격 안에 있는 두 성품’이라는 형이상학적 설명을 되풀이하려는 대신에, ‘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두 가지 이해의 길’이라는 인식론적 방법을 택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3) 그의 역사 이해

그는 역사를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외적인 역사는 순 객관적인 사건 기록이어서, 그 범위에서 말한다면, 예수의 역사적 사실이란 것은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가 그러했던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 역사적 예수가 하나님의 계시자요, 속량자였다는 것은, 인간이 그에 대한 신앙, 즉 동시대화한 그와의 ‘너와 나’의 관계에서 인격적으로 결단하여 반응한 결과로 생기는 내적인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적 생활의 역사는 다른 자아들의 공동사회 안에서 그들에게 되어진 그 무엇을 말하는 자아의 ‘고백’으로 말미암아서만 가능하다.”(The Meaning of Revelation, 37). 그런데 하나의 객관적 사건으로서의 외적인 역사는 나와의 인격적 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니므로 다만 ‘저기(thereness)’에라는 제3자적인 사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나에게 나의 사건으로 의미를 가지고, 나의 회개와 신생을 촉진시킬 때, 그것은 하나의 외적인 과거의 기록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거가 현재에 되살아 한 역사를 창조해 간다. 그것이 내적인 역사다. 이 둘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배제하고도 존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적인 구체적 사건 없이 내적인 생명이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이 사실임과 동시에 내적인 자기 결단과 신앙 없이 외적인 관찰에서 내적인 참여에 옮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4) 역사와 계시

여기서 역사와 계시의 문제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적 인물임과 동시에 그가 하나님의 계시라고 한다면, 그의 외적인 역사적 사실들과 하나님의 계시가 일치되어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그에게서 하나님의 권위적인 계시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절대 정확한 객관적 사건 기록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정통주의 신학자들 입장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예수가 하나님의 계시자란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그의 출생, 사업, 교훈, 죽음, 부활 등에서 ‘기적’ 개념에, 성서 기록의 절대 무오를 확증하기 위해서는 축자영감적 ‘기적’ 개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성서 축자무오설이 성립되지 못할 뿐 아니라 최근의 ‘양식비판’에 의하면, 성서 기록은 초대교회라는 공동사회의 신앙고백이요, 순수 객관적 역사 기록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적 역사와 계시를 절대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은 무모하고 불필요할 뿐 아니라 파괴적인 물상화 운동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가 그대로 계시인 것이 아니라 어떤 특이한 역사적 사건이 하나님 관계에 있어서 신앙으로 그 의미가 파악되어 그것이 다른 모든 역사적 사건을 심판하고 생산하는 빛으로 나타날 때 그 사건이 그에게 계시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는 내적 역사와 그 소속을 함께 한다. 이것은 외적 역사 안에 나타난 예수가 신앙의 그리스도로 이해되는 때 비로소 그가 계시자요, 속량자라는 것이 확인되는 것과 같다. 이것은 그가 트뢸치의 역사 이해에서 근본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리라고 추측된다.

[3] 그의 윤리사상

1) 가치 변혁

기독교 윤리에 대한 그의 저서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그는 그리스도인이 그들의 그리스도 신앙을 그들의 문화적 공동사회 생활에 관련시킨 모습들을 유형적으로 분석하였다. 이에 의하면, 그리스도와 문화는 서로 용납될 수 없는 반대적 입장에 있다는 견해와 그리스도와 문화는 하나여서 그리스도교는 문화의 최고 표현이라는 견해와의 두 극단을 소개하고 그 중간에 세 가지 중간적인 견해를 집어넣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문화를 이원적으로 보고, 그 둘이 서로 역설적인 관계에서 긴장하면서 대화한다는 것과 그리스도가 문화 위에 있어서 하나의 교주적인 위치에서 종합하며 완성한다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가 문화 안에서 이를 변혁한다는 것 등이다.

그는 주로 이 변혁 또는 회개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문화 안에서의 생활이 범죄와 파멸의 방향으로 미끄러지고 있다는 것이 사실인 한, 속죄자 자신도 그 안에서 부단히 새 창조를 진행시키지 않을 수 없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이 문화 안에서의 생활과 온전히 대립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변혁시키는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 변혁의 완성은 시간 저편에서 되어질 것이나, 지금의 이 시간 안에서도 속량받은 생활과 속량받지 못한 생활이 대립적으로 취급될 것이 아니라 한 생활의 다른 발전과정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했다.(The Meaning of Revelation, 182)

이 변혁은 인간이 어떤 신조나 도덕적 교훈을 다른 그런 것들로 대체시킴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만나는 인격적 대답과 책임 관계에서 되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노선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으므로 나도 이렇게 한다는 방향에서 되어지는 것이다. 가령 이웃 사랑의 윤리 행위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내 이웃을 사랑하시는 것같이 나도 내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인을 사랑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사랑의 행위에서 나의 사랑의 의무가 넘쳐 솟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윤리 행위는 그 무엇을 행할 의무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분(삼위일체 하나님)’에 응답하는 의무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2) 변혁의 의미

변혁은 대체가 아니다. 계시 종교가 자연 종교를 박멸하고 이에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종교에서의 하나님–인간 관계가 계시 종교에 의하여 재평가됨과 동시에 가치변혁을 일으킴으로 ‘변하여 새것이 되는’ 것이다. 역사의 진행을 정지시키고 다른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진행하는 역사 안에서 신앙으로 내적인 역사라는 것이 외적인 역사를 파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양적인 것이 질적인 것으로, ‘시간 안에서의 역사’가 ‘역사 안에서의 시간’으로 의미를 갖게 하는, 말하자면 그 가치에 변혁을 일으키는 것이다. 문화의 변혁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어떤 한 유한한 기구나 사상을 파멸시키고 다시 다른 그런 따위의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있는 문화를 새로운 차원에서 재평가하고 안으로부터 갱신하는 것이다.

윤리에 있어서도 그렇다. 복음 안에서 율법(또는 도덕률, 자연법)을 다룸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복음으로 온전케 한다. 에로스와 아가페에 있어서도 그리스도께서 인간적인 사랑, 즉 욕구에 근거한 사랑인 에로스를 온전하게 하셔서 ‘비욕구적(nonpossessive)’인 에로스로 하나님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는 또한 신적인 사랑, 즉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인간을 사랑하셨다.(Christ and Culture, 33~34)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아가페적 사랑을 알았고, 우리도 또한 그렇게 사랑할 의무와 능력을 갖는다(요일 3:16 참조). 바울이 성령의 감화로 사랑의 생활을 즐긴 것도 에로스적인 것이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변환된 것이다.

3) 일관된 유일신 관계(consistent monotheism)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 관계에서만 규정지으려 했다. 심지어 삼위일체론에 있어서도 하나님 중심에서 삼위를 말하려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신앙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그것이 ‘그리스도 단일론(christomonism)’으로 기울어질 것을 경계하고 있다. 사람들이 사랑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사랑의 덕행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시는 데서 내가 나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며, 우리가 사랑이라는 그 덕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님을 경계했다(Christ and Culture,16).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을 강조한 나머지 믿음 자체가 의롭게 하는 것같이 서둘러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임을 망각하는 것을 경고하였다. 소망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이며, 종말이란 것도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를 신뢰한다는 의미에서 그것이 그리스도교 윤리와 연결되는 것이다. 겸손이란 것도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며, 하나님 관계에서의 인간 앞에서의 겸손인 것이다.

그의 윤리의 주지(主旨)를 요약하여 제임스 구스탑슨 교수는 대략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니버의 윤리 체계는 그 깊은 의미에서 인격적인 체계다. 그것은 그 비판적 바탕과 인격적 관련됨에서 규정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원리나 명제로 표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신앙에 근거한 것이므로 어떤 신학적 견해로 표시되기 전에 산 경험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니버의 윤리는 인격의 통일에 근거하고 있다. 그 윤리에서는 종교와 도덕, 개인과 사회, 과거와 현재 등의 궁극적인 분리를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그런 것을 그 인간에게서 분리시켜 추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Faith and Ethics, 120)

그러나 그는 세 가지 주지를 지적했다. 니버의 윤리학 주지의 첫째는,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유일한 절대, 자연과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요, 그 밖의 것은 그 무엇이든 간에 예외 없이 상대적인 것이라는 그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윤리 수립에 있어서 각 방면의 각양 재료와 사회 정황 및 구조 등등이 극히 자유롭게 참조되며 동참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주지는, 실존주의적 인격주의다. 도덕적 결단이란 것은 ‘나’와 다른 많은 ‘나들’과의 관계됨에서 위기를 각오하고 단행하는 행동이며, 개인과 사회 사이에 재연한 구별을 세울 수 없는 실존이라는 것이다.

셋째 주지는, 니버의 윤리는 반응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잠재의식이 외부적 사물에 반응하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 자기의식을 갖고, 기관, 개인들, 사실, 원칙 또는 하나님 자신에 대하여 인격적 관계에서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반응의 적정을 기하려면 복잡하고 정밀한 고찰과 바른 지혜가 사용되어야 한다.

넷째로 들 수 있는 주지는, 경험 안에서의 유동화 과정이다. 도덕적 결단은 과거의 전통과 계속되는 변천에서 그때그때의 적당한 구체적인 행동을 작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행동의 예정이나 그 행동의 정확한 결과의 예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 신앙에서 이런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내적인 역사를 창조하며 문화를 변혁하는 길로 나가는 것이라 하겠다.

4) 신자의 정황

신자의 정황은 어떠한가? 신자라고 이 상대적인 관계에서 제외될 수는 없다. 절대자인 하나님을 믿는 사랑이라 할지라도, 그 신앙이란 것이 그 믿는 사람의 전 존재와 그와 관련된 모든 타자 관계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니 만큼,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는 다만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다는 그것만으로 스스로의 신앙이나 신학이나 생활을 절대화하려는 유혹에 끌려들기가 쉽다. 그 자기 교만이 벌써 최대의 죄악인 데다가 그 연출로 생겨나는 온갖 거짓 절대가 그와 그의 사회를 오염시키는 것이다. 이런 교만이 하나님 앞에서 그대로 통과될 수는 없는 것이어서 “심판은 하나님 집에서부터”(벧전 4:7)라는 말씀은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교회가 사회와 다를 것이 없이 되어 있다면 빛은 어디서 기대할 것이며, 교회가 사회를 떠나 고귀하다면 증언은 누가 할 것인가? 그러므로 심판은 더 많이 받은 자에게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심판과 함께 ‘속량’ 사회 또는 속량 사회를 위한 진지한 노력만 이 속량의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속량 사업이 교회로 부터 사회로 흘러든다는 것은 수천 년 전파된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는 또한 종말론적인 공동 사회다. 인간과 국가와 온 인간 역사가 제한된 것이며, 심판받아야 할 대상임을 알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시간의 피안인 영원에서 바라는 공동 사회가 교회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현재의 역사와 미래의 왕국을 향한 심판과 복음의 증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cf. The Purpose of the Church and Its Ministry, 31)

- 리처드 니버의 주요저서(연대순)

1) Moral Relativism and the Christian Ethic, 1929. 이것은 “신학교육과 기독교의 세계적 사명”이란 주제 아래서 드류 신학교에서 각 신학교 대표가 회의할 때 강연한 11쪽의 강연록.
2) The Social Sources of Denominationalism, 1929. 이것은 교파주의의 사회학적 연구여서 304쪽의 큰 저서요, 1957년에 재판되었다.
3) The Church against the World , 1935. Wilhelm Pauck와 F. P. Miller와 3인 공저이며, H. R. Niebuhr가 쓴 것은 “The Questions of the Church,” 1-13, “Toward the Independence of the Church,” 123~156이다.
4) The Kingdom of God in America, 1937. 그의 하나님 나라 개념에 비추어 미국 교회를 여러 역사적 관련에서 분석 비판한 것으로서 215쪽. 1950년에 재판, 1948년에 독일어 역이 나왔다.
5) The Meaning of Revelation, 1941. 1940년 예일 대학교 신학부 Nathaniel W. Taylor 기념 강연. 가장 높이 평가받는 그의 주저의 하나로서 실존적인 의미에서 계시를 해명한 196쪽의 명저.
6) The Gospel for a Time of Fears, 1950. “Our Eschatological Time?” “The Eternal Now?” “The Gospel of the Last Time?” 등의 3회의 강연을 수록한 22쪽의 강연록.
7) Christ and Culture, 1951. 그의 기독교 윤리에 관한 주저. 259쪽. 나의 졸역에 의한 한국어 판이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출판되었음.
8) “The Churches and the Body of Christ”, 1953. 1953년도 William Penn 기념 강좌를 위한 강연록. 24쪽.
9) The Ministry in Historical Perspectives, 1956. Daniel Day Williams와의 공저. 331쪽.
10) The Purpose of the Church and Its Ministry, 1956. D. D. Williams와 J. M. Gustafson과 함께 ‘신학교육의 목적'에 대하여 검토한 내용. 234쪽.
11) The Advancement of Theological Education, 1957. D. D. Williams와 J. M. Gustafson과 함께 ‘신학교육의 재검토’ 기록. 234쪽.
그밖에 단행본 또는 사전류에 연구 논문 발표한 것이 13개소, 정기간행물에 발표한 연구 논문이 37개소, 다 얻기 어려운 주옥편들이다.
그의 70회 탄신기념 논문집, Faith and Ethics–The Theology of H. Richard Niebuhr는 그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학적 권위를 갖춘 논평이다. Paul Ramsey 편집. 기고자는 Waldo Beach, Julian Hartt, Raymond P. Morris, Hans W. Frei, Robert S. Michaelson, Liston Pope, James Gustafson, Carl Michaelson, George Schraeder.
(내가 소개한 H. R. Niebuhr의 저서 목록은 R. Morris 교수가 수록한 순서에 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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