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4일 목요일

[범용기 제2권] (98) 다시 한신 캠퍼스에 – 김홍륙이란 인간

[범용기 제2권] (98) 다시 한신 캠퍼스에 – 김홍륙이란 인간


이조 말, 내 고향인 경흥읍에 비범한 인간이 하나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홍륙이다. 그는 청년 시절에 ‘금단’의 ‘두만강’을 몰래 건너 ‘러시아’에 도망했다.

‘러스키’ 교육을 받고 출세하여 서울 주재 ‘러시아영사관’ 통역으로 임명됐다.

고종황제의 아관파천 때 그는 밤낮 침대 옆에 모시고 신변을 보호했다.

‘정부’가 그리로 옮겨진 셈이다.

그는 본래부터 ‘양반’들을 아니꼽게 보았다. 그 당시 서울 거리란 종각 뒷골목 – 납작한 기와집들이 좌우에 앉아 있는 그 고장이었다. 상수도도, 하수도도 없다. 밤이면 대소변을 길에 버린다.

김홍륙은 러시아 승마복에 루바슈까를 걸치고 그 거리를 활보한다.

‘양반’들은 ‘에헴’하고 갓신 신고 팔자걸음한다. 그는 뚜벅뚜벅 빨리 간다. 양반 걸음이 거치장스럽다. 그는 뒤에서 양반들의 흰 행건 아랫도리를 똥묻은 구두발로 건드린다.

“좀 빨리 가소. 양반님들!”

그러니 양반들의 ‘앙심’이 어떠했을 것은 상상할 수 있겠다.

그는 고종황제의 ‘아관파천’을 기화로 ‘폐하’의 어명이라면서 관찰사고 군수고 마음대로 뗐다 붙였다 한다. 자기가 좋게 생각한 사람의 명단을 갖고 고종황제의 싸인(어쇄)를 받는다.

러시아 세력이 밀리자, 그도 그도 약세가 됐다. 고종 황제는 물론 대궐에 돌아왔다.

그 당시 한국에는 ‘커피’가 없었다.

러시아 영사관에서 고종에게 커피를 진상한다.

황태자가 그 커피를 마시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김홍륙은 황태자 독살혐의로 체포됐다. 으레 사형이다.

이 사건을 평리원 판사였던 함태영이 맡았다.

‘함’옹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민씨’네가 조작한 음모였다고 한다. 김명길저 “낙선재 주변” 31면에 보면 이 일은 1989년 7월 26일 고종탄일 다음날에 생긴 것으로 되어 있다. 거기 보면 김홍륙은 시베리아에서 서양 요리인으로 이름난 ‘김종호’를 궁중요리사로 추천하여, 오래전에 고종과 황태자의 수라상(음식차림)을 차려드렸다 한다. 수라상은 내소주방(內燒廚房)에서 접시와 음식을 먼저 검사하고 맛보고서야 드리는 것인데 그 ‘커피’를 맛본 사람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민씨 가문이나 ‘이등박문’의 모략이 아니었을까 의심된다고 쓰여 있다.

어쨌든, 함태영 평리원 판사는 김홍륙에게 ‘증거 불충분’이란 이유로 무죄 또는 가벼운 처벌로 끝내려 했다. 민씨 가문에서는 장관들, 세도가들을 동원하여 “극형에 처하라”고 연방 압력을 보낸다. 그때에는 사법권 독립이 제대로 되 있었기에 함판사는 끝까지 항거했다.

하루는 밤에 고종황제로부터 ‘입궐’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황제의 침실에 단 둘이 앉았다.

비밀지시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말씀에 단서를 잡으려고 다구쳐 물었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역시 상감자리에 앉은 분은 달라!”하고 감탄할 뿐이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법정에 선 김홍륙은 당당하고 태연했다. 이것 저것 질문해도 도무지 대답하지 않았다. 예정된 사형인데 말할 건 무어냐 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역시 거인(巨人)이었다.”

이것이 그의 김홍륙 인물평이다.

사전에 혀를 짤랐다는 것이 항간의 얘기다. 그랬을 수도 있겠다. (“낙선재 주변” 32면)

함태영은 “김홍륙이 혀가 잘려 있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말 없이 태연했다”고만 했다.

고종과 함태영의 밀회에서도 그런 내용이 밀담된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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