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2일 월요일

[범용기 제6권] (1622) 예수 이미지

[범용기 제6권] (1622) 예수 이미지[마태 10:34-39]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칼)을 주려고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그 어미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그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나보다 아버지와 어미를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고……”

이것은 예수의 말씀 중에서도 아주 과격하고 거칠고 벅찬, 듣기에 거슬리는 말씀입니다. 특히 “효도”를 모든 덕행의 근본으로 삼는 유교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교훈입니다.

그러나 우리 귀에 거슬리든 안 거슬리든 예수의 말씀은 예수의 말씀으로 권위가 확립돼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사람으로 자처하느니 만큼 예수를 따라가고 닮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려면 우리가 믿는 예수가 어떤 “이미지”를 가진 분이신가를 똑똑하게 보아야 하겠고 그 예수상에 따라서 우리 자신도 끊임없이 창조돼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를 통하여 예수상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성격이 꼭 같지 않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신학 이론도 꼭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파나 종파마다 그 그려내는 예수상도 다르게 됩니다. 말하자면 자기네 교회 습성에 맞도록 예수상을 창작합니다.

중세기 카톨릭 교회에서는 예수상을 금욕적인 수도승같이 만들었습니다. 빼빼 마르고 눈만 휑하니 크고 목은 가늘고 길고, 수염도 덥석부리가 아니고 전체적으로 약해보이는 내향적인 분으로 그립니다.

영국인은 신사도를 숭상한다는 도상에서 예수를 “신사형”으로 그립니다. 젊잖고 “위트”가 있고 약자에 대한 동정과 강자에 대한 결투 용기가 있는, 좌석에서도 쭉질리지 않는 남성으로 그립니다. 영국 신자들은 Christian gentleman이 되려고 애씁니다.

칼빈주의 교회에서는 특정한 예수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카톨릭에서의 “성상”을 “우상”으로 보기 때문에 모든 “이미지”가 금기(禁忌)된 것이었습니다.

“칼빈”은 예수상 보다도 기독교 교리를 체계화하는 데 치중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강요”라는 불후의 명저를 써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칼빈이나 루터는 기독론, 신론, 교회론, 성령론, 종말론(칼빈은 그의 성서주석에서 묵시록은 3장까지 밖에 쓰지 않았습니다만) 등 추상적 개념적인 이론 체계 구성에 시간과 정력을 쏟았습니다.

대를 이어 그를 따르는 개혁교회에서도 걸핏하면 정통신학이니 “이단”이니 하는 교리논쟁에 과열되는 경향이 농후했던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에 “산 인간”으로서의 예수 “이미지”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의 신학체계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평신도들은 어딘지 모르게 뭔가를 보고 듣고 만지고 대답하고 하는 “몸”으로서의 예수를 실감하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단식기도, 입산기도, 철야기도, 부흥성회 등등을 찾아다니며 모종의 신비경험이라도 갖고 싶어 못견디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에 신비경험도 하고 방언도 하고 병고치기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신비경험 속에서 만났다는 예수는 “비역사적”, 다시 말해서 역사적 현실과 관여된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환상적이고 도취적인 영역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현실에서의 역사적 사건들과 대결하지 못하는, 대결하려 들지도 않는 “기독교”는 “아편” 구실 밖에 못합니다. 자기 혼자 “몽환”을 즐깁니다. 칼ㆍ맑스 시대의 영국교회가, 소년ㆍ소녀의 고혈을 착취하여 자기들의 탐욕을 채우는 신흥 영국산업 사회에 도전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의 공범자로 자족하는 것을 본 맑스는 이것이 개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구조악”임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는 구조 자체를 파헤치는 방대한 저작을 펴냈습니다.

맑스는 노동자 편에 서서 자본주의와 싸우는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싸움은 계속합니다. 그러나 어느 한편이 다른 한편을 온전히 이겨낼 수는 없게 됐습니다.

예수님 말씀과 같이 평화의 세계가 아닌, 전투의 세계가 영속되고 있습니다.

“평화통일”이니 “평화회의”니 합니다만, 그 “평화”가 거짓 평화기 때문에 오히려 “전투”를 자극합니다. 두 편에서 다 같이 “핵무기” 장치를 경쟁합니다. 무력 균형에 의한 평화는 “평화”랄 수 없습니다. 경쟁에 지면 전쟁으로 이긴다는 “심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열전이 벌어지면 둘다 망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멈칫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이런 평화는 거짓 평화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여기지 말라”한 것은 이런 “거짓평화”를 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어수선하고 폭력이 난무하게 되면 평화를 동경하는 마음도 강렬해집니다. 그렇다고 자기로서 어쩔 수는 없음을 절감합니다. 나 혼자서라도 깨끗이 살아보자 하여 수도원에 들어갑니다. 격리된 고장이라 비교적 조용합니다. 그들은 기도하고 명상하고 노동하고 계율을 지키고 원장에게 복종합니다. 그들은 차음 마음에 평화를 느낍니다. 맘 속에 광명이 비칩니다.

세상이란 뜬 구름 같고 “일장춘몽”이고, 꺼지는 물거품이고 “희로애락”이 아이들 소꿉장난 같게 느껴집니다.

위에서 언급한 예수의 투쟁정신은 간데 없고 내향적인 자기 정욕과의 투쟁에 “자학”을 미화합니다. 수도승 예수상은 예수 “이미지”랄 수가 없습니다. 예외를 인정하고 하는 말입니다.

수도원의 공적도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맑스의 무자비한 “아편제거” 전쟁에 도전하기에는 너무 도피적이었습니다.

로마의 임금과 귀족계급이 예수를 믿게 되자, 예수는 로마의 가이사 같은 “황제”가 되고 교회는 로마제국 같은 보편 왕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지상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땅 위에서 예수를 대신하여 이 “왕국”을 다스릴 “법왕” 제도가 생겼습니다. 로마제국의 귀족계급에 유사한 추기경 제도가 갖춰졌습니다.

예수 “이미지”는 아주 귀족적인 지배자로 변모했습니다. 복잡하고 자세한 교회 법전이 제정되었습니다. 교회법에 불복하는 사람, 특히 교황의 지배 권력에 항거한 자는 무자비하게 극형에 처해집니다. 루터 이전의 종교 개혁자인 체코의 “요한 후스”(John Huss)는 법왕의 절대적인 신변보장 약속을 믿고 법왕의 초청에 따라 로마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로마 법왕청에 도착하자마자 법왕은 그를 체포하여 장작개비 위에 산 채로 불태워 죽였습니다. 그러면서 법왕은 “할렐루야”를 노래하며 하느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답니다. 법왕은 성바돌로매 성일 밤에 빠리에서 부녀자 어린애 할 것 없이 3천명을 한꺼번에 학살했답니다. 그들은 “성지”를 도루 찾는다고 “십자군”을 일으켜 “모하멧” 교도들의 피가 그들의 긴구두 무릎 위를 넘을 정도로 흘러갈 때 감사의 미사를 올렸답니다. 세계 제1차 대전, 제2차 대전 때에도 서로 죽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서로 예수가 내 편이라고 자기편 승리를 그에게 빌었습니다.

“Something Wrong!” 기독교가 무어 잘못된 데가 있다. 어딘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데가 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가장 잘못된 환부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습니다만, 오늘은 우선 예수 “이미지”를 잘못 그려냈기 때문이란 것을 지적하려 합니다.

그것은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예수를 통하여 교회와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보지 않고 교회를 통하여 예수를 보고 국가와 사회와 세계를 통하여 예수를 보았기 때문에 이그러져 보이고 전쟁주체로서의 국가관을 통하여 예수를 보았기에 예수도 “전쟁신”이 되어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바른 예수상입니까?

이것을 위하여는 성경을 바로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총체적으로 이해함과 동시에 핵심적으로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적어도 예수는 그 당시의 성경, 즉 구약성경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면서 그것을 중심적으로 정리하여 그 핵심을 터득하고 거기에 자기의 전 “生 ”과 “死”를 못박았던 것으로 봅니다.

우리가 신약의 공관복음서 즉 마태, 마가, 누가의 세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상만을 정리해 보더라도 기성교회의 예수상보다 얼마나 다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첫째로 – 예수는 노동자요 농민이요, 본업은 목수였습니다. 우리는 우선 이런 예수의 본 모습을 직시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근로자들 가운데서 그들과 사귀고 그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의 곤고를 나누어 지는 일에 열심한다는 것이 예수를 닮는 일인데 왜 그것이 교인으로서의 안할 일인 것 같이 의혹을 받아야 합니까? 근로자 층에 기독교 지도자가 들어가 일하면 공산주의로 몰릴 만큼, 기독교회는 근로자 층과 격리돼 있었다는 역사적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그 근본에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상공사회에 취직해 있는 기독자가 모두 노동층에 들어가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근로층과의 일체감을 갖고 몸의 지체가 서로 돕고 협동하는 진실을 실지로 보여야 할 것입니다. 발바닥에 가시 하나 박혀도 온몸이 괴로워 합니다.

[2] 예수는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나 나는 머리둘 곳이 없다” 하고 말씀할 정도로 그는 무소유의 방랑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난한 자, 배고픈 자, 눌린 자, 착취 당하는 서민, 병든 자, Out Cast 등등 사회 하층에 깔린 분들을 찾아 그들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는 공산주의자 같이 부유층을 숙청하지도 않았습니다. 부자와도 그는 친구로 사귀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부자를 가르쳤습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으라”, “하느님과 돈을 함께 섬기지 못한다” 했습니다.

그는 돈을 탐하고 인간을 위할 줄 모르는 부자를 책망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천대하던 부자가 지옥에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영원히 신음하는 장면을 비유로 예증하면서 “부”란 가난한 이, 유랑민, 소외자 등등을 봉사하여 인간재건에 공헌하게 하기 위해 제공된 것임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캐나다 정부에서는 너무 부요하지도, 너무 가난하지도 않은 중간층을 증대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라 운영이 그만큼 무리가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3] 예수는 지배자가 아니었습니다. 섬기러 왔고, 섬기되 몸 전체를 주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섬기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도이면서 교회 안에서까지 “누가 크냐” 하는 감투 싸움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 “이미지”를 잘못 본 사람이겠습니다.

예수가 철저한 봉사자였기 때문에 하느님이 높이 들어 만방 만민의 “주”가 되게 하셨다고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 말했습니다.

[4] 예수는 부자도 지배자도 아니었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넘어서 굉장히 적극적인 항거와 투쟁의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예수의 말씀 -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여기지 말라. 검을 주려고 왔다.” 다른 복음서에는 “불을 던지러 왔다”고도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가 “기성질서” 안에 안주하려는 분이 아니고 기성질서에 항전하여 땅 위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건국전사로 싸우러 왔다는 말입니다.

전투에 나선 출전장병의 모습입니다.

부모 처자와 그 밖에 무어든 간에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했습니다. 전장에 싸우러 나가는 병사가 부모 생각, 처자 생각, 자녀 생각, 돈벌 생각 등등에 사로잡힌다면 제대로 싸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비겁한 패잔병 밖에 못될 것입니다. 기독자는 역사의 장면에서 악마적인 세력과 싸웁니다. 바울의 말대로 한다면 “공중에 권세 잡은 악령과 싸우는 성령의 투사들입니다.” 역사에서 Demonish한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인간화운동에 투신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5] 예수는 그 공생애의 처음부터 마감 순간까지 격렬한 이론 투쟁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싸웠으나 이론 없는 싸움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교훈이며 변론은 교훈 또는 변론 자체를 위한 교훈이나 변론이 아니었습니다. 상대방에서 공격해 오는 화살이 날아와 꽂히는 그 마주치는 “포인트”에서 불꽃처럼 튕겨나온 교훈이고 이론이었습니다.

그는 그 당시 종교 권력자인 바리새파 사람들이 공격해 오는 순간순간 그들이 펴는 이론을 “이론정연”하게 격퇴했습니다. 안식일에 왜 병고치는 일을 하느냐 할 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하고 멋있게 그들의 “惡口”(악구)를 막아 버렸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을 위해 설정된 안식일에 인간고를 덜어주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그가 세상에서 지킬 수 있는 최후의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 안에서 양 팔고 소 팔고 비둘기 팔고 돈 바꾸고 하는 정상배들의 상품 진열장을 뒤집어 엎고 소 무리 양 무리를 채찍으로 몰아내고 장사치들을 마구 쫓아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의 재원을 파괴하는 영업방해 행위였습니다. 처음에는 예수의 권위에 눌려 발언 한 마디 못하고 보고만 있던 제사장들이 시간과 함께 침착을 회복했을 때, 그들은 예수에게 질문했습니다.

“당신이 무슨 권세로 그런 난폭한 행동을 했소?”

예수는 즉석에서 응전했습니다.

“나도 당신들에게 묻겠소. 세례 요한은 무슨 권세로 세례 주고 예언하고 했소?”

성전 참배자의 대부분은 세례 요한의 숭배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제멋대로 한 일이다” 하면 참배자의 무리가 마구 달려들 것 같고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에서 한 일이오” 하면 “하느님을 섬긴다는 너희는 왜 요한을 믿지 않았느냐” 하고 반격을 받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모르겠소!” 했답니다.

“그럼 나도 당신들 질문에 대답하지 않겠소!” 하고 예수는 그들을 무안하게 했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느냐? 안 바쳐도 좋으냐?” 하고 질문했을 때에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라는 명답으로 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가르치는 데 있어서도 “하느님 나라”라는 설명하기 어려운 명제를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사건들에 비추어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처음 들어도 알 것 같고 깊이 생각할수록 함축 있는 설명이었습니다.

공생애에 나서기 전 “악령”과 대결한 광야 40일 시험에 있어서도 그는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고 먹여라” 했을 때, 그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대답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발에 돌이 닫지 않게 살짝 내려설 수 있는 기적을 보여라, 그리하면 그 기적을 보고 백성들이 너를 왕으로 모실 것이다” 했을 때, 기적행위를 자기 인기 전술에 이용하는 것은 “하느님을 시험하는 불신앙이다” 하고 거절했습니다. “네가 내게 절하면 천하만국을 네게 주겠다” 했을 때, 그는 분노로 일갈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오직 하느님만 섬길 것이다” 했습니다. 사탄은 이 결전에서 참패했습니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예외 없이 “고차원적인” 하느님의 지혜, 하느님 나라 이론으로 일관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이론은 그 자신의 삶과 죽음과 부활의 “증언”이었습니다.

지금 세계의 소위 발전도상의 나라들에서나, 강대국에서나 예외 없이 주먹이 앞서고 그 주먹질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왜곡되고 사이비한 조작 이론을 만들어 그것을 포장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예수적인 이론의 바른 “코오스”를 이겨내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는 이미 “악령”의 권세를 이겼습니다. 그 졸개들의 궤계는 패잔병의 준동일 것입니다.

상술한 것이 예수 “이미지”의 전모는 아닙니다마는 핵심적인 예수 면모의 하나로서 우리의 바른 예수 이해에 한 줄기 조명의 햇살을 던지는 것은 될 것으로 믿습니다.

1976년 9월 16일
토론토 한인 연합교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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