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0일 수요일

[범용기 제5권] (68) 野花園(야화원) 雜記(잡기) - 東家食西家宿(동가식서가숙)

[범용기 제5권] (68) 野花園(야화원) 雜記(잡기) - 東家食西家宿(동가식서가숙)

10월 21일(화) - 밤에 경용이 와서 ‘엄마’를 모셔갔다. 내일이 하령이 생일이어서 부엌에 바쁜 까닭이다.

10월 22일(수) - 하령의 생일이다. 자기가 친한 친구패거리 11명을 Dinner에 초청하고 하령은 의젓하게 주인노릇을 한다.

10월 23일(목) - 처와 함께 Weston에 돌아왔다.

10월 26일(일) - 오늘이 행강의 생일이다. 전화로 축복을 보냈다. 행강은 직장에 나가고 은용이 받았다.

10월 27일(월) - 한국농촌부흥운동을 정말 농촌에서 배우자는 취지로 ‘한정협회’를 조직하고 그룬트비전기도 내고 일년간 견학과 실지습득을 위하여 덴마크에 유학까지 한 김영환 목사가 토론토에 와서 내게 기별을 보냈다.

영환 목사 부부, 문재린 목사님, 김상호 목사, 그리고 나, 합하여 5인이 교회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나누고 작별했다. 지금도 ‘한정협회’는 활발하게 계속한다고 했다.

전두환 독재정권에게 어려움을 당하지 않느냐? 하는 질문에는 “정치에 관련도 없고 관심도 없는데 괴롬당할 까닭이 없지 않느냐”하고 대답한다.

“광주학생과 시민 학살 사건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전혀 모른다. 여기와서 처음 들었다. 우리는 그런 사건이 있은 줄도 몰랐다….” 한다.

요컨대 “정치에는 관여하지도 않고, 관여하려는 의사도 없다는 태도다. 그룬드비는 정말로 정치적으로 지배(?)했기 때문에 국왕을 끼고 쉽사리 농촌갱생을 이룩하지 않았느냐”? 그는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몰라. 나는 정치를 몰라! 흥미도 없어.…”

한국 정권에서 “새마을”운동이니 추곡수매상이니 관제농민조합이니 하는 조직체를 통하여 영세농민들의 가난한 식량까지 중간에서 착취하는 것을 어떻게 보느냐? 앞장서서 농민을 대변해 본 일이 있느냐? 야당만이 정치고 여당은 정치가 아니냐?

그는 진짜로 한국 농촌의 현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태평천하’인 줄만 아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는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란 이름의 사진재료를 갖고 다니면서 원조금을 청하고 있었다. 그것은 한국의 개항이래 100년간, 극초기에 된 사진들을 발굴하여 복사한 슬라이드였다. 어쨌든 그는 원기왕성하다. 나보다 한 살 위인데도 팽팽하게 긴장한 젊은이 같았다.

10월 29일(수) - 정동석ㆍ민혜기가 디너에 초청한다. 이번 캐나다교회를 견학한 기장의 여신우회 일원인 김경희를 환송하는 만찬에 나도 초대한 것이었다.

김경희는 수원교회 윤기석 목사의 부인이다. 둘 다 한신졸업생이다. 4:00 PM에 정동석 목사가 나를 Pick-up 했다.

10월 31일(금) - 기장총회 박재봉 총무가 사무타협을 위해 캐나다연합교회 본부에 왔다. Korea House에서 유재신, 정동석 부부, 강인병 목사 등이 환영 Party로 모여서 나의 참석을 청해 왔다.

여러 가지 News를 들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한국교회도 돈 있는 교회로 그 부피와 수(數)가 급속도로 늘었다. 그 대신에 바탕이 야무지지 못하다. 따라서 Secularism이 아무 반성도 없이 ‘기준가치’로 승격됐다고 했다.

그럴듯한 얘기다. 그러나 정의와 진실을 위하여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 골고다 길을 걷는 분들도 있지 않은가? 전세계교회는 그들이 한국교회의 참모습이고 드높은 ‘혼’이라고 존경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백만의 “할렐루야 아멘”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불꺼진 등잔, 맛잃은 소금, 알맹이 없는 벼 쭉정이를 누가 자랑이라 하겠는가? 기장총무는 이 ‘진주’를 돼지게 던져주지 말아야 한다. 교인수가 느는 것은 좋다. 그러나 거기에 알맹이를 채워야 한다.

박총무도 다 아는 얘기다. 내가 ‘군더더기’를 붙일 필요는 없겠다. 김정준 학장은 후배들에게 ‘기장성’을 잃지 말라고 신신부탁했다고 들었다.

“기장성”이 무엇인가?

내가 이해하기로는 바울이 주장한 “복음의 자유”와 야곱이 말하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생활”이다. “기장”은 “정통신학”이라는 “율법주의”와 싸웠다.

“복음의 자유”가 그 군기(軍旗)였다. 그리고 “신앙”이란 가면 속에 숨은 무법주의와 싸웠다. 그것은 기독교 윤리 즉 개인관계에서의 사랑과 사회관계에서의 정의를 사는 생활태, 다시 말한다면, 속빈 겨껍데기나 과실없는 무화과나무가 아닌, 결과지(結果枝)로 살자는 구호였다.

이런 내용의 “생활신앙”을 포기하거나 상실하지 말라는 것이 아마도 김정준 학장이 말한 ‘기장성’의 줄거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박재봉 총무와의 면담시간은 비교적 짧았기 때문에 위에 기록한 내용을 다 말할 수도 없었고 그럴 사이도 없었다. 내가 얘기하고 싶었던 내용을 지금에 와서 적어 넣는 것 뿐이다.

그래도 짤막 짤막한 문답에서 기장총회의 방향을 알게 되었고 일관성만 지킨다면 ‘기장’은 한국역사의 소망이 될거라고 자부하기도 했다.

11월 3일(월) - 음력으로 치면 오늘이 내 생일이란다. 나 자신도 내 생일을 미리부터 기억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래도 자녀들은 잊고 넘기려 하지 않는다.

경용ㆍ효순집 식구와 인철ㆍ혜원집 식구, 상철ㆍ신자에 식구, 모두 왔다. 경용집에서는 흰고물에 찰떡, 인철ㆍ혜원집에서는 붉은 팥 입힌 찰떡, 상철ㆍ신자는 붉은 팥 밥에 갈비, 지영은 따로 편지뜯는 칼과 큼직한 가위를 사 들고 왔다.

할아버지는 지금도 그 칼과 가위를 제일 자주, 또 가장 요긴하게 쓰고 있다. ‘상철’과의 시국담에서 적잖이 기분전환이 됐다.

11월 4일(화) - 오늘이 미국대통령 선거의 날이다. 저녁에 선거현장 광경과 그 결과발표를 TV로 봤다.

에드워드 케네디의 대통령 입부호 사퇴연설은 “군계일학”(群鷄一鶴)의 두드러진 인상을 남겼다. 개표에서 ‘리건’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볼 맛이 없어졌다.

‘지미 카아터’는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참패자라고 했다.

11월 6일(목) - 밖에 버려진 널조각 하나를 주어다가 책상위에 놓을 책꽂이를 만들었다. 톱과 대패와 못 종류를 사 왔다. 무척이나 애써서 만들었다. 미술품은 아니더라도, 실용품으로서는 제구실을 하게 됐다.

바깥 비바람속에서 흙에 누워 썩어가던, 버림받은 널조각이 고귀한 문화재를 안고 서재 책상 위에 모여졌다는 것은 귀하게 된 팔자임에 틀림없겠다.

11월 7일(금) - 전두환은 김대중을 죽이기 위해 관제데모를 강행할 계획이란다. 노동조합원, 농민조합원, 실직자, 무직자, 부랑아 등등을 일체 동원시키면 당장에 수십만명이 될 것이다. 그들이 군중 심리에 말려 “김대중 죽여라!”하고 미쳐 날뛰면, 민주한국 말살에 좋은 구실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정부가 그것을 폭로하고 그 조작을 고발해야 할 것이 아닐까! 카아터가 그 일이나 해 치우고 물러난다면 그 마감 기록이전에 그것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크고 빛날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것은 “쌈손”아닌 “얌전둥”이에게 기대할 성질의 것은 아니겠다.

면도칼로 장작을 팰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11월 8일(토) - 김종남 군이 새 가정을 차리고 이 목사와 나와 아내를 자기 Apt.에 초대한다. 그는 결혼을 목적으로 귀국했다가 작가 이범선 씨 따님과 인연이 맺어진 것이었다.

3:30 PM에 Pick-up되어 그리로 갔다. 저녁식사가 차려졌다. 이범선 씨와의 서울서의 친교도 고려하여 내가 축복을 올렸다. 김익선 목사 부부와 또 다른 손님들도 자리를 같이했다.

11월 9일(일) - 신자가 여신우회 임원들과 그 남편들을 Dinner에 초청했다. 약 30명이다. 내가 잠시 여신우회 경건회 모임에서 “말씀”을 증거하고, 그들이 회무를 진행하는 동안에 남자들은 딴방에서 시국담에 여념이 없었다.

경제, 정치, 국제문제, 과학 등 각 분야 전문학도들이어서 듣는 나의 지식도 늘었다. 특히 ‘에너지 쏘오스’에 관한 캐나다의 위치와 그 처리에 대하여 배운 바 많다.

11월 12일(수) - 이범선이 지은 장편소설 “흰 까마귀”를 읽었다. 또렷한 ‘메세지’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각양각색의 인간도보(圖譜)가 전시품처럼 나열된 느낌이다.

11월 13일(목) - 저녁 후에 경용이 와서 ‘할머니’를 모셔갔다. 오늘 밤에 병원에서 전체 건강진단을 받도록 효순이 ‘arrange’ 해 놓았기 때문이란다.

11월 14일(금) - Eglington Ave. W. 110에 자리잡은 Metro Social Service Center에 이 목사와 함께 찾아가서 생활비 보조받은 신청서를 내고 Interview까지 마쳤다. 호의로 대하는 것 같았다.

그 근처 “스위스 샤레”에서 이 목사가 쿼터 치킨 디너를 대접해 준다.

11월 15일(토) - 최홍희 장군이 최덕신 장군과 나를 점심에 초청했다.

냉면과 정종 Party다.

이달 하순에 태권도 유럽대회를 영국 London에서 여는데 며칠 후, 그리고 떠나기 전에 작별 인사를 드린다는 것이었다.

11월 18일(화) - 효순은 오늘 병원에서 ‘어머니’ X-Ray 촬영하기로 돼 있다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11월 19일(수) - 나는 몸이 뚱뚱 부어 오른다. 몇 달 전부터 늘 그러했는데 밤에 자고나면 부기가 낼기 때문에 내버려 둔 것이다.

11월 22일(토) - 이복규 목사 1주기 추도 예배가 임마누엘 교회에서 거행되는데 나더러 설교해 달라고 한다. 가서 설교를 맡았다. 회중은 한인과 백인 반반쯤 된다.

회당이 가득찼다. 담임목사는 조창환 목사였다. 전택균 장로는 보이지 않았다. 혜원이 참석했다. 이복규 목사 심정은 시종 진실했다고 본다.

11월 24일(월) - 스웨덴의 신필균에게서 편지가 왔다. 거기서 모인 민주사회주의 국가들 세계대회에 일본의 한민통과 한국의 김철(金哲) 등이 참석했는데 의사진행이 어색하게 됐었다고 했다.

11월 25일(화) - 김대중 사형 제지운동이 급선무다. 대집회와 시위라고 크게 일으켜야 하겠다.

11월 30일(일) - 연합교회 예배회에서 설교했다. 교육회관에서 광주학살사건 실황영화와 김대중 씨의 ‘한신대’에서의 강연 등을 ‘오디오 비전’으로 보며 들었다.

12월 1일(월) - 한국의 백도기 목사가 김익선 목사 안내로 나를 찾아왔다. 기독교문학상 수상작품 “가롯 유다의 증언”이란 소설 한 권을 두고 갔다. 저녁때 다시 만났다.

그는 ‘한신대’ 졸업생이다. 선친은 6.25 때 공산군에게 순교한, 복음교회 초대 목사였다. 그후 백도기는 ‘기장’에 적을 옮기고 수원지방에서 목회중이다. 본격적인 작가로서 일반 문단에 진출했으면 한다.

밤에 신자, 정화와 함께 정화 차로 New Market에 신축한 정선 부부의 주택에 방문갔다. 화목한 것 같았다. 기도로 축복하고 밤 11시에사 Weston에 돌아왔다.

12월 3일(월) - 눈 덮이고 눈 오는 추운 날씨다. 신자도 다른 식구들도 모조리 자기 직장에 가고 나 혼자다.

댓글 1개:

  1. "기장성"

    한신대학교에 입학 한 이후에... '한국기독교장로회'라는 교단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 수없이 많이 '기장성'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쉽게 '기장성은 이것이다!'라고 설명하지는 못했다...

    어찌보면 '기장'의 근본이랄수도 있는 김재준 목사는 기장성에 대해서 바울의 '복음의 자유'와 야곱(야고보)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생활'이라고 말한다.

    물론 김재준 목사가 기장의 출발에 거대한 역할을 했다고 하지만... 그 이후의 역사를 통해서 기장성은 누적되어 발전되었고... 그때 그때의 상황에서 변화(?)를 거듭했다고 본다.

    도교에서 '도가도비상도~'라는 말이 있는데... 도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도가 이나라는 의미이다. 기장성 자체도 무엇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며 그 자체의 생명력이 존재하고 있고... 그 생명령은 어느 한 사람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기장인이 함께 공유하고 호흡하면서 천천히 역사적 발전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진화'라는 말을 쓰면... 거부감이 있을 분들이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재준 목사가 언급한 '복음의 자유'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생활'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특별히 우리는 그동안 '복음의 자유'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생활'에는 소홀한 면이 없지 않다...

    기장성을 제대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서로 균형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거기에다가 시대의 조류에 무조건 휩싸이거나... 조류를 무조건 거부하는 극단적인 모습은 삼가해야 한다...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그 이슈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수많은 부작용을 양산할 수도 있다...

    기장은 역사의 화살촉이지만... 화살촉만으로는 역사 속에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앞서가지만... 혼자 가지 않고... 더불어 함께 가기 위해서 때로는 기다리고 인내하고 참아주는 모습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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