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5일 금요일

[범용기 제5권] (33) 北美留記(북미유기) 第七年(제7년) 1980 – 최홍희, 최덕신 두 장군의 접근

[범용기 제5권] (33) 北美留記(북미유기) 第七年(제7년) 1980 – 최홍희, 최덕신 두 장군의 접근

4월 16일(수) - 최덕신 중장과 최홍희 소장이 나를 ‘한국관’에 초청한다. 점심을 나누면서 시국담을 교환하자는 것이었다.

온면을 먹으면서 두 시간을 얘기했다. 결국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남북통일은 절대 필요하다. 국내에서의 남북통일운동은 당분간 실현성이 희박하다. 그러므로 이 운동은 해외교포가 앞장서야 한다.

그것도 분산된 전선인 경우에는 개별격파를 당한다. 통일된 공동전선이어야 한다. 이 공동전선을 형성 영도할 수 있는 분은 長空 한 분 밖에 없다. 우리(두 최장군 자신들)는 목숨걸고 명령에 복종할테니 나서달라! 이런 얘기다.

이 얘기는 오늘 처음 나온 얘기가 아니다. 벌써 대 여섯 번 그이들에게 들었다. 무던히 집요한 분들이다.

“나는 모든 전선에서 이미 은퇴한 사람이고, 언제든지 때만 오면 간다 온다 말 없이 사라질 사람이니 그런 말씀은 당치도 않은, 그리고 나로서는 감당도 못할 요청”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것은 ‘장공’ 선생의 너무 겸손한 말씀이라면서 오는 24일에 자기 집에서 디너에 초대할테니 그때 또 얘기해 보자고 해어졌다. 이것은 ‘김일’이 제안한 ‘민간인 회담’에 대한 탐색 ‘발룬’인 것 같기도 했다.

4월 24일(목) - 오후 6시 반에 Taxt로 Mississauga 최홍희 장군 자택에 갔다. 만찬에 초대됐기 때문이다.

밤 1시까지 최덕신 중장과 최홍희 소장이 말하는 남북통일론을 들었다. 나에게 이북 선교의 첫 사람이 되라고 강권한다. 오늘 만찬초대는 지난 4월 16일에 한국관에서 이미 약속된 Appointment여서 나로서는 일구이언할 의사는 없었다.

이빨이 아프지만 티를 안 냈다.

내가 이북을 방문한다면 두 최장군은 내 좌우편에서 에스콧하겠노라고도 한다. 나는 말했다.

“난들 이북이 그립지 않겠소? 500년래 내 선조들이 묻힌 고장이고, 지금도 수천수만의 내 친척과 친지가 사는 인연의 흙인데 내 어떻게 잊을 수 있겠오. 이것은 이데올로기 문제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됨의 문제고 혈연의 문제고 사랑의 문제다. 그러나 내가 간다면 누구에게 에스콧 되 가지도 않을 것이고 누구의 권고나 누구의 등에 엎혀서 갈 것도 아니다. 내 가고 싶은 때 내 발로 내 자유로 가고 오고 할 것이다.”

나는 혼자서 나 자신의 ‘성분’을 따져본다.

나는 기독교 목사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을 악마같이 미워하지도 않는다. 예수님은 ‘네 원수를 사랑하라’ 했지만 나같은 범인(凡人)이 그런 장담은 할 수 없겠다. 그러나 그 정도로 맘에 여유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믿기는 한다.

이북인민도 인간이고 동족이고 내 형제 자매다. 어찌 만나고 싶지 않겠느냐? 선교도 하고 싶다. 그러나 “선교를 위한 선교”는 싫다. 문제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의 어느 한 편이 자기 빛깔로 전체를 칠해버리는 데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주의나 전략을 말하기 전에 ‘인간’을 재발견해야 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대접해야 한다. 인간이 타고난 권리, 인간의 존엄한 본성, 모든 행동과 사상과 사업에 있어서 ‘인간을 위한, 인간으로 말미암은, 인간의 제도와 이론과 생활양식’이어야 한다.

이북에는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가 없다. 모두가 전체의 부분으로 움직인다. 선택의 자유는 신성하다. 아담에게도 그것을 짓밟을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데서만 존재하고 성장한다. 이북이 전체주의 방향인 한, 개인자유는 병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개인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개인 자유부터 시작한다.

정치, 경제, 문화, 모든 생활부문에서 기독자는 자유하는 개인으로서 협력하고 창조하고 항거하고 비판한다. 기독자가 “예수 믿고 천당가시오. 세상 일에는 관여하지 말고 주어지는 대로 살다가 사후에 하늘에서 복락을 누리시오! ……” 한다면 그런 기독교는 정의로운 항거력을 잃고, 세상일에서 자신을 유리시킴으로서 독재자의 ‘시녀’가 된다.

가치 기준에서 ‘정의’가 탈락하는 때 노예근성이 ‘운명’으로 화한다.

가령 내가 이북에 기독교를 전한다면 어떤 형태의 기독교를 전할 수 있을까? 김일성과 그의 주체사상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서도 허용되는 기독교가 허용될 수 있을까?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사회생활 등등에서 기독교윤리를 실현하려는 기독교가, 신격화한 김일성 정보국가 안에서 의좋게 같이 살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한 얘기다. 그렇다고 들어가는 그날로 순교할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타계주의를 선전할 신학적 허위는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나더러 이북 선교의 첫 사람이 되라는 말은 학문적으로나 나 자신의 사람됨으로나 아직은 미완성의 몽환극(夢幻劇)에 불과하다.

가령 내가 이북에 다니러 간다면 내가 과두집권(寡頭) 그룹에게서 융성한 대접을 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화려한 그림의 ‘광고판’일 것이다.

“아주 비밀로 갔다 올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북이 완벽한 정보국가니만큼 비밀에는 비밀의 꼬리가 달린다. 그 꼬리가 보이지 않는 손에 조종되면 몸에 붙은 꼬리가 아니라, 꼬리에 붙은 몸이 된다.”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돌아간다. 잠이 안 올 것은 당연하다. 결국 우리의 통일문제는 충분한 재료와 과학적 객관적인 검토와 전문적인 학식과 편견없는 진지성 등등을 구비한 공개적인 ‘연구소’에서 맡아 해야할 것이다.

나는 스스로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잠이 온다. 내일 아침에 깨여 일어나면 ‘꿈같은 환상’으로 변모할지는 몰라도 당장 발산은 된다.

4월 26일(토) - 최덕신, 최홍희 장군 등이 중심이 되어 ‘배달군인회 확대회의’를 어느 Hotel에서 열었다. 나와 임창영은 ‘고문’이다.

축사를 부탁하기에 몇 마디 했다. 서독, 와싱톤, N.Y., 필라델피아, 토론토, 해밀톤 등지에서 태권도 관계자, 주로 사범들이 참석해서, 머리수가 많았다. 또 하나의 ‘좌우합작’ 전략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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