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6일 목요일

[범용기 제4권] (56) 군정독재에서의 김대중은… - “저주”를 마시는 흙

[범용기 제4권] (56) 군정독재에서의 김대중은… - “저주”를 마시는 흙

아담의 후손 가인이 질투하여 동생 아벨을 때려 죽였다. 아무도 본 사람 없고 아는 사람 없었지만, 하나님은 채근하신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사람인가요? 내가 알게 뭐예요?”

아주 당당하다.

이에 하나님의 말씀은 준엄하다.

“네가 무슨 일 저질렀느냐? 네 아우의 피가 소리질러 땅에서 내게 호소하고 있다. 땅이 입을 벌려 네 아우의 피를 받았으니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았다. 네가 이 땅을 아무리 갈아엎어서 농사하노라 애써도 소출이 없을 것이고 너는 결국 유랑민이 된다…”(창세기 4:11-13).

한반도는 “금수강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훑어보면 이 강산은 너무 많은 억울한 피에 절어 땅 자체가 저주의 흙이 된 것 같다. 뭐 될 것 같다가도 안되고, 되던 것이 갑자기 망가지고, 다 됐다고 좋아하는 순간에 비극이 벌어진다. 의인들 피를 마셨기 때문이 아닐까? “그거야 열강의 바둑판이 됐으니 의례 그럴 거지”한다. 그러나 열강의 각축장이라는 “발칸반도”도 우리 같지도 않다.

어떤 때,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에 비겨, 고난받은 의인이 나라와 민족의 영광이라고 설교한다. 그것이 몸으로 심은 씨앗이 역사의 미래를 꾸민다고 믿고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심은 대로 거둘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가 여유를 주시는 것 뿐이지, 의례 그렇다고 “법칙”은 아니다. “저주”는 저주대로 남은 것이지만, 몇 사람의 의인을 보아 집행이 어느 정도 늦춰지는 것 뿐이다.

나는 한국의 흙이 억울한 피에 절었다고 했다. 사육신, 생육신은 오래전 일이니 더 거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근세사에 있어서 김옥균을 죽이고, 최제우, 최시형 등 탁월한 종교창시자를 죽이고, 동학농민혁명의 총수 전봉준을 일분군대에 청들어 죽였다.

이승만 시대에는 어떠했는가? 송진우, 장덕수, 여운형, 김구, 조봉암 등등 쟁쟁한 지도자들이 암살당했다. 이런 애국자들의 피를 마신 강산이 영광받을 수 있겠는가? 그들의 피가 아직도 “신원”되지 않았다.

그뿐인가? 4ㆍ19때, 의로운 학생들의 피, 박정희가 죽인 조작된 인혁당 사건에 죽은 원혼들, C.I.A.의 고문에 죽은 최종길 교수, 바로 얼마 전에 부산서 고문에 죽은 임기윤 목사, 그리고 악형에 몸이 뒤틀리고 뻐그러지고 부서지고 골병들어 평생 산송장으로 지낼 수 천명 의인들, 광주학살에 희생된 수 백명 억울한 학생과 시민들, 그리고 마감에는 전 국민의 정치적 희망이고 씸볼인 김대중씨에게 법대로의 재판도 없이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문익환, 이문영 등 의로운 성직자와 민주정치인과 교수들 이십여명에게 대부분 20년과 15년 징역을 선고했다. 그들은 이제 50지나 60을 넘어 70일 향한 고령들인데 이 얼음으로 통조림 된 겨울 감옥에서 어떻게 살아 남을 것인가? 그건 또 하나 억울한 피로 나라 흙을 물들이는 살인행위다.

이미 받은 “저주”도 견디기 어려운데 이 “카인의 후예”는 어쩌자고 형제 도살에 쌍불켜고 드는지 알 수 없다. “멸망의 날을 위해 악의 분량을 채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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