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2일 화요일

[범용기 제2권] (132) 3선개헌반대 범국민 투쟁위원회(1969) - 3선개헌반대 범국민 투쟁위원회

[범용기 제2권] (132) 3선개헌반대 범국민 투쟁위원회(1969) - 3선개헌반대 범국민 투쟁위원회


1969년

박정희는 집권 10년인데 다시 출마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자고 발표했다. 그가 취임식 때 손얹고 국민앞에 서약한 헌법은 2선이상 못하도록 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대는 이름 그대로 범국민적이었다.

그래서 ‘3선개헌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란 것이 결성되었다. 이것은 대통령 자신이 헌법 위에 있어서 헌법을 그의 비위에 맞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독재선언’인 것이다. 한국민주주의 사활(死活)의 기로가 바로 이 시점이라고 느꼈다.

나는 집에 앉아 지냈다. 하루는 김상돈이 자기 농장용 반트럭을 끌고 와서 나더러 타라고 한다. “왜 그러느냐?”해도 시원한 대답도 없이 “두말 말고 어서 타라”고만 한다. 거대한 체구에 ‘카이젤’ 수염을 거슬려 뻗치구서 우격다짐이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탔다. 종로회관이었던가에 내려 안에 들어가니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없는 ‘빼꾹’이다.

신문기자 수십명이 카메라를 들고 주위 벽에 기대 서 있다. 유진산 사회로 무슨 ‘규약’이 거의 통과되는 무렵이었다. 나는 비좁은 뒤 출입구 옆에 서 있었다.

규약이 통과되고 그 규약에 의하여 의장 한 사람을 천거한다고 했다. 장준하, 윤길중, 이철승, 송원영 등 다섯 사람이 전권 공천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들은 즉석에서 내 이름을 내 놓는다. 나는 어리둥절 했다.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정’짜도 모르는 사람이니 그런 소리 마시라”고 두 번 세 번 거절했다.

그러나 막무가내였다.

“이건 민족의 지상명령이니 두말 말고 복종하시오!”하고 김상돈은 뒤에서 소리지르며 일장 연설을 한다.

이건 준비위원회니만큼 한달후에 열릴 정식 발기인회를 위한 준비작업에 불과하다고 하며 내 승낙을 간청한다.

“정 그렇다면 한달 준비기간만이라는 조건 아래서 승낙합니다” 했다.

유진산 씨가 내게 사회를 양보하길래 얼마 안 남았으니 그대로 진행시키라고 그에게 맡겼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