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7일 목요일

[범용기 제2권] (88) 돌아와 보니 – ‘평심원’에서

[범용기 제2권] (88) 돌아와 보니 – ‘평심원’에서


내가 광주 백영흠 목사 댁에 은거한지 이틀 후던가 동산병원 여(呂)의사(女의사이기도 하다) 그룹 세 분(?)이 찾아왔다. 그들은 서울 혜화여전 재학중에도 몇 번 우리집에 찾아온 일이 있는 ‘옛 친구’들이다.

그들은 광주 동산병원에 취직됐지만 단순한 ‘의사’로서 만족하기에는 너무 ‘비젼’이 컸다. 그들은 결핵요양원을 설립했다. 그들의 월급에서 성별하여 ‘제단’에 바친 성금으로 사설 요양원을 세웠다. 요양실, 의료실, 주방, 식당 등이 갖춰진 아담한 한국식 기와집이었다.

그들은 나를 거기에 안내했다. 고장은 백운산 계곡이어서 높은 고개를 넘어야 한다. 아직 “이름”이 없다. 그들은 나에게 작명(作名)을 청한다. 나는 ‘평심원’(平心院)이라 이름했다. 현액(懸額)도 써달래서 썼다. 낭간 밑 두툼한 도리 위에 걸어놓았다. 고전문화재 같이 의졌했다.

나는 거기서 숙식하며 한 주일쯤 지냈다. 고독과 정사(靜思)가 나의 일과였다. 멀리 폭포 밑에도 가보았다. 그렇게 높지는 않아서 수량이 풍부했다. 나는 알몸으로 폭포 웅덩이에 허리까지 잠궜다.

얼음냉수 같아서 곧 나왔다. 폭포 바로 밑은 파랗게 깊은 ‘심연’이어서 조금 무시무시해진다. 돌아오는 길에서 독사 한놈을 두들겨 잡았다. 늘어졌지만 채 죽지는 않았다. 요양원까지 왔다. 요양원 별실에 있는 젊은이 둘이 뛰쳐나와 그 뱀을 달라한다. 뭣하려느냐? 했더니 구어 먹는다고 했다. 닭고기보다 더 맛나다는 것이었다. 구어서 몇점 내게 가져왔다. 진짜 별미였다. 난생 첨 먹는 뱀고기다.

이 젊은이 둘 중에 한 사람은 ‘한신’ 재학생이었다. 입학은 했지만 ‘소명감’ 같은 것은 없다고 느껴져서 고민했다. 그 ‘진실’이 그를 이런데로 이끌어 온 것이었다.

그는 우수한 지성(知性)의 소유자였다. 소명감을 경험하려고 혼자 산중에서 철야기도도 해보고 난신고행도 얼마 해봤지만 아무 응답도 없었다 한다. 내게 상담을 요청한다.

나는 말했다.

“네가 네 본위로 하느님을 불러내리려는 것은 오만하다. 그건 너 자신을 위한 ‘영적 탐욕’이다. ‘믿음’이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한 예수의 ‘겟세마네’ 기도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신앙이란 풀 자라듯 안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전개되고 성장하고 열매맺는 장기 공작이다. 지금은 초조하고 불만스럽고 의혹에 차 있다해도 그것 때문에 믿음 자체를 포기하거나 단념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로 꾸역꾸역 계속하노라면 긴세월 안에서 몰래 몰래 자라는 것이다. 신학교에 돌아가 공부를 계속해라.”

그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큰 교회 목사로 충성하고 있다. 해외 유학도 했다.

나는 지금 ‘신종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한 청년은 사범학교 속성과를 마치고 소학교 교사로 있는 사람이었다. 인생문제에 고민하여 신경쇠약의 한계선까지 이른 진지한 젊은이었다.

나는 그에게 권했다.

“혼자 고민했자, ‘자학’ 밖에 되지 않는다. ‘한신’에 와라 입학시켜주마!” 했다.

그는 그렇게 용단하고 ‘한신’에 입학했다.

‘선과’에 들어왔지만, 그 동안에 5년제 중고등학교 전과목 검정시험에 합격하여 ‘한신’ 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마쳐 학사, 석사 칭호까지 획득했다. 지금 금호동 천은교회 목사로 충성과 지성을 겸한 목회에 전념한다. 단기간이지만 영국유학도 했다. 노력가라 하겠다.

‘한신’ 시간 강사로도 봉사하고 있다 한다. 이름은 이기영이다.

그렇게 생각하노라면 나의 백운산 피신생활 며칠도 하느님 ‘은혜의 질서’ 중 한 토막이었다고 감사한다.

총회에서는 헌법, 신앙고백서, 권징조례, 예식서 등등이 일사천리로 무수정 통과됐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출 사건에 대하여는 재판부가 설치되고 이남규가 재판장이 됐단다.

재판부에는 내가 반드시 출두해야 한다고 강권한다. 나는 안 간다고 고집했다. “나는 영어로 말한다면 Sick and Tired했다. 삶아먹든 구워먹든 마음대로 해라.” 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이튿날 그는 다시 왔다. “싸움은 끝까지 싸워야지. 최후 결전장에서 후퇴하면 되느냐? 같이 가자”하고 잡아 일으킨다.

그래서 다시 갔다.

이남규 재판장 앞에 앉았다.

나는 말했다.

“내가 할 말은 여기 다 쓰여 있으니 더 말하지 않겠다.”

그는 “알았다”면서 나가라고 한다.

결국 판결문은 간단했다.

“조선출은 학교 공금을 변상해야 한다. 그러나 조선출에게는 변상능력이 없으므로 그것은 결손처분에 붙인다. 동시에 조선출은 ‘한신’에서 퇴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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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 사건]은 제46회 총회 회의록[부록 제1호] 한국신학대학 경리조사 처리에 관한 건 ☞ 44쪽 이하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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