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7일 목요일

[1251] 전두환의 얼굴 / 1981년 2월

전두환의 얼굴


한국 국민은 정보에 너무 어둡다. 박정희 구테타 때에도 무슨 낮도깨비냐 식으로 생각했다. 일반시민으로서는 그의 사람됨은커녕 그런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거의 전부였다. 몇날 후에사, “이름은 박정희인데 작달막한 키에 가마잡잡한 얼굴이고 세귀눈에 표독하고 무표정한 냉혈의 사나이” 라는 얘기가 항간에 돌기 시작했다.

이번 전두환 구테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대개는 첨 듣는 이름이고 그가 어떤 내력의 어떤 인간인가를 아는 사람이 시민층으로서는 많지 않았다. 지금도 대부분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외지에 실린 것과 그 밖의 재료를 두루 모아서 아쉬운 대로 얼마 그의 옆얼굴이라도 그려보기로 한다.

광주 학살사건에서 그의 이미지는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대구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4년 후에 소위로 임관되어 육군본부에 배치됐다. 그것이 1955년이니까 대장계급을 달기까지 25년 걸렸다. “대장”이래야 “자칭”대장이랄 것이지만 -

고등학교시절에도 그는 성격이 난폭하여 같은 학생들은 무서워했고 선생들은 불안해했다고 한다.

전두환은 공수특전부대 훈련을 받기 위해 미국에 유학했다. 그래서 미국 스파이 줄을 타고 출세하기 시작했다. 친미파로 미국에 아부했고 1960년 다시 미국육군보병 학교에 유학하여 미국국방성관리들의 신임을 두텁게 했다. 그래서 5ㆍ16 때에는 공정부대 대대장으로 박정희와 함께 한강을 건너 중앙청 광장에 나타났다.

박정희는 구테타 직후에 한 달 동안에 13만 명의 애국자와 양민을 체포 투옥했는데 전두환이 진두지휘해서 공을 세웠다.

5ㆍ16 직후 육군사관학교 학생의 박정희 지지데모를 성공시킨 것도 전두환이었다고 한다. 박정희는 그 공로를 표창하는 의미에서 특별 진급시켜 육군대학에 보냈다. 전두환은 박정희의 섬복이 되는 것을 출세의 지름길이라고 보았기에, 책도 박정희가 쓴 “국가와 혁명과 나” 라는 책만은 외우다시피 정독했다고 한다.

1970년 11월에 전두환은 “백마부대” 제29연대장으로 베트남전쟁에 참가했다.

“화약과 피의 맛을 모르는 놈은 군인이 아니다” 한 박정희 말에 전두환은 절대충성을 보였다. 그래서 “바단”작전에서 무차별 살륙을 감행했고 1971년 1월 29일에는 “박쥐 제25호 작전”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혼쥬” 대학살을 직접 지휘했다. 그 때의 살인귀적인 만행은 우리가 이미 들은 얘기들이다. 아이들은 수십미터 밖으로 공 던지듯 냅다뿌려서 죽이고, 걷지 못하는 노인네들은 밟아 죽이고 부녀자는 대검으로 찔러 죽였다. 젊은 남자들은 손과 발을 잘라 죽였다. 병사들은 12종류의 살인방법을 쓰게 했단다. 목 조르기, 불에 산 채로 태우기, 임부의 배가르기 등등이었다. 여기서 326명을 그렇게 학살했다고 보고했다. 그래서 맹호부대의 윤필용, 백마부대장 등등의 표창을 받았고 윤필용의 추천으로 “주 베트남 미 육군본부”의 축사까지 전에게 전달됐다고 적혀 있다. 미육군지원단 경제담당보좌관 위캄 준장은 전두환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만나게 되어 기쁘다. 더 큰 공을 세워라” 했다고 한다. 그는 그 후 위캄의 후원으로 돈도 벌었다고 했다. 그 돈은 물론 박정희의 환심과 신엄을 사는 미끼로도 나갔다는 것이다.

전두환은 청와대경호실차장으로 출세했다. 전두환은 박정희 가족들과 식사를 같이 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근혜”, “지만”은 “전”을 형님이라 하고 “전”은 그들을 아우라고 불렀다. 술이나 얼근해지며는 “전”은 “아버지”, 이 “아들”을 믿어 주십시요. 아버지, 생명과 유신안보를 목숨걸고 지켜내겠습니다 …… 하며 열을 내곤 했다는 것이다.

전두환은 1974년에 청와대경호실 차장보가 됐다가 얼마 후에 “차장”이 되어 “실장”인 차지철과 “콤비”로 일했다. 둘은 박정희가 한강 건널 때의 “쌍둥”이였다. 차지철과 전두환을 경호실에 앉힌 박정희는 사사건건 그들과 의논했다. K.C.I.A.도 무색하게 됐다.

1979년 전두환은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박정희에게 초강경책을 단행할 것을 제언했다. 한 2, 30만명 인구를 줄여도 “안보”가 흔들리는 것보다 낫다고 했단다. “각하께서 하락하신다면 제가 당장 해치우겠습니다” 했다. 박정희는 그 당시에 경찰의 무능력, 중앙정보부의 우유부단 등등을 언짢게 여기고 있었기에 귀가 송긋해졌다.

전두환은 보안사령관 자리에 앉아 의기양양했다.

전두환은 10ㆍ26 사태 이후 특히 12ㆍ12 숙군작전에서 40여명의 장성을 축출하고 자기편인 대령급 장교들을 승진시켜 그 자리에 앉혔다. 전두환은 경찰, 검찰, 재판소 중앙정보부 등등에 공공연하게 간섭하여 버릇 나쁜 반체제 인물들을 용서없이 처단하라고 지시했다.

주 월남 미군 사령관으로 있던, 지금의 주한 미군사령관 위캄 대장이 자기 “빽”으로 도사려 앉은 것 때문에 더욱 오만해졌다. 그들 사이에는 장시간에 걸친 밀담이 자주 있었다 한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에 의하여 박정희가 사살되자, 전두환은 땅을 치며 통곡했다. “아버지 원수를 갚아 달라”는 “근혜”로부터의 전화를 받고서 “염려 마라. 내가 해치운다” 했다는 것이다. 그는 김재규를 죽이고, 김대중을 죽이고 민주운동 지도자들을 본때있게 족친다고 서둘렀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자기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군부내 반대파를 제거하는 데 선수를 썼다.

그 동안 그가 저지른 행적을 원경(遠景)으로 보면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는 속담을 연상하게 된다. 박정희는 만주군관 시절에 일본군 앞잽이로 독립군 토벌에 충성했다. 전두환은 “광주학생 학살’로 그 아비의 “토비행”(討匪行)을 본떴다.

박정희의 “국가최고회의”에 해당하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고 “대통령비상조치령”은 “계엄령”으로 본격화시켰다. 그리고 “친일”과 “친미”로 민족적인 치욕과 만회 못할 치명상을 자초하면서 자기의 불법권력을 굳히려는 태도, 이제는 거의 기정사실로 된 “미ㆍ일ㆍ한 군사일체화” - 그것은 “소련”에 대한 전쟁준비, 아니면 북한에 대한 위협, 공갈일 것인데 만일에 “국지전”이라도 일으킨다면 한국군이 최전선에서 “탄환받이” 노릇을 할 것이고 미군의 폭격과 함포사격으로 한국국민은 애매하게 죽을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미국군수 공업가들이 한국에 무기를 제공하고 돈을 벌 것이며 “반공”이라는 신경과민증 때문에 동족상잔은 전두환의 “광주시민학살”식으로 진행될 것이니 이것은 우리 역사의 “비극” 정도가 아니게 된다.

듣건대 미국 하원에서의 인권위원회 보고서에 의하면 (전두환이 귀국의 길에 오른 직후에 발표) 전 세계에서 가장 잔악하게 인권을 탄압하고 침해하는 나라가 소련과 남한이라고 발표됐다. 중남미나 아프리카도 “인권침해”에는 한국을 당해내지 못한다는 말이 된다. 남한과 북한을 놓고 말한 것이라면 “양두사”(兩頭蛇)의 비유와 근사하달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직접 남한 자체 안에서, 자기 국민인 인간을 그렇게까지 잔악하게 학대하고 죽인다면 그건 무슨 짐승에 비해야할지 알 수 없다. 아무리 맹수라도 제 새끼 잡아먹는 습성은 없는 것으로 아는데!

전두환은 자기 독재집권에 거추장스러운 인물은 위선 “죽여놓고 보자”는 것이 그의 소신이라고 쓰여 있다. 그 자신이 늘 그것을 주장해 왔다고 한다.

“죽이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다” 라고 말한다. “김재규도 죽여라”, “김대중도 죽여라”, 문익환 같은 사람도 이제는 70을 바라보는 성직자인데 15년 징역이면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역사는 전두환의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역사의 뿌리에는 국민이 있고 역사의 위에는 하느님이 계시다. 전두환에게는 심판대 앞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고 심판 받아야 할 때가 온다. 지금 돌이키지 않으면 그 때에는 “호리라도 깔끔하게 청산하기 전에는 결코 놓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선 김대중과 모든 민주인사들을 무조건 무죄석방하고 모든 체제를 자유 민중 System으로 고치고는 운동을 탄압하거나 방해하지 말아 야한다.

그리하면 혹 용서의 여백이 남을지 모르지만, 그렇잖으면 “나라와 함께 너도 망한다”는 폭군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 살리는 일만으로도 바빠서 쉴새 없을텐데 왜 죽이는 일에 그렇게 혼을 곤두세우고 매달리는지 이해하기 곤란하다.

(1981. 2. 제3일 속간 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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