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7일 목요일

[1001] 역사 참여의 신학 / 1971년

역사 참여의 신학


(1971년)

헬라 사람들은 사물을 개념화하는 귀족적 지성주의를 취했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를 교양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히브리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받으려 했다. 그리고 그 뜻에 순종하려 했다. 십계명에서만 보더라도 첫째가 각 개인과 하나님의 관계였고, 다음은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그 다음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라는 순서로 되어 있다. “너 자신을 알라.”고 하는 방향은 없다. 동양윤리의 근본을 말한 유교에서는 인간 대 인간관계의 윤리를 기준으로 했다.

헬라 사람들은 대체로 현실 역사에서 초월하여 형이상학적인 추상화 된 진리에 최고의 관심을 기울였고, 히브리인들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려는 태도를 강조하여 직접 역사적 사건에 관심을 기울였다. 동양 사람들은 대체로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인 가족윤리에 머물렀고, 그것을 확대하여 군신윤리에 이르렀으나, 그 본질은 개인의 의리가 앞서고 사회윤리는 그 부산물 정도였기 때문에 극히 애매한 역사의식밖에 갖지 못했던 것 같다.

[1] 우리가 히브리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사건들을 더듬어본다면, 하나님의 설계는 언제나 역사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창조설화에서부터 그렇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 그리고 인간에게 자연을 맡겨서 다스리고 개발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이 다만 자연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인간 역사의 요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유하는 주체다. 하나님도 그 자유에는 손대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그 자유가 억압 또는 말살될 때에는 인간이라는 그 자체가 비인간화하고 물건으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제외한 인간만의 역사를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광명보다도 암흑을 택했다. 공의보다도 죄를 택했다. 따라서 자연도 본의 아닌 ‘허무’에 굴종하면서 신음하게 되었다. 자연은 지금도 하나님의 뭇 자녀가 나타나기를 고대하며 그 영광의 자유에 동참하기를 갈망하고 있다.(롬 8:19~24)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자유하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구원의 경륜을 세우신다. 그 경륜은 언제나 역사적 사건으로 나타난다. 카인과 아벨의 사건에서 아벨을 택하고, 아벨의 계보에서 노아를 택하고, 노아의 후손에서 셈을, 셈의 후손에서 아브라함을, 그리고 그 후손에

서 야곱을 택했다. 야곱이 12지파를 한데 뭉쳐 이스라엘 민족을 만들고 그들과의 계약에서 특별계시를 역사화했다. 여기서 선택은 압축된 역사(condensed history)다. 계약(언약, covenant)은 역사 안에서, 은혜를 바탕으로, 율법을 통하여 행동하는 하나님의 역사활동이다.

이것은 출애굽 사건에서 명백하게 구체화됐다. 출애굽은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에서 탈출하여 가나안 복된 땅으로 향해 가는 행진이며 과정이다. 헤겔의 말과 같이 역사가 인간 자유에의 점진적인 과정이라면, 출애굽은 바로 인간 역사의 상징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 출애굽 사건의 주인공은 하나님이다. 그가 홍해와 사막에서 자연을 동원시켰다.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앞길을 인도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의 해방사임과 동시에 모든 역사의 본이다. 역사는 어디에서 탈출하여 어디에로 행진한다. 세속의 어느 역사도 마찬가지다. 원시시대의 무지한 약탈, 투쟁, 혈족 단위의 복수 등에서 탈출하여 하나님 나라의 완성인 종말에로 향하는 행진이다. 지금 역사에서도 그리스도가 그 속에 숨어 방향을 설정하고 인도하신다. 그리고 믿음의 눈은 이를 투시한다.

옛날의 예언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언자들은 말씀을 선포했다. 그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역사의 지도자와 온 국민에게 전했다. 말씀의 준거는 출애굽 사건에서의 ‘계약’이었다. 출애굽에서 보면 하나님이 바로의 주였다. 모세와 이스라엘의 주였다. 그의 행동 목표는 인간 자유의 완성이었다. 그는 이 목적을 위하여 역사 속에서 주격으로 일하신다. 예언자들의 심정 속에 있는 이 말씀은 역사 안에서의 하나님의 행동이었다. 가난한 자, 억울한 자, 눌린 자, 흙 속에 짓밟힌 자의 처지를 대변하고, 제 욕심만 채우고 남의 사정을 몰라보는 집권자, 부자들을 책망하는 말씀이었다. 형식만 갖추고 영적이자 도덕적 내용이 없는 종교도 규탄했다. 말하자면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등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현실에 대결하는 하나님의 대언자였다.

[2] 그리스도의 사건에서도 같은 방향을 본다.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도 직접 사회 속에 들어갔다. 맨 처음에 회당을 통하여 선교하려 했으나 회당은 그를 배척했다. 그래서 직접 사회로 들어가 사회 인사들과 자유로 접촉했다. 특히 가난한 자, 병자, 소외당한 자, 윤락된 자 등등의 친구가 되어 그들의 인간 갱신에 힘썼다. 그에게는 수천 명씩 대중이 따랐다. 그와 동시에 집권층의 의구심은 고도로 상승되었다. 그래서 권력자들의 반발로 사건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 가장 큰 사건이 십자가였다. 그는 열심당의 일파로 몰려 정치적 반역자, 로마 가이사를 반역하고 유대를 독립시키려는 반란 괴수라는 판결로 사형을 당하였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가 십자가에 붙었다. 그것은 정치범이라는 뜻이다. 그가 역사적 현실에서 유리된 개념적인 진리나 말하고 상아탑적인 심원한 철학이나 강의했었더라면, 그에게 그런 사건들이 일어날 까닭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역사의 아픈 곳을 직접 건드렸기 때문에 그들은 가만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역사적 예수와 신앙적 그리스도’라는 말로 가르쳤지만, 그것은 우리 편에서 하는 말이요, 예수 자신에게는 역사적 예수임과 동시에 역사적 그리스도인 것이다. 어떤 신비적인 것을 역사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아니라, 속속들이 역사적인 것이다.

역사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 세속세계다. 역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이 그 속에서 일하시는 무대다.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활동을 내포한 세속 활동이다. 역사는 동시대적인 그리스도(contemporary Christ)가 일하는(operate) 영역이다. 역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동적 행동을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의복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자의적이면서 신실하다. 다이내믹하면서 그리스도론적이다(John J. Vincent, Secular Christ, 210). 우리는 칼 바르트의 원역사, 즉 원초적이고 영원한 역사의 내용이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에서 형성된다는 말과 그것이 모든 역사의 기초와 숨은 의미를 이룬다는 말을 연상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는 역사가 고정적,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본다. 그래서 역동적이라는 표현을 채택한다. 역사의 사건이란 것은 한번 생겨나면 그 한 점에서 다른 사건에 직선을 그어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복, 재연, 계시적 운운하는 표현을 때때로 사용할 수 있다 셈치더라도 그것은 세속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가 스스로 역동적으로 택하여 행동하는 결과요, 고정적인 공식에 의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의 징조”(마 16:3)를 분간하는 눈을 밝혀야 한다. 지금 하나님이 이 역사 현실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며 무엇을 지향하고 계신가 하는 것을 분간하는 능(能)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지향하는 역사과정에서 그것을 위하여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그 역사에 참여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병자를 고치시고서도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고 늘 말씀하신 것은 자기의 행동이 타인에게 실효를 나타내게 되기 위하여서는 타인이 믿음으로 응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과정에서도 그리스도가 역사의 주이시지만, 인간이 믿음으로 그와 함께 참여하지 않으면 치유는 실현되지 않는다. 가령, 역사에서 전쟁은 필연의 운명이 아니라, 인간 악의 국제적 폭발이라고 한다면 전쟁은 그리스도의 원하시는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어떤 전쟁 도발자 또는 국제적 증오심 선동자들을 못 본 체 방치한다면, 그리고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스스로 초연한다면, 그것이 거룩한 일이겠는가? 평화와 화해운동을 일으키고 국내 및 국제 정치에서 일어나는 사건 하나하나에 국민이 관심을 갖고 악의의 도발을 완화시키며 호의를 증진시키는 일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부정부패가 나라 전체에 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그러나 부패한 집권층의 귀에 거슬리면 신변이 위험하다 해서 불의를 불의라고도 못하고 잠잠하다면, 결국 역사 안에서의 그리스도 활동에서 외면하는 불신앙자가 된다. 노동 대중이 기업주에게 부당한 학대를 받고 경제성장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져왔다면, 그것이 그리스도의 뜻일 수가 없다. 그런데 노동법을 법 조문대로 실시해 달라고 호소하다 못해 스스로 몸을 태워 정부와 사회에 사건으로 부각시키려 한 소년의 죽음을 보면서도 동결된 심정에 냉혹만 덧입히는 것이 크리스찬이라면, 그것이 예수의 제자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무언가 사건 해결에 참여하는 역동적인 행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3] 사랑은 절대적인 명령이다. 지식도 믿음도 말도 사업도 그것이 사랑에서 단절된 것이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바울은 단언했다(고전 13장). 하나님은 해와 비를 선한 자와 악한 자에게 차별 없이 내리신다. 그것이 율법 조문이나 도덕 목록을 초월한 더 높은 차원에서의 완전이며 그것이 아버지의 온전한 사랑이다(마 5:43~48). 사랑은 말이나 광고가 아니다. 그것은 몸으로 수고하는 이웃에의 봉사이다. 이웃이란 것은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원수도 포함된다. 내 가까운 이웃은 3,000만 동족이다. 좀 넓게는 모든 인류가 다 이웃이다. 나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산다.

이렇게 방대한 스케일의 이웃관을 실제로 운영하는 길은 정치다. 입법부에서 법을 만들고 행정부에서 그 법도로 행정하고 사법부에서 법대로 재판한다. 이런 모든 것을 통틀어 정치라 한다. 국제적으로는 국제정치가 있다. 그래서 서로 자기 나라를 보호하면서 다른 나라를 침해하지 않게 한다. 이 정치의 기틀이 악한 권력에 지배되면 그 피해는 전체가 받는다.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으로 말하면 3,000만이 함께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조선 말에 나라를 판 사람은 몇 사람의 악인들이었으나, 망국의 비참을 겪은 사람은 3,000만 전 국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자랑하는 것이 정말 자랑일 것인가?

예수의 정치는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종말을 한 설계도에 그린 총체적(overall)인 정치 배포였으니까, 그 당시의 사소한 정치 사건들에 일일이 개입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과 공간에 국한된 존재들이므로 예수가 보여준 역사의 총체적인 계획의 한 부분인, 우리가 배당받은 국한된 현대 역사를 가능한 최선의 노력으로 그리스도의 역사 방향으로 추진시켜야 한다. 우리에게는 과거의 역사나 종말까지의 역사적 기복을 전적으로 책임질 능력이 없다. 다만 우리의 현실에 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역사 방향에 참여하여 그의 역사 행위에 응답하며 제자직에 충성할 뿐이다. 그런데 이것을 불신성한 세속이라 하여 우리 생활에서 배제한다면, 무엇으로 그리스도 사랑을 표시하고 무엇으로 이웃 사랑을 실현할 수 있겠는가? 전체의 운명을 지배하는 가장 힘센 파수꾼을 때려눕히지 않고서 그 집을 약탈할 수 있겠는가.(마 12:29)

오늘의 사회 불의는 권력의 부패에서 온다. 권력은 권력구조라는 조직 속에 그 왕좌를 설치하고 있다. 그런데 그 구조악을 항복시키지 않고서 개별적인 선행을 장려하는 것은 큰 효력이 없다. 어떤 경우에는 악한 권력에게 위선의 구실을 제공하는 시녀밖에 안 되는 일도 있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 선교의 첫 시작에서 “악마와 대결하여 악마의 온갖 시험을 이기는 일”부터 했다. 그 후에도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 일갈할 수 있는 승자의 위치를 견지했다. 사도들도 ‘악마를 몰아내는 권세’를 갖고 있었으며, 사도 바울은 자기가 “공중의 권세 잡은 자와 싸우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하나님 이하, 인간 이상의 권력을 갖고 있는 악마와 싸운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전체로서의 인간을 모조리 자기의 가축이나 노예로 만들 수 있는 이 정치 악과 싸우는 것이 이웃 사랑의 현대형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조직과 기관을 통한 사랑의 실천이란 현대 사회에서 불가피한 것임과 동시에 신앙인의 정치 참여는 본래적인 신앙고백이 아닐 수 없게 된다. 이 사회 참여의 신학은 제2차 세계대전 후에 화해의 신학, 책임 사회의 신학, 혁명의 신학, 반란의 신학 등등으로 점차 그 농도를 짙게 한다. 그것은 기존 권력의 이에 대한 반발세력이 녹록하지 않다는 데서 강구된 대응책에 기인한 것이다. 그 신학이 어떤 형의 것으로 불려지든 간에 본회퍼가 말하는 ‘형성체로서의 윤리’는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현실세계 안에 예수 그리스도형이 형성되게 하기 위한 구체적인 판단과 결단과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리스도 형성의 역사 안에서 ‘참인간(real man)’이 참인간다운 인간 역사를 이루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우리의 신앙이 참으로 산 신앙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 안에서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삶의 기록이 되어야 하겠다. 역사 변혁 속에서 인간 변혁의 실적을 거두려는 방향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댓글 1개:

  1. 박정희 정권이 1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그 기반을 확고하게 했다고 국민들이 생각할 즈음에... 장공 김재준 목사는 '신앙인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 글을 발표하였습니다.

    권력자로서는 종교가 국민들이 권력에 순응하고... 내세를 추구하는 한도에서는 적극 장려할 수 있는 것이지만... 현재 권력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김재준 목사를 비롯한 소위 정치적 종교인들은 정치적 야망이나 욕심이 있어서 정치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과정 없이... 단순히 '이러면 세상이 나를 주목해 주겠지?' 라는 생각이 아니었음은... 그들의 삶 자체가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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