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제2권] (40) 부산 피난 3년 – 프린스톤 학생들의 모금
1ㆍ4후퇴 때 미국 선교사들이 부산과 대구에 모여 왔다. 선교사회가 조직되었다. ‘아담스’가 총무, ‘킹슬러’가 회계였던 것 같다. 본부는 대구에 있다.
킹슬러가 부산에 와서 나를 보자고 했다. 만났다. 킹슬러는, 프린스톤 신학교 학생회에서, 한국의 신학생들에게 보내는 구호금이라면서 금일봉을 내게 수교한다. 아무 꼬리표도 붙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이 ‘한신’ 개강을 희망적으로 추진시킨 동력의 하나가 됐다. 학생들의 숙식을 마련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킹슬러는 엉큼하게 자기 나름대로의 조건을 붙여보려고 한다.
“김목사도 이제부터는 한국교회의 화평을 위해서 우리와 의좋게 합해봅시다….”
“당신은 프린스톤 신학생들의 뜻을 따라 ‘무조건’으로 그 금액을 우리 신학생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사명을 완수한 것이 아니겠오! 다음 얘기는 한국교회 전체에 얼키고 실킨 복잡한 문제니 두고두고 풀어봅시다….”
킹슬러는 내가 프린스톤 있을 때 졸업반 학생이었고 한국선교사 후보였기 때문에 내게는 무던이 친절했던 사람이다. 그의 신학은 Ulter-Fundamentalism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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