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93) 간도 3년 – 순교자 열전 「십자군」
용정에서는 신사참배가 강요되는 일이 없었다. 일본영사관에서는 비교적 점잖았다. 그래서 나는 평양서 쓴 「순교자」 열전(列傳)을 책으로 출간하려고 일본영사관을 찾았다. 그 사무 맡은 사람은 조선인이었다. 나는 양식대로의 출판 신청서를 써 가지고 그에게 갔다.
원고를 읽어보아야 하겠다기에 두고 왔다. 허가가 되든 안되든 원고는 돌려준다고 그는 약속했다. 한달쯤 지나 다시 들렸다. 자세하게 본 모양이어서 원고는 붉은줄 투성이다.
“너무 잔인한 기록이어서 민심을 자극할 것 같고 신사참배 거부소동이 야기될 우려도 있으니 출판은 중지하는게 좋겠소” 한다.
“그럼 원고라도 도루 주시오” 했더니 좀더 의논해 볼테니 그대로 두라는 것이었다. 또 한달 지나 들렸을 때에는 “원고도 압수하기로 결재났소!” 하고 시치미를 뗀다. 결국 출판은커녕 원고까지 떼우고 말았다.
어쨌든 나는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무슨 ‘잡지’라도 내야 하겠다고 맘먹었다. 정기간행물은 납본제여서 검열이 필요없다. 그래서 친구들에게서 한 달에 일 원, 2원 의연받아 「십자군」 첫 호를 냈다.
원고를 써서 서울에 있는 한성도서 주식회사 인쇄소에 보내면 초교와 재교는 전영택 목사님이 보아 주시고 삼교는 용정에서 내가 본다. 하루에 가고 하루에 오고 기차편이었기에 말 그대로의 ‘일일권’(一一圈)이다.
그 무렵에 ‘만우’ 형은 부산서 「성빈」(聖貧)이란 잡지를 내고 전영택 형은 서울서 「새 사람」이란 본격적인 월간지를 내고 있었다. 외치고 메아리쳐 부산에서 서울에서 그리고 만주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