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기] (53) 미국 3년 – 교수들 기억
그 당시 조직신학 교수가 스코틀랜드에서 새로 부임했다. ‘도날드 매캔지’란 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직신학을 ‘마이너스’로 하고 그의 강의를 많이 택했다. 그는 월요일 오후에 시내 목사들을 위한 특강도 했었는데 거기에도 출석했다.
그는 걸핏하면 ‘페퍼’를 써 내란다. 내 ‘페퍼’가 특선되어 프린트물로 같은 청강자에게 나누어진 일도 한 두 번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자기 서재에서 자기 저서에 서명하다 ‘상’이라고 ‘클래스’에서 내게 주던 일도 기억된다. 그는 내 졸업반 때 프린스톤에서의 초청에 응했었으나 웨스턴 학생들의 강력한 만류로 단념했고 내 졸업한 해 구월인가 종시 프린스톤으로 옮겨 거기서 종신했다.
교장인 ‘겔소’ 박사도 구약전공이고 컬리 박사도 구약인데 모두 Postgraduate Work은 튜빙겐이었다고 한다.
겔소 교장은 그 아버님이 선교부에 설치되기 전, 인도 선교사였던 관계로 어머니는 인도인이었다. 겔소 교장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신약 교수인 ‘밴스’ 박사도 내게 특별한 친절을 보이셨다. 자주 가정에 초청해 주셨고 목사가 교인 보살피듯 해 주셨다.
‘컬리’ 교수는 나의 주임교수였으니만큼 더 자주 접촉했다. 내향적이고 몹시 차분한 분이었다. 겔소 교장과 컬리 교수 모두 구약이었다. 컬리 박사는 주로 Semitic Language 부분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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