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0일 월요일

[귀국이후] (5) [1712] 母系(모계)의 血緣(혈연) - 再會(재회)의 기쁨 -

[1712] 母系(모계)의 血緣(혈연) - 再會(재회)의 기쁨 -

내 어머니는 香洞(향동)에 정착한 樊岩(번암) 蔡濟恭(채제공)의 후예다. 樊岩(번암)은 정조(1777-1801) 때 南人(남인)의 수령으로서 영의정까지 한 분인데 그가 天主敎(천주교)에 대하여 완화정책을 썼기 때문에 邪學(천주교) 배격운동자들의 미움을 사서 누차 삭직 당한 일이 있었다. 攻西派(공서파)들이 非蔡派(비채파)를 强化(강화)하여 계속 보채는 바람에 일부 자손들이 北關(북관)으로 이동하여 경원 함향동에 정착한 것이라 한다. 물론 남도에도 흩어졌지만 그 수는 번창한 축이 아니고 本貫(본관)은 平康(평강)으로 통일되 있다 한다.

어쨌든 내 외갓집은 그 고을에서 제일가는 大家(대가)였으며 그 가문에도 말없는 위신이 감돌고 있었다. 큰 본당의 안내문을 들어서면 안 마당이 넓고 옆으로 뒤로 부속건물이 둘러 있었다. 지금은 공산치하에서 폐허로 남았을지 모르겠다.

내가 열아무살 – 조금 철 들었을 때에는 외할아버지도, 외할머니도, 외삼춘도 다 돌아가시고 외삼춘댁인 “큰어머니”만 생존해 계셨다. 그리고 외사춘형님 – 채규포, 채규홍 두 분이 계셔서 나를 개화운동쪽으로 끌어넣은 것이었다. 이 두분 형님은 내 평생의 은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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