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3일 화요일

[범용기 제5권] (138) 輓章文記(만장문기) - “기독교 국가”라는 나라들이 현실로 존재하는가?

[범용기 제5권] (138) 輓章文記(만장문기) - “기독교 국가”라는 나라들이 현실로 존재하는가?

우리는 흔히 서구문명을 ‘기독교문명’이라 하고 서구 제국을 ‘기독교 국가’라고 한다. 거대한 사원들 뾰족탑이 하늘에 꽂히고 육중한 출입문이 성채의 성문같이 닫히고, 그 문을 어깨로 밀고 들어서면 드높은 스테인그래스에서 5색 빛이 솜처럼 스며들고, ‘재단’은 ‘제천단’ 같이 장엄하고 천정은 아름들이 돌기둥 숲에 떠 받치어 하늘의 ‘궁창’을 이루고, 수백자루 금촛대는 뭉쳐, 하늘에서 내려온 별무데기로 빛난다. 찬양대는 천사, 거룩, 거룩, 거룩을 노래한다. 그러나 대체로 보아 예배자는 그 공간의 백분지 일도 채우지 못한 것 같다. 왜 그런가? 지금은 ‘탈콘스탄틴’ 시대기 때문이라 한다. “신앙은 洛花(낙화)로, 理性(이성)의 거리 바닥에 딩굴며, 가고 오는 발에 밟힌다.” 그래도 예부터의 ‘습속’이 조금 남아 문화 속에 향긋하다.

예배당들은 ‘사원’이란 이름의 ‘고궁’으로 관광객의 관람료에 구차스런 숨결을 치 쉰다. ‘파리’의 노텔담, 영경의 웨스트민스터 모두 같은 운명이다.

트라팔가 광장에는 ‘침략의 영광’이 분수가 되어 치솟는다. 분수와 용수와 저수의 바위 옆과 아래와 못가에는 젊은 사내자식들이 얼빠져 멍하니 앉고 서고 눕고 존다. 말 한마디 건네는 놈이 없다. 거리의 보도 가생이에는 방긋이 웃을 꽃봉우리, 애교가 활짝 피어야 할 방년의 아가씨들이 허주레한 옷 한 벌 걸치고 엉덩이를 세멘 바닥에 깔고, 길다린 두 다리를 꺽어 세우고, 그 사이로 머리를 쳐박고, 침 흘리며 존다. 아마도 마리화나의 몽환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 국토에는 해지는 곳이 없다”던 ‘대영제국’도 이미 늙었구나 싶어 과객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대영박물관을 본다. 침략자와 노획물 전시장을 거니는 것 같았다. 진실로 풍부한 문화재다.

한 두집 돌고나니 골치가 땡긴다. 무덤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음산하다. 피라미드 속은 진짜 무덤 속이다. ‘사자의 서’가 철학이니 그럴밖에 없을 것이다. 종일 기쓰고 돌았는데, 한집 밖에 못 봤다. 이어진 집들은 얼마 보는체 하며 건등으로 지났다.

위에서 ‘침략문화’란 말을 썼지만, 그건 엘리자베드 여왕의 왕관이 어김없이 상징한다. 그 굵은 야광식 ‘다이아몬드’가 어디서 주워오고, 파오고, 헐값으로 사들인 것인가?

죠세, 밀톤, 섹스피어, 그리고 그득 차 여유있게 흐르는 대하같이 이어진 영국문학이 영국을 기독교 국가로 빛나게 했으니 그 ‘다이아몬드’ 왕관이 그대로 기독교문명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으랴 한다.

그렇다. ‘기독교 국가’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나라’는 아니다. 나를 위해 남을 약탈하고, 침략한 나라가 기독교 국가일 수는 없다. 적어도 제각기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선 나라는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패권국인 미국도 그렇다. 청교도들의 건국정신은 얼굴의 화장품이고 속에 가득찬 것은 돈 욕심이다. 구 한국 말기와 일제시대에는 한국인이 미국을 동경하고 높였다. 우리를 해방시킬 ‘자유의 여신’ 같이 생각했다.

제일차, 제이차 세계전쟁에서 미국은 전쟁부자가 됐다. 유럽의 돈이 미국에도 쏟아져 들어온다. 돈 맛을 톡톡히 봤다. 사람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말한다. 자유진영의 종주국일진대, 전 세계 약소국가들의 자유, 해방, 정의, 평화를 책임지고 밀어줘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나라 이익을 위해서 독재자, 강자, 압박자를 도우며 하나님 아닌 ‘전쟁신’을 전도한다. ‘마이스’ 신의 제단에는 ‘헌금’이 태산같이 높다. 그러나 피압박자, 빈민, 억울한 희생자, 죄없이 갇힌자, 정의의 용사 등등에게는 바닷가의 모래알 하나만큼도 도우려 하지 않는다. “입을 비뚤어도 말은 바르게 하라”는데 말 한마디 바르게 했다는 기록도 찾기 어렵다. 남 몰래 보드러운 총고를 했노라, 소위 Soft외교를 했노란다.

“솜 방망이로 때렸노라”는 자랑일지 모른다. 지금의 미국 대통령은 아예 노골적으로 독재자 편이란다. 독재 정권도 정부인데 자기나라 정부가 자기 백성을 구어먹든 삶아먹든 내 알 것 무어냐 한다. 내정간섭은 삼간다고 한다. 정말 그렇게 “신사적”이라면 왜 남의 나라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그 나라 ‘국군’까지 자기 나라 군 사령관의 지휘권 아래 예속시키고 있느냐? 그에서 더 큰 내정간섭이 어디 또 있느냐? 국군이 난동을 부릴까봐 그런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제일선 사령관인 전두환이 마구 내려와 반란을 일으키고 국민을 학살하는데도 못 본체 했느냐?

바로 찢어진 입 가지고 비뚫어진 말만하니 누가 그 나라의 신의가 있다고 하겠나? 다국적 기업체에게 또 한군데 돈 벌 광맥을 찾아 주려는 심산이겠다. 미국은 ‘기독교 국가’에서 탈락된 지 오래다. 탐욕이 목구멍까지 막아서 숨 가빠 허덕이는 ‘마몬의 왕국’이다. 그거야 좋은 면은 있겠지, 온통 다 악당 뿐이라면 벌써 소돔 고모라가 됐겠지! 어떤 여행자가 “미국 사람은 먹고 뛰는 것이 일인 것 같더라” 라고 했다. 잘 먹고 살찌고 빼노라고 뛰고 – 나라는 철저한 유물주의요, 이득본위고 – 그래서 ‘청부’는 머리칼 한 가닥만 뽑아줘도 천하가 이롭게 된다해도 내 머리칼인데 그걸 왜 남에게 주느냐? 하여 머리를 가로 흔든다는 ‘도척’의 ‘왕초’가 된다. (‘도척’은 이기주의 철학을 펴낸 철학자였는데 이 말은 맹자의 그에 대한 일방적인 혹평이었던 것 같다.)

필자의 위에 말한 ‘미국 평’에도 일방적인 혹평이 섞였을 것이다. 그러나 큰 테두리로 말한다면 사실임에 틀림없겠다. 적어도 청교도들의 이상주의적 건국이념은 닳아빠졌다. 타락한 실리주의만이 남아서 윤리와는 절연한 순수 과학자들의 생리연구용 시체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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