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9일 금요일

[범용기 제5권] (123) 동경에서 – 能辯者(능변자)

[범용기 제5권] (123) 동경에서 – 能辯者(능변자)

고 ‘추호’ 전영택 목사님은 글에는 능하지만 말은 잘하는 축이 아니었다. 장덕수 씨는 ‘雄辭健筆’(웅사건필)이라고들 했다. 말하자면 연단에 오르면 웅변가요, 글을 쓰면 명문장이란 뜻이겠다.

3ㆍ1운동 다음해에 필자도 어떤 보이잖는 손에 이끌려 서울에 왔다.

새로 부임한 일본의 해군대장 ‘제등실’(사이또오 미노루)이 “문화정치”를 한다고 선언했다. 그 ‘덕택’에 동아일보도 생겨나고 조선일보, ‘개벽’ 잡지, ‘동광’ 등등이 ‘데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무럽에 장덕수 씨가 귀국하여 첫 학술강연을 했다. 제목은 ‘루쏘’의 ‘민약론’ 강해였다. ‘강연’이라는 성질의 것이어서 ‘웅변’은 격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차근차근 풀이해 나간다. 그래도 말솜씨가 능숙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후에 ‘여운홍’ 씨가 미국으로부터 귀국하여 ‘정동’에서 귀국강연을 했다. 그는 웅변을 토했다. 그러나 내 머리에 남는 것은 없었다.

여운형 씨가 귀국했다. 그는 진짜 웅변가로 이름난분이니만큼 ‘웅변’으로 청중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함북 은성 출신인 박일별 씨, 서울의 김창제 씨 등 모두 웅변가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분들이었는데, ‘말’의 알맹이보다도 ‘말하는’ 술(術)이 돋보여서 ‘공허’를 안겨주는 경우가 많았다. 말 잘하는 사람은 말이 쉽게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말이 많아진다. 말이 ‘핵’을 향해 압축되는 대신에, 둘레를 향해 확산된다. 연상 작용이 번갯불 같아서 말은 꼬리에 꼬리가 달린다. 그 꼬리가 길면 ‘구미호’(九尾狐)가 될 우려도 없지 않다.

미국의 ‘리건’ 대통령은 신랄한 정치평론 배우였다는데 그 명성이 ‘영화’를 타고 천하에 퍼져서, 진짜 ‘대통령’이 됐단다. 말하자면 정치배우 대통령이랄 수도 있겠다.

그가 등장한 무대는 1932년 푸랭클린ㆍ루즈벨트가 나서던 때와 비슷하게 꾸며졌다. ‘경제공황’의 검은 ‘막’이 겹겹으로 둘린 어두운 무대였다.

푸랭클린 루즈벨트는 ‘뉴우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을 발표하면서 “이렇게하면 됩니다”,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합시다”하고 연설했다. 필자는 그때 피쯔벅에 있었는데 그 입후보 연설하는 날 아침에 귀국의 길에 올랐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후에 그는 그대로 하여 미국 경제를 재건했던 것이다. 어제 저녁 T.V.기자의 ‘리건’ 평을 듣건대는, 프랭클린은 “You can do it”이란 네 마디 단어만으로 이겨냈다고 한다.

짜임새 없는 허술한 선동연설이나 하고 돌아다니는 것 같은 ‘리건’의 유세(遊說)에 대한 평인 것 같았다.

방대한 군부예산은 그대로 살리면서 평화산업, 지방예산 교육비 등은 돌아가며 삭감함으로 수지를 맞추려는 근본시책에 대한 불평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러면서 말은 청산유수다. 발음도 정확 명백하여 영어에 덤덤한 사람으로서도 또박또박 귀에 담을 수 있다.

말 잘하는 대통령이자, 말 많은 대통령임에 틀림 없겠다. 알맹이 없는 말은 바람에 날려가는 벼깎대기 같아서 허망스러워 진다. 실업자 4천만이 ‘아귀’(餓鬼)되어 아우성치면 ‘굿’하는 정도로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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