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9일 금요일

[범용기 제5권] (121) 동경에서 – 周公(주공)

[범용기 제5권] (121) 동경에서 – 周公(주공)

공자는 요ㆍ순ㆍ우ㆍ탕ㆍ문ㆍ무ㆍ주공을 이상적인 君主(군주)로 추앙했다. 그 중에서도 ‘주공’을 더욱 높이 평가했다. 주공은 聖君(성군) ‘문왕’의 아들이고 무왕의 삼촌이다. 그러나 그는 조카 武王(무왕)을 도와 그를 거룩한 임군으로 섬기는데만 힘썼고 스스로 왕위에 오를 생각은 없었다.

그는 ‘힘’의 정치보다도 ‘덕’의 정치를 원했다. 그래서 도덕과 재능이 겸비한 사람들이 국사(事)를 맡게하려 했다. “나도 한번 해 본다”고 덕있는 재사들이 전국에서 모여든다. 우선 ‘주공’을 뵈러 온다. ‘주공’은 손님 만나기에 바쁘다. 지금처럼 ‘애포인트’하고 오는 것도 아니다.

그는 천천히 식사할 사이도 없었고 맘놓고 목욕할 시간도 없었다. 한번 식사하는 동안 세 번의 입의 밥을 뱉아야 했고 한번 목욕하는데 세 번 머리칼을 움켜잡고 ‘현관’에 나가야 했단다. (一飯三吐哺 一沐涼三握髮)

그만큼 그는 뜻있는 ‘재야인사’를 존경했고 재능과 덕행이 겸비한 인물 만나기에 성의를 다한 것이었다.

결국 ‘주공’의 조카 ‘무왕’은 ‘은’(殷) 왕조의 폭군 ‘주’(紂)를 멸하고 중국의 천자(天子)가 되었다.

공자는 ‘주공’을 중국문화의 스승으로 추앙하여 ‘주공’의 행적을 본따려 했다. 꿈에도 늘상 ‘주공’을 뵈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늙어 주공 뵙는 꿈마져 사라지자, 그는 스스로 탄식했다. ‘주공’이 꿈에도 나타나지 않으니 이제 내 생명은 끝장 났다고.

이승만 박사가 청와대에 들어갈 때 많은 민간 인사들이 그에게 말했단다.

“면회 신청하는 민간인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민간 실정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특정인간이나 특정기관인만을 상대하고 민간인을 소외시키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그러구서 어떻게 대통령 노릇을 해!” 하고 이 박사는 일축해 버렸다고 들었다.

결국 그는 ‘사람의 장막’에 포위되어 民情(민정)에 어두웠기 때문에 청와대에서 푸른빛이 바래고, 흑막이 老眼(노안)을 흐리게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한국에서 대통령 된 사람, 되려는 사람은 周公(주공)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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