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4일 목요일

[범용기 제5권] (24) 北美留記(북미유기) 第七年(제7년) 1980 – 인간은 두려운 존재

[범용기 제5권] (24) 北美留記(북미유기) 第七年(제7년) 1980 – 인간은 두려운 존재

4월 28일(월) - 본국에서 오는 어떤 분이 내게 물건을 전한다. 여류시인 조애실 여사가 “出帆”(출범)이란 이름의 자기 시집과 “차라리 통곡이기를”이라는 제목의 수상집을 내게 보내 온 것이었다. 그는 미술품 창작에도 개인으로서는 거창한 시설을 갖고 있다.

사기그릇 구어내는 가마(窯)도 제손으로 만들어, 고려자기, 이조백자 등을 자기 가마에서 구어낸다. 그림도 그린다. 후배를 가르치기도 한다.

매년 전시회를 연다. 이조백자는 우리 눈으로서는 ‘제격’인 것 같았다. 거센 중년 여성이다.

그녀는 해방직후에 한신여자신학교에 입학하러 왔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돌려보냈다.

나는 그 작품들을 앞에 놓고 스스로 두려워졌다.

내가 그녀의 ‘한신’ 입학을 거부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그때 아오지 탄광촌에서 갓 나온 젊은이었다. 탄광촌에서 광부들 상대로 전도한다는 결의로 기도처를 만들었다.

기도와 예배는 광부들과 인연이 멀었지만 ‘술’은 그들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그녀는 술상을 차려놓고 ‘빼갈’을 마시면서 전도했다. 그러나 그녀와는 가까워지면서도 기독교와는 먼데로였다.

성경을 읽게 해야 할 텐데 그러려면 한글 습득과 독서습관이 필요했다. 그녀는 한글을 가르치고, ‘독서회’를 조직했다. 쉽고 간단하고 재미있는 책부터 읽게 했다.

놀랍게도 성과가 좋았다. 그런데 ‘일제’ 경찰은 ‘독서회’라는 그룹이 좌익 비밀집단이라는 전제 아래서 체포하여 투옥한다.

몇 해를 징역하고서도 좌익으로 ‘요시찰’ 명록에 걸린대로였다. 그녀는 신학을 전공하고, 교회를 섬기겠다고 맘먹었다.

그래서 한신여자부에 입학을 청원한 것이었다.

나는 구두 시험때에 차근차근 묻는다. 결국 신앙으로나, 교회 생활로나, 성경상식으로나, 신학생 기준에는 미달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성격으로 보아 ‘여전도자’ 구실은 해낼 것 같지 않았다.

나의 거부는 단호했다. 그녀의 떼쓰기도 집요했다.

그녀는 마침내 현장에서 울음이 터져 통곡했다.

울지 말고 열심히 준비해서 다음 해에 다시 와서 응시하라고 일러 퇴장시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소식이 없었다.

나도 구태여 채근하지 않았다. 혼자 생각으로 “그녀는 범상한 인간이 아니다. 혁명기질에 타는 거센 창조자다……”하는 인상을 고요히 간직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는 그 동안에 시인, 생활인, 미술가 등등으로 발전한 모양이다. 젊은이를 깔보지 말아야 한다. 두려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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