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7일 목요일

[범용기 제4권] (92) 野花園餘錄(其四) - 내 백성(王道, 왕도)

[범용기 제4권] (92) 野花園餘錄(其四) - 내 백성(王道, 왕도)

한국의 유교학자들은 저절로 유교의 본산인 중국문화를 숭상했다. 거의 추종했달 수도 있겠다. 유학자들은 황금시대를 과거에 둔다. 그래서 회고주의와 복고운동은 있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혁명’은 거의 없었다. 모택동, 주은래 등의 공산혁명은 예외일지 모르지만, 그들도 중국 6천년 문명의 전승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역사는 과거를 안고돌아 연륜을 그리며 새로 자란다. 그런데 이조 유학자들의 거의 전부는 과거를 ‘답습’하며 그것을 절대화함으로써 “새 생명의 성장”을 ‘난적’으로 처단했다. 새 싹을 싹둑싹둑 자른다.

필자는 과거를 존중한다. 과거에 뿌리내린 성장만이 건전한 역사를 ‘창조’한다. 여기서 ‘창조’란 말은 Out of Nothing이란 의미에서가 아니다. 유학자들은 이상적인 정치왕국을 Utopia로 생각했고 그 원형을 고대의 전설적인 “성군”(聖君)에게서 발견한다. “3皇”(황)은 신화시대라 하여 제쳐 놓는다셈 치더라도 그 후에 이어진 왕국, 다시 말해서 ‘요, 순, 우, 탕’ 그리고 ‘주’왕조의 문왕, 무왕 그 보필자였던 ‘주공’을 ‘공자’는 가장 높이 평가했다. 그래서 자기가 ‘주공’의 시대에 태어나지 못하고 춘추전국의 난세에 태어난 것을 한탄했다. ‘맹자’는 요, 순 시절을 ‘왕도’(王道의 정치라 하고 춘추전국시대를 ‘패도’(霸道)의 시대라고 했다. 그는 ‘패도’를 배격하고 ‘왕도’를 주장했다.

‘왕도’란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백성을 위해 왕이 있어 있는 것이고 왕을 위해 백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정치 방향이다. 그리고 ‘패도’란 것은 요새말로 Power Polities여서 以力假仁(이력가인), 폭력으로서 사랑을 가장하는 권력주의자의 자기중심적 기만술책을 의미한다. 한국의 군사 독재정권에 해당되는 말이라면 과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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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도들이 숭배하는 ‘요’임금이나 ‘순’임금은 자나깨나 ‘백성’(People)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내 백성”이 어떻게 지내나! 내가 잘못해서 내 백성이 고생하지나 않나! 그의 걱정은 이 촛점에서 불타고 있었다.

그때는 농경시대여서 ‘백성’과 ‘농민’은 ‘동의어’ 같이 사용되고 있었다.

‘순’임금은 농민 차림으로, 몰래 농촌 시찰에 나섰다. 물론 혼자였다.

농토을 고르면서 농민은 노래한다.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고
우물 파 물 마시고
땅 갈아 밥 먹으니
임금이 내게
힘될 것 무어냐!”

‘순’임금의 마음은 흐뭇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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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임금의 ‘궁궐’이란 별것 아니었다. 오막살이 초가집에 흙 계단 셋이다. 풀로 엮은 지붕도 다듬지 않아서 처마끝이 가지런하지 않다. 말하자면 ‘내 백성’의 집과 같은 모습이기를 원했던 것이다.

* * *

봄이 와서 황하유역에도 남쪽바람이 따스하다. ‘순’은 ‘남풍의 시’를 읊는다.

“따스한 남쪽바람
내 백성의 노여움
풀어주오
때 맞추어 부는 남풍
내 백성의 재산
늘려주오.”

‘내 백성’의 행복이 ‘순’임금의 전부였다.

이런 정치는 ‘민주주의’까지는 못가도, ‘민본주의’라고는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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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캐나다의 민주체제는 맹자가 꿈꾸던 ‘왕도’의 실현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런데 우리 본국의 군정당국은 ‘내 백성’을 먹는 양두사랄까! 뱀이 꼬리에도 대가리가 생겨서 두 대가리가 서로 물고 먹는다. 제가 저를 먹는 것이다.

* * *

광주 ‘백성’은 ‘내 백성’이 아니라고 마주 짖씹어 먹는다. 3천만 남한 People은 ‘내 백성’이 아닌가 싶어 등에 총칼을 대고 ‘포로’인양 끌고 간다.

‘남풍’이 불어 이 백성의 노여움이 풀릴 날은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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