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1일 금요일

[범용기 제4권] (90) 野花園餘錄(其四) - 제야의 종

[범용기 제4권] (90) 野花園餘錄(其四) - 제야의 종

지금도 그런지 모르지만 육칠년전만 해도 서울의 ‘제야’는 자못 낭만적이었다.

자정, 새해 첫머리에 울려오는 종소리를 이엄이엄 라디오로 듣는 흥겨움 말이다.

제일 먼저 종로 보신각의 인경 소리다. 밧줄로 가로 달아맨 대여섯자 길이의 나무토막을 휘영청 뒤로 잡아당겼다가 인경 대때기에 ‘쾅’하고 부딪치는 것이다. 인경은 몸부림치며 운다. 와글와글 떠드는 시민들 소음을 뚫고 그 신음소리는 온 장안에 퍼진다. 몸집에 비긴다면 자못 빈약한 소리라고 느낀다.

뒤를 이어 경주의 에밀레 종소리, 낙산사의 맑고 세밀한 종소리, 해인사, 범어사, 신계사, 월정사 등등의 종이 울린다. 꼭 같은 음색(音色)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음’(陰)에 속한 소리의 색깔이다. 서양 종들의 “댕그랑 땡땡”하는 금속성 째지는 소리와는 대조적이다. 신음소리 같이 그러나 장중한 무게를 가진, 그 심연에서 솟아오르는 거룩한 탄식은 우리 역사의 소리다.

서양 사원들의 종소리, 노틀담 사원의 종소리, 모두 “도레미파…”의 음계로 분해되어 ‘풍금’처럼 울린다. 그러나 우리 사원들의 종소리는 하나로 융합된 음향이다. 궁ㆍ상ㆍ각ㆍ치ㆍ우 다섯 원음만이 아니라 그 밖에 갖가지 음향이 합쳐서 한 소리로 울린다. 그 소리는 그대로 “영원”을 담아 보낸다. 그 소리 자체보다도 그 “여운”이 아름답다.

“웅웅웅웅…” 소리에 소리가 이어 갈수록 잔잔해지다가 마침내 그 명주실 마감 음파가 영원에 감추이는 순간 우리는 심장의 고동이 멎는 간지러움을 느낀다.

서양에서의 ‘제야’는 뭐랄까? 일종의 ‘발광’이랄까? 술, 미친 춤, 양재기 대야 등등 닥치는대로 두들겨대며 광난증을 피운다. 우리 교회에서는 ‘제야’를 반성과 기도로, 새해 첫 새벽을 예배로 보내지만 그건 우리 ‘교인’만의 일이다.

그러나 동양의 시인들은 ‘제야’를 슬퍼했다.

“일년 처음에 일년 봄은 있어도, 백년 그 안에 백살 인간 없나니, 꽃밭 그 속에 몇 번이고 취해보자. 가난한들 어떠리 만냥 술 사련다.”(8세기 중국 시인 최민동)

‘제야’는 귀양간 분들이 고향 그리는 밤이기도 하다.

여관 찬 방
등잔불 돋우고

잠 못 이루는
나그네 마음

오늘밤 고향
생각은 천리

내일 아침 귀밑에
서리낀 또 한해

이렇게 시인들은 제야를 슬퍼했다. 그러나 새해는 역시 ‘새해’여서 즐거워 하는 날, 아이들은 세뱃돈에 부풀고, 어른들은 세배 받고 흐뭇하다. 도소주 한잔 향기롭기도 하고.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