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3일 목요일

[범용기 제4권] (74) 자연은 인간의 큰 집 – 숲과 호수

[범용기 제4권] (74) 자연은 인간의 큰 집 – 숲과 호수

5월 5일과 6일 1박 2일 예정으로 작곡가 박재훈 박사와 단둘이서 온타리오 주립공원 ‘알공킨 팍’에 방랑을 갔다. 5일 아침 6시 정각에 떠나 북으로 달려 무스쿠끼를 지나 알공킨 주립공원에 들어섰다. 호수가마다 호화로운 별장이 너무 많았고 그래도 까베지통 뒤지는 곰, 길가에서 음향의 안테나를 놓칠세라, 귀를 곤두세운 노루, 사슴 등의 그림엽서만은 팔리고 있었다. 우리는 곰도 사슴도 보지 못했다. 숲속에 있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숲에는 못들어가게 했고 들어갈만큼 용감하지도 못했기에 자동차 도로를 외곬으로 달리는 차속의 ‘현대인’ 노릇 할 수밖에 없었다. 요기할 고장은 어디에나 있어서 시장끼 느껴볼 사이도 없었다.

햇빛은 앳띤 연록색 잎사귀들을 간지럽혀 못견디게 군다. 가담가담 캠핑 처소가 마련되 있지만 사람도 없었고 잇대야 흥미로울 것 같지도 않았다. ‘카노’ 호수가에는 제법 백사장도 있어서 호수욕장답기도 했다. 레게드힐폭포(?)는 좁은 골짜기를 마구 굴러 딩구는 급류여서 온통 흰 거품의 몸부림이랄까? 품위 갖춘 ‘폭포’는 아니었다.

길을 새로 내는 공사중, 진흙길을 달릴 때가 더 기분 좋았다. 그것이 고원지대여서 임간도로다운 풍경이었다. 좌우의 백화 숲은 흰옷 입은 여인들 같아서 정다웠다. 한줄기 외골으로 열린 황토길이 하늘닿은 수벽을 뚫고 건넜기에 출애굽기의 홍해수벽을 연상할만도 했다. 더군다나 생명의 ‘저수지’랄까 한 이 삼림과 호수의 푸른 위에 소낙비처럼 내리 쏟는 5월의 태양은 그 빛 그대로가 싱그러웠다.

앞에 보이는 아릿한 능선을 올라서면 거기서부터 다시 펼쳐진 언덕이 가없이 넓어지고 그 고지에도 호수와 숲과 인가가 점철되어 한폭의 조화된 그림을 이룬다.

박박사는 새로운 작곡을 구상하면서 도시의 오염을 씻기 위해 이 자연을 찾았을 것 같기도 한데 그 효능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덩달아 편승한 나는 오히려 묵은 겨울의 침체를 구름과 함께 날려보내고 젊음을 되찾은 ‘봄의 사람’으로 탈태한 것 같았다.

어둠이 짙은 때, 박박사는 자기 집 문 앞을 스쳐 과문불입, 나를 웨스톤에까지 데려다 놓고서야 다시 먼길을 자기집까지 갔다.

산천이 병풍속 그림처럼 기억의 필림에 아물거린다. 속세에 내린 신선의 허전함이랄까? 어쨌든, 시 속에서 지낸 하루는 좋았다.

[1980.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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