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6일 목요일

[범용기 제4권] (59) 군정독재에서의 김대중은… - “삼손”의 正氣(정기)

[범용기 제4권] (59) 군정독재에서의 김대중은… - “삼손”의 正氣(정기)

노예였던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에서의 종살이에서 탈출, 사막을 걸어 가나안에 들어오긴 했지만 아직 왕도 없고 왕국도 없어, 지방마다 본주민들 속에 섞여, “부족자치”로 겨우 민족의 Identity를 지탱해 가던 소위 “사사시대” 때 일이다.

“삼손”이란 하늘이 낸 역사(力士)가 있었다. 그는 20년 동안 지방의 “사사”(Judge)로 지내면서 “力士”다운 일화를 동화책 삽화처럼 그려가며 살았다.

그는 솔직하고 단순하며 그러면서도 “유머”도 제법 있었다. 원주민 블레셋 미인들을 좋아하며 동거도 하고 결혼도 해 보고, 그 앙큼한 여성들의 모함에 빠지기도 하고 거짓 사랑에 속기도 하고 – 무던히 “나이브”한 “씨름꾼”이었다.

밤낮 그에게 얻어맞는 블레셋 족장들은 이 삼손의 힘의 출처를 알아 내려고 “미인계”를 쓴다. “데릴라”라는 창기타입의 미녀는 족히 이 “역사”의 간장을 녹일 수 있었다.

이 미녀는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고 울며 불며 졸른다.

“안 대어 주시는 걸 보니 나를 미워하시는 모양인데요. 당신께 미움받고 살아 뭘 하겠어요! 죽어 버릴테야요.”

“엣다. 모르겠다. 머리칼에서 나온다”, “인제 됐다”하고 데릴라는 “삼손”이 자는 틈에 머리칼을 잘랐다.

아닌게 아니라 삼손은 김빠진 맥주같이 싱거운 고기덩어리로 변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결박했다. 두 눈을 도려내고 가뒀다. 당나귀 대신 연자메를 돌리게도 했다.

블레셋 족장과 성주들은 이층으로 된 대공회당에 축하 잔치를 열고 위 아래층에 수만명 모여 삼손의 연기를 구경한다. 삼손은 이방인의 구경꺼리가 됐다. 삼손은 부끄럽고 노엽고 저지른 잘못이 한스러워 하나님께 떼썼다. “한번만 내게 힘을 돌려 줍소서!”

힘은 돌아온다. 그는 이층 공회당을 떠받친 큰 기둥사이에 섰다. 한 손으로 한 기둥씩 걸머쥐고 냅다 뛰었다. 기둥이 빠지면서 이층집이 와르르 뭉개졌다. 윗층의 성주와 족장들, 아래의 구경꾼과 백성들 모두 치이고 깔리고 납작해지고 죽고해서 단번에 시원스런 복수를 해치웠다.

힘이 머리칼에 감추워 있다. 그 힘이란 이스라엘 민족의 정기다.

어떤 불운이 닥쳐와도 “정기”는 잃지 말아야 한다.

만주족이 일어나 “금”나라를 세우고 요양에 도읍하고 황제를 일컬었을 때, 그들은 우리 나라가 국교를 거부한다고 쳐들어와 소위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그때 인질로 잡아간 우리의 3의사는 끝까지 칭신을 거부하고 온갖 유혹을 마다하고 “정기가”를 지어 외우며, 지지고 볶고 삶고 비틀고 꺾고, 껍질 벗기고 하는 온갖 몹쓸 악형을 견디어가며 죽기까지 절개를 지켰다.

문화적으로 “명”나라를 이어받은 “정통”으로 자처한 “고집불통” 때문이었는지 모르나 어쨌든 그이들의 “정기”는 별처럼 빛난다. 그런데 요새 들려오는 잡되고 비열한 본국 소문들은 시궁창 “오물”을 연상시킨다. 민족 정기가 김처럼 새버린 것일까? “돈”에 팔리고 “자리”에 갇히고 하찮은 미끼에 걸리고 – 이제야말로 삼손의 머리칼이 자라야 하겠다. “삼손”은 블레셋과의 관계에서 종종 실수는 했었지만 이스라엘 선민으로서의 민족정기를 송두리째 팔아먹거나 굴복한 일은 없었다. 그는 마감 순간에 싸움에서 기존의 모든 싸움을 합한 것 보다 더 큰 전과를 거뒀다고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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