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5일 수요일

[범용기 제4권] (47) 군인 정치 – 부자와 돼지

[범용기 제4권] (47) 군인 정치 – 부자와 돼지

유대 땅에 어떤 욕심쟁이 부자가 있었다. 그 때는 농경시대였으니까 땅을 많이 차지하고 거기서 나는 농산물을 거둬들여 소위 천석공, 만석공이 되는 것이 “부자”라 불리우는 “행운아”였던 것이다.

이 “부자”는 밭에서 거둬들인 곡식을 처치할 수 없어서 산더미처럼 노적가리를 해놓고서 맘이 흐뭇했다. 그래도 타작을 해서 ‘알곡’으로 저장해야 하겠는데 곡간이 좁아서 절반도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그는 말한다.

“자 이제 곡간을 헐고 더 큰 곡간을 짓고 거기 곡식을 가려 놓자! 이만하면 한 4-5년 먹을 양식은 된다. 이걸로 술 빚고, 떡 치고, 소 잡고, 양 잡고 해서 매일 연락을 하자!” 실컷 ‘엔조이’ 한다고 아주 부푼 기분이 됐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사람의 생명이란, 소유가 많고 적은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부자가 방자하게 굴지만, 바로 오늘 밤에라도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불러간다면 그는 빈손으로 심판대 앞에 출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그 다음에 그 재산은 누구 것이 될지 모른다. 아마도 서로 제가 많이 가지자고 자녀끼리 싸움이나 자부락지게 벌릴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돈이 있거든 쌓아둬라” 하는 얘기가 있다.

권력도 이와 똑 같다. 한번 권좌에 올라 앉으면 더 많은 권력, 더 오랜 권력을 혼자 갖고 한번 흥청거려 보고싶어 눈이 새까맣게 색맹이 된다.

한국에서 박정희가 그러했고 지금 전두환은 더 깜깜인 권력광이다.

별 지랄을 다해서 “대통령”이라고 됐는데 이제 내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고, 한 5-6년 하고서도 나가라면, 화부터 치솟는다. 이미 맛들인 식사라 숟가락 놓고 물러나라면 치가 떨린다. 그래서 가량 6년, 8년, 18년을 했대도 그때 가서 또 헌법을 고치고 종신 “대통령”으로 출마할지 모른다. 혼자니까 “출마”랄 것도 없겠다.

“부자”란 대체로 “돈벌이”에 들뜬 부족이다. 그래서 “돈”을 벌면 그건 “내 돈이 내 맘대로 쓴다”고 당당하다. “권력부자”도 그런 철학인 것 같다. “‘구테타’를 했든, 무더기 살인을 했든 그만큼 나는 목숨 걸고 권력을 벌어내 ‘구좌’에 넣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잔소리냐! ‘정의’니 ‘자유’니 하는 씨먹잖은 소리 집어치워라, 권력 앞에서 그게 무슨 잠꼬대냐! 그런 놈들은 잡아 족쳐라, 가둬라, 죽여랴, 죽이기까지는 않하더라도 아예 병신 만들어라” 한다. 이런게 전두환의 뱃장인 것 같다.

그런데 ‘나라’는 ‘전두환’의 개인소유가 아니고 삼천만 국민의 공동 소유라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신학적으로 말한다면 ‘나라’는 전두환이 ‘소유’한 것도, 국민이 ‘소유’한 것도 아니고 ‘소유’는 창조주 하나님의 것인데 그것을 인간들에게 맡겨서 창조주의 뜻대로 ‘관리’하게 한 것 뿐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주권’이 아니라 ‘관리권’이며 따라서 우리는 모두 ‘청지기’로서 주인 앞에서 청산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권력은 바른 절차를 밟아, 바르게 써야 하는데 한국에서 그런 권력자가 잘 나오지 않는다. 악한 자가 집권했기 때문에 의인은 고생만하고 악인이 횡포를 부리게 된다.

‘권력’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권력은 ‘여의주’와 같아서 집권자가 쓰는데 따라 값이 정해진다. ‘악한’에게 ‘여의주’를 주면 그건 “돼지에게 진주”여서 똥발로 짓밟고 진주 주인까지 물고 찢을지 모른다.

역사의 주역은 국민이고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위탁된 “진주”인데 그게 돼지떼에게 짓밟히고 있다는 사실을 못본체 또는 “강 건너 불 보듯” 구경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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