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7일 목요일

[범용기 제4권] (102) 野花園餘錄(其四) - 푸른 낙엽

[범용기 제4권] (102) 野花園餘錄(其四) - 푸른 낙엽

김익선 목사 장남 ‘경휘’ 군이 21세로, 토론토대학 1학년에서 저 세상에 갔다. ‘위암’이라닌 의약부도 암실(暗室)이라 하겠다.

“一年始有一年春
百歲曾 無百歲人”

“해마다 처음에 한해 봄은 있어도
백세에 일찍 백세 산 사람은 없었다.”

결국 백년도 못 다 가서 다 같이 가는 것이라는 체념의 ‘시’다. 그러나 때로는 체념할 수 없는 ‘비극’이 있다. 가을 첫 서리 단풍이 타오르고 황금빛 숲이 Royal Mantle을 휘날릴 때, 시름없이 지는 낙엽이라면 몰라도 아직 싱싱하게 푸른 기름도는 잎사귀가 광풍에 찢겨 떨어져 길바닥에 몸부림친다는 것은 잊을 수 없는 슬픔이다.

그러기에 “자녀는 죽어 어머니 가슴에 묻힌다”는 속담이 생겼다. 일제 시대 이상재 옹은 70노인이었지만 청, 장년 어린이까지도 진짜 ‘동무’로 친하게 지내셨다. 그러나 ‘장공’은 그렇지 못하다. ‘경휘’ 군도 나를 ‘친구’ 또는 ‘동무’라고 느꼈을 것 같지 않고 나도 경휘 군과 마주 앉아 터놓고 얘기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마감 날에 경휘 군의 손잡고 기도했을 때, 그의 반응이 어떠했을까? 나로서는 짐작이 안 간다. ‘경휘’는 그날 밤 새벽 다섯시 반에, 숨겨뒀던 힘을 다 뽑아 죽음과 격투했다. 그러나 죽음이 이겼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도 ‘죽음’ 앞에서 체념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싸웠다. 그리고 잤다. 그리고 졌다. 짐으로써 이겼다.

‘경휘’도 그랬다. 그는 삶과 죽음의 ‘심연’에 몸을 잠갔다. 그리고 다시 떠 올랐다. 그는 20을 갓넘은 푸른 낙엽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시간과 영언을 몸으로 끼어 앉았다. 그는 ‘주님을 위하여’ 란 ‘고백’의 마감 ‘시’를 남겼다. 최후 심판의 날, 영의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믿는다. 죽음은 삶의 Semicholon이요, Period’가 아니다.

[1982. 6]

댓글 1개:

  1.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많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젊은이의 죽음은...
    유난히 슬프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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