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5일 월요일

[범용기 제3권] (92) 北美留記 第二年(1975) - OTTAWA 한국대사관 앞에서

[범용기 제3권] (92) 北美留記 第二年(1975) - OTTAWA 한국대사관 앞에서


4월 15일 – 새벽 4시 반에 교인들과 민주인사 그룹이 이상철 목사 집에서 자동차로 출발하여 “오타와” 한국대사관 앞에 10A.M.에 도착했다. 박정희에게 살해당한 “인혁당” 인사 8명의 추도 장례식을 한국대사관 앞에서 거행했다. 사회는 이목사와 “베일리”였고 “오글” 목사가 영어 메시지, 내가 한국말 담화로 약 5분씩 말했다. 그리고 “대사”와 면담하고 질문하고 “시가 데모”에 나선다는 순서였다.

아직도 추운 날씨였다. 연합교회 교우들이 부인들까지 수십명 출동했다. 한가(韓加) 교회 합동이었고 오타와 백인교회들과 사회인들도 함께 나와 지원했다. 대사가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어딘가에 숨은 모양이란다. 정철기 등 젊은 부대가 마구 들어가 영사라도 끌어내려 했다. 옥신각신 난투가 벌어질뻔 했다. “이건 우리 영사관인데, 그렇게 난동할 수 있느냐?”하고 영사가 항변하더란다.

“‘우리’란 것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역적 박정희의 살인도당이란 뜻이 아니냐? 너희도 같은 강도의 무리다. 너희가 죄없는 국민을 마구 도살하고 장례식도 못하게 했으니 우리가 여기서 추도 장례식이라도 해 드리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취지였다.

“데모”후에 그 곳 백인교회에서 우리에게 샌드위치와 따끈한 수프를 점심식사로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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