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6일 화요일

[범용기 제3권] (116) 北美留記 第三年(1976) - 와싱톤에

[범용기 제3권] (116) 北美留記 第三年(1976) - 와싱톤에


3월 11일(목) - 오후 6PM시에 이상철 목사와 함께 토론토 공항에 나갔다. 나는 오전 7시 30AM에 출발하는 A.A.기로 와싱톤에 직행하여 오전 9:15AM에 National Airport에 내렸다.

이근팔 사무국장이 공항에 나와 있다. 그길로 민통 사무실에 갔다.

3PM에 프레이저 의원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면담시간은 3분간으로 되어 있다. 프레이저 의원은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국회 대합실 식당에서 우리를 만나준다.

내가 주로 얘기했기 때문에 내 서투른 영어가 시간을 먹어버렸다. 30분 걸렸다. 그래도 프레이저 의원은 열심히 듣는다.

이튿날 국회의사록에 프레이저 의원의 발제연설이 붙은, 영역 구국선언문이 발표되어 있었다.

지금까지에는 우리의 민주운동이 아무리 열렬하고 종일 데모로 거리를 누벼도 그것이 어느 일간신문에 보도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N.Y.Times에서는 사설과 기사로 취급했고, 와싱톤포스트와, 그밖에 여러 보도기관에서 모두 크게 다뤘다.

윤보서 증경대통령까지 구속했다는 것은, 무슨 일이든 해치운다는 폭력제일주의 통고였기 때문이라 하겠다.

박정권에 대한 미국여론은 180도로 전환 악화되었다. 박정권을 두둔했다가는 발 붙일데가 없게끔 됐다. 미 국무성에서는 “We are well aware of the Korea situation”이라는 막연한 대답밖에 하지 않는다.

3월 12일(금) - 강영채 박사 차로 “민통” 사무실에 갔다. 어제 국회의사록에 난 민주구국선언 영역본과 프레이저 의원의 서론적인 콤멘트와 “뉴욕타임즈”에 난 사설과 기사, 그리고 “와싱톤 포스트”에 난 기사와 콤멘트 등 문서를 일괄 편집하여 “민통” 발행 Open-Letter에 fact sheets로 널리 반포하기로 했다.

3:00PM에 이근팔, 전규홍, 이성호 등과 함께 국무성 Korea Desk에 찾아갔다. 차석(次席)이 있었다. 내가 약 10분 얘기하고 전규홍 박사가 한 5분 얘기했다.

그는 전형적인 관료였다. “We are well aware of the Korea situation”이라는 국무성 공식 발표 이외에 다른 할 말이 없다고 한다.

전규홍 박사는 “그럴게다.”하고 더 말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준비된, 키신저에게 보내는 서한을 그에게 내주며 전달을 부탁했다.

“꼭 전하겠습니다!”하고 받아 간수한다.

3월 13일(토) - 저녁에는 와싱턴 한인 각 기관 대표들이 중국식당에 모였다.

나는 거기서 간단히 연설하고, 4.19날까지 윤번으로 매일 1인데모를 계속할 것과 “싸인”을 모아 국무성에 낼 것 등의 회원 제의를 가결했다. 모두 협조적이었다.

안 목사 댁에서 유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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