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30일 수요일

[범용기 제2권] (114) 5ㆍ16 군사반란(1961) – 5ㆍ16 군사 쿠데타와 미국

[범용기 제2권] (114) 5ㆍ16 군사반란(1961) – 5ㆍ16 군사 쿠데타와 미국


박정희가 끌고 들어온 군인은 3,500명이다. 국련군 산하에서 미군 통제하에 있다는 한국군이 미군 몰래 이런 행동을 개시할 수 있겠는가? “몰랐다”는 말은 “눈감고 아웅”이 아닐 수 없다.

주한 미 대리대사 ‘그린’, 주한 미군 사령관 ‘마구루터’ 등이 깜짝 놀랐다는 시늉으로 쿠데타 반대 성명을 냈지만, 그건 ‘허허실실’의 전략일 것 뿐이다. 먼 후일 – 당시 미 대사관 민정관으로 있던 그레고리ㆍ헨더슨도 전혀 몰랐노라고 내게 말했다.

그는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 CIA가 몰랐을리는 없겠다. 미국의 대한국정책은 반공, 친일, 친미의 3박자를 구비한 강력한 정권 수립에 있었다.

이승만은 친미, 반공에는 강력했지만 친일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장면’은 친미, 친일에는 문제없었지만, 반공에는 약세였고 ‘강력’하달 수는 없었다.

박정희는 생리적으로나 경력으로나 ‘친일’로 일관하였고 여수, 순천 좌익반란사건의 누명을 벗기 위해서도 ‘반공’은 기쓰고 해야 할 처지에 있었다.

그리고 ‘친미’는 그의 진심이랄 수가 없겠지만, 일단 정권맛을 들인 한, 미국 돈 없이 경제나 정치나 외교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니 자연 ‘친미’의 급경사를 달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군인이다. 군인은 명령과 복종이란 단순한 체제의 행동부대다. 거기에는 ‘우유부단’의 유약성이 없다. 미국이나 일본에는 하관이 상관에게 복종하듯 할 것이고 국민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명령’할 것이다.

그리고 ‘반공’은 실력대결이니만큼 군대를 지휘할 위치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의 38선은 ‘평화선’이 아니라, 휴전선이다. 전쟁상태는 계속한다. 그러나 둘 다 지쳤으니 한참 쉬고보자! 하는 식이다. 비상사태다. 강력한 군인정치가 필요하다.

이것이 박정희의 강점이었고 미국의 흥정거리였다. 그래서 미 국무성에서는 ‘노컴멘트’로 한동안 관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