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7일 목요일

[1251] 전두환과 미국 / 1981년 2월

전두환과 미국


미국은 전과 같은 냉전 프로그람에서 한국을 요리하기에 정세가 너무 달라졌다는 것을 인식한다. 그러나 그 대안에 있어서는 아직도 어리벙벙한 것 같다.

그때그때의 형편을 봐서 어찌어찌 하노라면 되겠지 하는 식이 아닐까? 전두환이든 누구든 미국 백 없이는 일이 안될 것이고 미국에 오면 적당히 구슬려서 미국 이익에 이바지하도록 하면 될 것 뿐, 그들 때문에 미국이 치명상 입을 리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소련과의 대결이 있으니까 “남한”을 군사적 거점으로 써야 할 것은 사실이니 그 점에서는 남한을 권외로 던져버릴 생각은 물론 없으나 그렇다고 다른 모든 데 특히 민주화 운동 같은 데 전적으로 책임질 생각은 없는 것이다. 한국 민중이 자력으로 민주체제를 쟁취한다면 그랬다고 미국이 한국을 나무랄 생각도 없다. 한국에 민주정부가 선다 해도 미국과의 관계는 역시 한국자신의 생존문제니까, 그 때에 또 그들이 요청하는 데 따라 적당한 우호와 협력관계를 맺으면 되겠지 하는 배짱일 것이다.

그런데 그 동안에 카아터 대통령이 너무 맘씨가 좋아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에게 선수를 잡히고 이란에서 미국시민이 인질로 잡히고 유럽에서도 소련의 진출이 현저하고 했으니 이거 어디 초강대국으로서 체면이 서느냐 하여 반대당이 떠들고 군부가 불쾌해하고 했다. 그 동안에 중국과 “준동맹” 관계를 맺게 된 것은 물론 카이터 정권의 뚜렷한 기록일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도 민주주의적으로 추진할 것을 누차 제언했었지만 한국의 군사구테타는 이제 어느 정도 습성화돼서 전두환 군사독재 체제가 되고 민주인사 특히 김대중에게는 사형선고까지 내리게 되고 했으니 종주국으로서의 체면과 위신이 서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큰소리 “빵”치는 레이건에게 표가 몰렸다.

그런데 본지 같은 호에 실린 “전두환과 일본”이란 제목에서도 말했듯이 미국서도 “군부”는 “미ㆍ일ㆍ한 군사일체화”에 역점을 두고 “반공 십자군”이라도 형성할 속셈을 드러내고 있으므로 행정부가 그 방향에서 시원스레 밀어주기를 바라게 됐다. 그래서 정계에서도 강력파(매파) 가 발언권이 드세게 되고 따라서 전두환 체제를 지지하는 공기가 짙어진다.

“매파”로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사령관 제ㆍ워캄 장군은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을 지지한다고 공공연하게 표명했다. 이 워캄이란 군인은 “레이건” 후보의 외교정책 수석고문 R. 알렌과 가까운 친구고 닉슨 시대의 국방장관 쩨ㆍ슈레진자의 부하였다. 이 주한 미군장성들은 한국에 민정이 수립되는 데 대하여 불안을 느낌과 아울러 김대중 소외, 전두환 지지를 명백히 했다.

이들은 오히려 38선 영속을 원하고 있다. 38선이 희박해지든지 없어지고 압록강ㆍ두만강이 조선반도의 소ㆍ중과의 국경이 되는 때의 새로운 안보에 대해서도 무척 불안해한다. 말하자면 “냉전” 계속을 원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온건파”(비둘기 파)도 있다. 그들은 한반도에서 “남북대화”와 통일에의 모색을 추진시킴으로써 아세아의 안정을 성취하자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대 한국 정책은 미국의 여당이나 야당이나를 막론하고 그 당 안에 두 갈래를 만들고 있다. 따라서 김대중 사건에 있어서도 어느 당에나 두 경향이 있다. 인도주의적 입장에서는 공통일밖에 없지만.

어쨌든, 남한이 정치적으로 혼란의 도가니가 된다든가 경제적으로 파산 상태가 된다 할 때에는 미국으로서 가만있을 수 없는 이해관계에 있느니 만큼 그런 혼란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정치적지지, 경제적 원조 또는 투자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레이건”이 전두환을 제일착으로 부른 것은 한국의 정세가 최악의 경우에 도달하기 전에 톡톡한 경제 원조와 아울러 정치적 안정을 위한 기성정권 지지를 약속하고 주한미군 강화와 38선 수호를 다짐해 보낸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예수님 비유에 “낡아 찢어진 옷에 새 천 조각을 대어 기우면 새 것이 낡은 것을 잡아 당기어서 의복이 더 많이 찢어지고, 마구 괴는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으면 포도주 괴는 기운에 낡은 부대가 터져서 부대와 포도주를 다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고 새 천으로는 새 의복을 만들어야 한다”는 귀절이 있다.

미국에서 전두환 정권을 도와서 당장 터지는 구멍을 막는 식으로 틀어막아 준다 셈치더라도 전두환 자신이 총칼로 국가주권을 강탈하고 죄 없는 광주 학생과 시민을 학살하고 지금도 사람을 살리기보다도 죽이는 데 흥미를 느끼는, 그런 “광견” 형의 정권을 “천사”로 변형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의 현 군부는 전두환을 전면 지지한다. 재한미군철수나 감축에도 반대한다. 따라서 군사산업도 계속한다. 약속된 재한미군철수 최종기일이 81년인데 그것도 그 때 봐야 알 것이 아닐까?

어쨌든 간에 “한ㆍ미ㆍ일 군사일체화” 계획은 강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고 따라서 전두환 지지도 그 순서에서 그대로 진행될 것이다. 남한의 집권층에서는 이북을 “괴뢰” 즉 “꼭둑각시”라고 불러왔다. 이북이 어느 정도로 “괴뢰”인지, 어떤 자의 손에 조종되는 “꼭둑각시” 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남에는 “괴뢰성”이 없는 것일까? 위에서 지적한 일본과 미국과 한국과의 밀착관계에서 우리는 한국이 그들의 “괴뢰”가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로 확증할 수 있을 것인지, 상당히 어색함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1981. 2. 제3일 속간 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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